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 [기사 저장일 : 2024-03-29(15:30:26)] ===================================과학향기========================================= [기사 호수 : 제3327호] [기사 등록일 : 2019-04-01] [기사 제목 : 지열 발전이 지진을 일으켰다고?] [기사 내용 : 2017년 11월 15일, 진도 5.8을 기록한 포항 지진은 대한민국이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강한 지진 중 하나였다. 지진은 수십 명의 사상자와 1500명에 육박하는 이재민에게 큰 고통을 줬다. 안타깝게도 이 지진은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높다. 3월 20일, 반년간의 정밀 조사를 마친 정부연구단은 포항 지진이 인근 지열 발전소 때문에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만일 이 발표가 사실이라면 포항 지진은 지열 발전과 연관된 지진 중에 가장 파괴력 있는 사건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전 세계의 지열 발전 사업 종사자가 이번 사건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일 만큼 중대한 사건이다. 지진 진앙과 약 2km 떨어진 경북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에 위치한 지열 발전소는 국내 최초로 지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이었다. 2012년 착공하여 5년 후 본격적으로 발전기를 돌리기에 앞서 막바지 조율 중에 포항 지진이 발생했다. 포항시는 혹시나 모를 지진과의 연관성 때문에 지열 발전소 중단 가처분 신청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 발전소는 1월부터 작동을 중지한 상태다.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 받던 지열 발전소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진 1. 포항 지진의 원인이 지열 발전 때문이었다는 공식 조사 발표가 났다. (출처: shutterstock) 지열 발전의 원리 지열 발전은 이름 그대로 땅속 깊숙한 곳의 열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햇빛이 닿지 않는 깜깜한 땅속이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지표면 어느 곳보다 더 따뜻한 곳이 땅속이다. 지하 1m만 파고 들어가도 땅속 온도는 연중 15도 내외를 유지하며 5m를 넘어서면 한여름 날씨보다 더 뜨거운 40도 전후까지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 중 일부는 땅속 깊숙한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겨울을 이겨내곤 한다. 1911년 최초의 지열 발전소가 이탈리아 라르데렐로 지방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24개국이 지열 발전소를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체 전력량 중 약 30%가 미국에 위치한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온다. 주로 환태평양 화산대 지역에 위치한 국가가 지열 발전소를 유용하게 사용한다. 미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순으로 많은 전력을 생산한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위치한 나라는 화산 주변의 열을 직접 이용한다. 지구 안쪽의 핵이 타오르며 뜨겁게 달궈진 마그마는 지표 가까이 올라와 화산을 터뜨리곤 한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역이지만 지열 발전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이곳은 그 지역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보일러와 다를 바가 없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위치한 국가는 비교적 얕은 지하에서 쉼 없이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로 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인공 저류층 생성 방식과 포항 지진 반면 비화산대 지역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지열 발전을 하기 위해 좀 더 수고로운 작업을 추가해야 했다. 포항에 위치한 지열 발전소는 발전에 필요한 수증기를 얻기 위해서 지하 4km 근처의 뜨거운 화강암 지층을 활용했다. 이 화강암 지대는 160도에서 180도의 고온을 유지하기 때문에 지열 발전에 필요한 수증기를 얻기 적합했다. 기술자들은 화강암 지대까지 파 들어간 후 암석의 틈 사이에 인위적으로 파이프를 끼우고 그곳에 물을 주입하여 수증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증기는 다시 파이프를 타고 지표면까지 올라와 발전소 안에 있는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 낸다. 이를 전문 용어로 인공 저류층 생성 방식(EGS, Enhanced Geothermal System)이라고 한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땅속 깊은 곳에 높은 압력을 가해 차가운 물을 주입하는 EGS 방식은 발전소 주변 지역의 지류를 약화해 지진을 불러올 수 있다. 2006년 12월 8일, 스위스 바젤의 지열 발전소 주변에서 30번의 지진이 관측됐다. 유럽 대륙 안쪽에 위치한 스위스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바젤시는 당장 정밀 조사에 나섰고 지열 발전소를 중심으로 진원이 퍼졌음을 확인한 후 2009년에 최종 폐쇄 조처를 내리는 동시에 책임 회사에는 9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스위스에서 벌어진 상황은 포항의 지진 사태와 닮아있다. 둘 다 EGS 방식을 채택한 지열 발전소였으며 본격적인 상업용 전기 생산에 앞서 실험 동작을 확인하는 도중에 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바젤시가 고용한 지질조사단은 조금만 더 파고들었어도 5억 달러, 한화로 약 5500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진단했다. 다른 점은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이 바젤시의 그것보다 1000배 더 강력했다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과거의 사건 사고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포항시는 지열 발전소 건설을 허가했을까? 이는 EGS 방식의 안전성을 과대 평가 했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날 당시 지열 발전을 위해 주입한 물의 양은 예정된 안전 수치를 훨씬 밑도는 수준이었다. 또한 과거 여러 번 EGS와 비슷한 방식으로 땅 속을 파고 들어가는 가스, 석유 추출 시설 근처에서 미약한 지진이 일어난 적은 있지만 이번만큼 강력한 지진이 인위적인 자연 환경 조작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포항 지진은 인류가 경험한 가장 강한 인공 지진으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 2. 지열 발전 방식 중 인공 저류층 생성 방식이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출처: shutterstock) 끝나지 않은 논란과 지열 발전의 미래 정부 조사단은 지열 발전소에서 1.1km 떨어진 가까운 곳에 진앙이 위치한다는 점, 진원 깊이도 3km에서 7km 사이로 EGS 방식을 통해 단층에 물을 주입하던 위치와 가깝다는 점, 그리고 관측 이래 한 번도 진도 2.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서 주입공에 물을 주입할 때마다 지진이 발생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이번 지진이 지열 발전소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인재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종전의 연구 결과를 완전히 뒤집는 이번 사례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지구 환경과학부의 이강근 교수는 지열 발전소와 포항 지진의 연관성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지진이 발생한 지점에 충분한 압력과 임계점을 뛰어넘는 응력이 형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연구단은 임계 응력에 가까운 힘을 가한 단층이 존재할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번 지진은 EGS 방식의 안전성을 낙관하던 학자와 사업 관계자에게 경종을 울렸다. 미국 에너지부는 EGS 방식의 지열 발전이 미국인 전체가 사용할 전기량의 절반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이라 보고 12개 프로젝트에 총 1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곧 본격적인 지열 발전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포항 지진 사태가 벌어지자 속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우리나라도 당장 포항 지열 발전소를 폐쇄하며 당분간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기 어려워졌다. 종전의 화력, 원자력 발전 방식은 물론 다른 친환경 에너지보다 훨씬 작은 부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은 미래 에너지로 주목 받았던 지열 발전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지열 발전이 미래의 훌륭한 에너지원 중 한 축이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앞으로 지열 발전의 안전성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미래 세대가 땅 속 에너지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미래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 [기사 칼럼니스트 : 이형석] ==================================================================================== Copyright⒞2024 KISTI All right reserved. 모든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