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아이스맨(Iceman) 외치, 수십 년 만에 진짜 얼굴 찾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895호   2023년 09월 25일
1991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 부근의 알프스산맥 외츠 계곡에서 독일 관광객들이 등산하다 얼어붙은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뼈와 피부 상태가 온전하여, 관광객들은 조난해 사망한 등산가 시체로 여기고 신고했다. 이후 출동한 사람들은 이를 이송하는 도중, 시체가 현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체는 염소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사슴 가죽 주머니에서 화살집과 뼈로 만든 송곳, 석기를 소지했으며, 가죽에 풀로 채운 신발을 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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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지구온난화로 눈이 녹자 알프스산맥에서 냉동 미라 한 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출처: South Tyrol Museum of Archeology
 
과학자들이 방사성탄소 연대로 조사한 결과, 해당 시체는 5,300여 년 전(기원전 약 3,300년) 청동기 시대에 살았던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냉동인간에게는 시체가 발견된 외츠 계곡과 전설의 설인 예티에서 따와 ‘외치(Ötzi)’라는 이름이 붙었다. 과학자들은 게놈 분석 등으로 아이스맨(Iceman) 외치의 생김새와 사망 원인을 연구해왔다.
 
여기서 잠깐, 미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외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보기 전에, 미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살펴보자. ‘미라’라고 하면 대부분은 천으로 꽁꽁 싸맨 고대 이집트의 미라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미라는 크게 ‘자연 미라’와 ‘인공 미라’로 분류된다. 고대 이집트 미라는 인공적인 처리 과정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공 미라로 정의된다. 인공 미라는 고고학적 가치는 높지만, 제작 과정 중에서 장기가 모두 제거됐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생물학적 정보가 제한적이다. 
 
자연 미라는 자연 속에서 의도치 않게 부패하지 않은 시체를 말한다. 자연 미라가 만들어지려면 ‘부패가 일어나지 않는 환경’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꼭 필요하다. 사막처럼 건조한 환경에서는 시체의 수분이 잘 제거돼 ‘건조 미라’가 생길 수 있다. 늪지대라면, 늪의 진흙들이 공기와 해충의 접근을 차단해 ‘공기 차단 미라’가 나올 수 있다. 외치 같은 ‘냉동 미라’는 극지방 또는 고산 지대 같은 미생물이 살기 힘든 저온 환경에서 생성될 수 있다.
 
자연 미라는 인공 미라보다 수가 적지만, 다양한 생물학적 정보와 당시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유품, 운 좋으면 위장 속 음식물이나 혈액까지 보존돼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외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으면서 온전하게 보존된 냉동 미라이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된다. 이 귀한 미라가 하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 부근에서 발견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치의 발견 장소가 이탈리아의 영토임이 확인되면서, 외치는 1998년 이탈리아 사우스 티롤 고고학 박물관(South Tyrol Museum of Archeology)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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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이탈리아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에서 보관중인 외치의 미라. 출처: South Tyrol Museum of Archeology
 
외치의 첫 추정 외견: 하얀 피부, 밝은 눈, 풍성한 머리숱
외치의 게놈은 2012년부터 조사됐다. 이탈리아의 유럽 미라·냉동인간 연구소가 외치의 엉덩이뼈 DNA를 조사한 결과, 그가 사망 당시 키 160cm, 몸무게 50kg, 대략 45세의 남성일 것으로 추정했다. 외치는 사망한 직후 빙하에 묻혀 냉동 미라가 되었기 때문에 내부 장기와 조직, 생전에 섭취했던 음식물까지도 위에 남아있었다. 연구팀은 위 내용물 분석을 통해 그의 마지막 식사는 사슴과 염소 고기, 밀, 자두인 것으로 파악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외치가 격렬한 싸움 도중 목숨을 잃었으리라 추측했다. 외치의 몸에 심각한 상처가 많았기 때문이다.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은 자국이 발견되고, 외치의 도구에서 총 4명의 피가 검출됐다. 정확히는 칼에 1명, 화살촉 2명, 코트에 1명의 피가 묻어있었다. 외치의 상피들은 빙하 속에서 유실됐지만, 연구팀은 다파장 스펙트럼 촬영으로 그가 미세한 석탄 가루로 문지른 문신 61개를 가졌다는 것도 확인했다.
 
2012년에는 외치가 동유럽계 유래 유목민 집단의 자손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 유럽인들의 유전자는 대부분 세 가지 조상 집단이 섞인 형태다. 약 8000년 전 ‘서부 수렵채집인 집단’과 ‘아나톨리아 출신 농경 집단’이 섞인 뒤, 4900년 전 여기에 ‘동유럽 유래 유목민 집단’이 합쳐진 것이다. 당시 연구진은 게놈을 분석한 결과, 외치에게서 동유럽 초원 목축 집단의 유전적 흔적을 발견했다. 또 외치가 밝은 피부와 밝은 눈을 가진 털이 많은 남성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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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사우스 티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외치의 복원도. 출처: South Tyrol Museum of Archeology
 
반전된 외치의 외견: 까무잡잡한 피부, 어두운 눈, 민머리
하지만 2023년, 기술이 발달하고 외치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선사시대 유럽인의 게놈이 속속 발굴되면서 결론이 바뀌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요하네스 크라우제 교수팀은 첨단 염기서열 분석기술로 외치의 유전자를 재분석해, 셀 지노믹스(Cell Genomics)에 발표했다. 외치의 발견 이후 확보된 다른 선사시대 유럽인의 유전자와 비교한 결과, 연구팀은 외치가 동유럽계 유래 유목민 집단 간의 유전적 연관성이 낮으며, 그의 조상들이 동유럽계 유래 유목민 집단과 섞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 “외치가 초기에 동유럽계 유래 유목민 집단으로 추정되었던 이유는 그의 유전자 샘플이 오늘날 현대인의 DNA에 오염되어 나온 잘못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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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가 복원한 외치의 상상도. 출처: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연구팀은 외치의 조상이 아나톨리아 반도(현재의 튀르키예)에서 직접 넘어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외치의 추정 외견도 달라졌다. 초기 조사와 다르게 까만 피부와 어두운 눈 색깔, 짙은 머리를 갖게 된 것이다. 알버트 징크 이탈리아 보젠 유랙 미라 연구소 소장은 외치를 두고 “냉동으로 인해 변한 것이 아니라 외치 본연의 피부색”이라며 “지금까지 유럽권에서 발견된 모든 동시대 고인류의 피부색 중 가장 어두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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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분석 결과를 토대로 복원된 ‘외치’. 2012년도 연구 당시 추정했던 외치의 외형(왼쪽)과 2023년도 연구로 새롭게 추정된 외치의 외형(오른쪽). 출처: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외치가 대머리와 당뇨, 비만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던 것도 발견됐다. 연구팀은 외치가 성인 남성이 되면서 길고 두꺼운 머리카락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대머리화가 진행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사망 당시 비만 상태였으며 당뇨에 걸릴 위험이 컸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구팀은 “건강한 생활 습관 덕분에 실제 발병으로 이어지진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크라우제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외치의 외모에 대한 정보가 늘었지만, 그가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라며 “외치가 살던 시기, 지역의 사람들에 관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글: 김자옥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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