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민트를 먹으면 청량감을 느끼는 이유? 추위를 감지하는 냉센서 때문

<KISTI의 과학향기> 제3805호   2022년 11월 14일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저승의 신 하데스는 대지와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아내 겸 저승의 여신으로 삼았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못 나가게 하려고 석류 세 알을 먹이는 수작도 부렸다. 납치와 감금으로 시작했지만, 수많은 불륜과 근친상간 때문에 ‘부부의 세계’ 뺨치는 그리스 로마신화다 보니 하데스는 아내 한 명만 지고지순 바라보는 순애보처럼 보인다.
 
gkeptm
사진 1. 베르니니가 조각한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하데스>. (출처: Encyclopedia Britannica) 
 
그런데 하데스도 요정 한 명과 바람을 피운 전적이 있다. 요정의 이름은 ‘민테’로, 페르세포네가 어머니 데메테르를 만나러 이승에 갔다 온 사이에 저승에서 바람을 피웠다. 이 소식을 들은 페르세포네는 분노해 민테를 필로스의 모래밭으로 끌고 가서 처참하게 밟아 죽였다. 죽은 민테의 몸에서는 강렬하고 상쾌한 향이 나기 시작했고, 멘테는 식물 ‘박하’(민트, Mint)로 변했다.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유독 몸이 떨리거나 이가 시린 이유는 하데스를 향한 페르세포네의 ‘한’(恨) 때문이 아닐까? 진짜 이유는 우리 몸에서 추위를 감지하는 냉각수용체 ‘TRPM8’ 때문이다.
 
 
우리 몸의 냉(冷) 센서 ‘TRPM8’
 
cryo electron microsco
사진 2. TRPM8 구조를 나타낸 그림. (출처: Joana C. Carvalho)
 
TRPM8은 세포막에서 전기를 띤 입자 ‘이온’이 오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이온 채널 단백질이다. 섭씨 25도 이하에서 온도를 느끼면 열리고, 온도가 낮을수록 활성이 커진다. 가을에 기온이 내려가 추위가 찾아오면 TRPM8 채널이 열려 몸은 으스스한 반응을 보인다. 일종의 저온 감지 센서이자 냉(冷) 센서인 셈이다. TRPM8에 문제가 생기면 추위를 심하게 느끼거나 편두통이 생긴다.

온도가 낮은 물질이 TRPM8에 결합하면 (+)전기를 띤 칼슘 이온(Ca2+)이 세포 안으로 들어온다. 이로 인해 신경세포에 전류가 발생하고, 뇌로 가는 전기신호가 만들어진다. 뇌는 이 신호를 받아 낮은 온도를 감지하고 몸을 떨어 체온을 높인다. 

TRPM8은 박하 추출물 멘톨(Menthol)과도 결합한다. 이 때문에 민트를 먹거나 박하 성분이 들어간 크림을 몸에 바르면 온도 변화가 없는데도 시원한 반응이 일어난다.
 
shutterstock168029429 1
사진 3. 박하 잎의 멘톨 성분이 저온 센서인 TRPM8을 작동시키기 때문에 관련 제품을 이용할 경우 청량감이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출처: shutterstock)
 
이석용 미국 듀크대 화학과 교수팀은 2019년 TRPM8 단백질이 추위를 감지하거나 멘톨 같은 화학물질과 결합할 때 일어나는 정확한 원리를 찾아냈다. 최근에는 포유류인 생쥐에서도 TRPM8 단백질의 작동을 확인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TRPM8와 PIP2의 ‘연결고리’
연구팀은 TRPM8의 분자 구조를 보기 위해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M)을 썼다. 일반 전자현미경으로 생체 고분자를 관찰하면 분자가 무너져 온전한 영상을 얻기 힘들다. 저온전자현미경은 세포 속 단백질 등 생체 고분자를 그대로 보기 위해 세포를 ‘냉동 상태’로 얼려 관찰한다. 연구팀은 이 현미경으로 TRPM8 영상 100만 개 이상을 촬영하고 합성해 고해상도의 입체 분자 구조를 얻었다.

연구팀은 TRPM8 단백질이 온도 저하를 감지하면 형태가 점점 바뀌면서 이온을 통과시킨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TRPM8을 통과한 이온들은 저온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를 활성화시켰다. 지질 PIP2가 TRPM8 통로를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알아냈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 의대 연구팀이 2005년 TRPM8과 PIP2 사이의 기작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발표한 바 있다.
 
science TRPM8 원리
사진 4. 세포막에 박혀 있는 TRPM8 단백질의 모습(왼쪽)과 PIP2와 TRPM8의 상호작용 및 활성화 과정(오른쪽)을 나타낸 그림. (출처: Science)

즉, 추위와 멘톨이 TRPM8 수용체를 자극하면, 칼슘이 세포 안에 들어와 PIP2를 분해한다. 만약 PIP2가 고갈되면, 수용체가 활성화되지 못해 세포가 차가움을 감지할 수 없다.
 
 
멘톨 손은 ‘약손’
얼음 찜질을 하면 감각이 무디어지는 것처럼 진통 효과를 낸다. 이석용 교수는 “TRPM8 단백질의 구조를 알면 염증이나 통증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염좌나 골절, 관절염이 발생하면 몸에 염증이 생긴다. 이때 저온 센서인 이온 통로를 활성화시키면 차가움을 유발해 염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저온 센서가 지나치게 활발히 작동하면, 찬물에 손을 담갔을 때 피부가 창백하게 변하는 레이노병이나 온몸에 만성 통증을 유발하는 섬유근육통 같은 이상 반응이 생길 수 있다. 이 교수는 “TRPM8 단백질 기능을 적절히 억제하면 이런 이상 반응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멘톨도 진통 효과를 낼 수 있다. 근육의 통증 완화를 돕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인도 민트 오일을 향수와 입욕제로 사용했다. 또 민트 오일을 이마와 코에 살짝 바르면 두통과 편두통을 잠시 억제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멘톨로 냉 센서를 조절해 치료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요즘 스트레스 같은 마음의 진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마음의 진통 때문에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뻐근하다면, 남편에게 사랑을 증명한(?) 페르세포네를 떠올리며 박하차 한 잔을 마셔보는 건 어떨까?
 

글: 강지희 메드업 기자/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평가하기
윤승환[사도 요한]
  • 평점   별 5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2-11-17

답글 0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쿠키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이거나 브라우저 설정에서 쿠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 사이트의 일부 기능(로그인 등)을 이용할 수 없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일링 구독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