KISTI-과학향기 [기사 저장일 : 2024-03-29(21:03:53)] ===================================과학향기========================================= [기사 호수 : 제3187호] [기사 등록일 : 2018-07-30] [기사 제목 : 녹색 피를 가진 도마뱀이 있다?] [기사 내용 : 공상과학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우리에게 생소한 녹색 피를 흘린다. 하지만 알고 보면 녹색 피는 외계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게, 가재 등 일부 갑각류나 몇몇 도마뱀의 피도 외계인처럼 녹색이다. 또 어떤 곤충과 오징어, 문어는 청색 피를 가졌다. 심지어 남극에 사는 뱅어의 피는 투명하다. 왜, 어떻게 이렇게 피 색깔이 다양할까? 다양한 피 색깔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피 색깔은 ‘산소’와 관련이 깊다. 산소가 생존에 필수인 만큼, 효율적인 산소 공급 체계를 갖추는 것은 모든 동물에게 생명이 걸린 일이다. 이 문제를 동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데, 그 방법에 따라 피 색깔도 달라진다. 먼저 우리 몸을 보자. 아름다운 붉은 색 혈액은 온몸에 퍼진 혈관으로 흐른다. 이때 혈액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신체 곳곳에 산소를 전달하는 것이다. 산소 수치가 높을수록 혈액은 선홍색을 띤다. 그 이유는 혈액 속 적혈구에 ‘헤모글로빈’이라는 호흡색소가 있기 때문이다. 헤모글로빈 단백질은 철(Fe) 원자를 포함하고 있어 산소와 결합하면 산화철의 붉은 빛깔을 낸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은 헤모글로빈으로 산소를 운반해 피가 붉다. 사진 1.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의 피가 붉은 이유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때문이다. (출처: shutterstock) 한편 헤모글로빈이 아닌 다른 호흡색소를 이용하는 동물도 있다. ‘헤모시아닌’이라는 호흡색소는 철 대신 구리(Cu) 원자로 산소와 결합한다. 헤모시아닌은 산소가 없을 때는 무색, 산소와 결합하면 푸른색을 띤다. 달팽이, 민달팽이, 조개, 문어,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과 게, 바닷가재, 거미 같은 절지동물의 피는 헤모시아닌 덕에 파란색이다. 그렇다면 호흡색소의 금속 원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걸까? 그렇지만은 않다. 일부 해양 무척추동물의 호흡색소인 ‘헤메리트린’은 헤모글로빈처럼 철(Fe)원자를 품어 산소와 결합하는데도 붉은색이 아니다. 왜냐하면 보유한 금속 원자가 같더라도 전체적인 단백질의 구조에 따라 흡수하는 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헤메리트린은 산소와 결합했을 때 보라색, 없을 때는 무색이다. 녹색 피를 가진 척추동물이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예외적인 사례를 발견했다. 저 멀리 남태평양 섬나라에 척추동물인데도 녹색 피를 가진 도마뱀이 있다. 1969년 뉴기니섬에서 처음 발견된 이 도마뱀 무리는 혈액뿐만 아니라 뼈, 근육, 조직 등이 모두 초록색이었고 이러한 모습에 걸맞게 그리스어로 '녹색 피'라는 뜻의 '프라시노하이마(Prasinohaema)'라는 이름을 얻었다. 혈액을 분석한 결과, 초록 빛깔의 원인은 헤모글로빈이 없어서가 아니라 ‘빌리베르딘(biliverdin, 담록소)’의 수치가 높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빌리베르딘의 녹색이 헤모글로빈의 붉은색을 가린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오히려 더 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빌리베르딘은 독소인 탓에 체내에 높은 수치로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 2. 녹색 피를 가진 도마뱀 프라시노하이마의 모습. (출처: https://www.biolib.cz) 이 현상은 우리 몸의 황달 증상과 연관 지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수명이 다한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은 지라(비장)에서 분해된다. 이 대사에서는 중간물질인 빌리베르딘을 거쳐 빌리루빈(bilirubin, 담즉색소)이 생성되는데, 이들은 독성이 있어 반드시 체외로 배출되어야 한다. 우리 몸은 대사의 최종 산물인 빌리루빈을 쓸개즙에 저장해 두었다가 소장으로 분비하여 배설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혈액에 쌓인 노란색의 빌리루빈이 피부나 점막을 노랗게 착색한다. 이러한 증상이 황달이다. 녹색 도마뱀의 피에 들어있는 빌리베르딘은 주로 초식동물이나 양서류, 파충류의 쓸개즙에 존재한다. 하지만 빌리베르딘도 빌리루빈처럼 수치가 높으면 세포와 뉴런을 파괴할 수 있어 해독을 거쳐 체외로 배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도마뱀들은 사람의 역대 최고 수치보다 무려 20배 높은 빌리베르딘을 지니고 있다! 빌리베르딘 수치가 이토록 높은 이유, 그리고 이렇게 높은데도 불구하고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최근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의 자카리 로드리게스 연구팀은 6종의 녹색 피 도마뱀을 포함한 51종의 근연종의 유전자를 분석해 계통도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이 도마뱀이 단일한 무리가 아니라 4가지의 다른 계통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각각의 도마뱀 무리가 서로 다른 붉은 피 도마뱀 조상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의미이다. 한 번이 아닌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난 이 특성 변화는 분명 혈중 빌리베르딘 농도가 높은 것이 생존에 이점을 제공했을 거라고 짐작하게 한다. 연구팀은 높은 빌리베르딘 수치가 정확히 어떤 이득을 줬는지 명확한 주장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말라리아 기생충에 관련된 한 가지 가설을 제안했다. 이 가설은 높은 수준의 빌리베르딘이 기생충 감염에 대한 방어책으로 진화한 특성이라고 설명한다. 빌리베르딘이 대부분의 기생충 성장을 차단하고, 감염된 적혈구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그에 따른 말라리아 기생충의 진화는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수백여 종의 말라리아 기생충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며 붉은 피 도마뱀을 감염시키는 동안, 단 한 종의 말라리아 기생충은 이미 블루오션을 찾아 방어책을 뚫고 녹색 피 도마뱀만 감염시키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 종의 이름은 플라스모디움 민보비리데(Plasmodium minuoviride), 즉 ”녹색 피를 뽑으라”라는 뜻이다. 살아남기 위해 제 모습을 바꾸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생명의 드라마가 멋지지 않은가? 더 멋진 사실은, 벗겨진 비밀에서 우리에게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녹색 피의 비밀로 황달이나 말라리아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글: 정유희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그림: 유진성 작가 ] [기사 칼럼니스트 : 정유희] ==================================================================================== Copyright⒞2024 KISTI All right reserved. 모든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