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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가 녹음기 써?” 기상천외한 도청의 세계
<KISTI의 과학향기> 제3863호 2023년 06월 05일현지 시각으로 지난 4월 8일,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의 내부 논의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져 큰 화제가 됐다. 이와 맞물려 도청 기술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도청은 ‘타인의 대화나 회의, 통화 따위를 몰래 엿듣거나 녹음하는 행위’를 뜻하며,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007 시리즈 같은 첩보영화나 산업스파이를 다룬 드라마, 뉴스 등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림 1. 대중매체처럼 녹음기로만 도청하는 시대는 지났다. (출처: Shutterstock)
다만 매스미디어에서 보이는 도청 기술은 대개 녹음기를 단추, 안경 형태로 만들어 몰래 녹음하는 식으로 단편적이다. 다양한 도청 기술을 보여주기보다 녹음기를 숨기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대중의 관심을 끈다. 음성은 곧 소리요, 소리는 공기를 매질로 하는 파동이다. 도청은 이를 몰래 기록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도청 기술은 과학의 영역에 있다. 따라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도청 기술도 덩달아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녹음기 외에 다른 방식으로 도청하는 기술이 개발돼 왔다.
유리창과 전구가 당신의 대화를 엿듣는다
레이저도청은 빛이라는 다른 방식을 활용한 도청 기술 예시 중 하나다. 레이저 도청은 집광력이 높은 레이저를 도청하고 싶은 공간의 유리창에 쏜 후 반사돼 돌아오면, 이를 분석해 음성으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두 파동이 만나면 진폭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간섭 현상이 일어난다. 대화 소리가 유리창을 진동시키면 파동 성질을 갖는 레이저가 간섭현상을 받고, 다시 퉁겨져 돌아왔을 때는 원래의 신호가 아닌 간섭에 의한 신호를 갖고 있다. 이 간섭 신호를 분석해 음성으로 변환하는 원리다.
레이저도청은 빛이라는 다른 방식을 활용한 도청 기술 예시 중 하나다. 레이저 도청은 집광력이 높은 레이저를 도청하고 싶은 공간의 유리창에 쏜 후 반사돼 돌아오면, 이를 분석해 음성으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두 파동이 만나면 진폭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간섭 현상이 일어난다. 대화 소리가 유리창을 진동시키면 파동 성질을 갖는 레이저가 간섭현상을 받고, 다시 퉁겨져 돌아왔을 때는 원래의 신호가 아닌 간섭에 의한 신호를 갖고 있다. 이 간섭 신호를 분석해 음성으로 변환하는 원리다.
레이저도청은 대화가 이뤄지는 공간에 갈 필요가 없어 들킬 위험이 적다. 또 레이저 강도를 높이거나 기타 장비를 추가하면 몇십 km 떨어진 곳에서도 도청할 수 있다. 믿기 힘들지만, 이미 1940년대 구소련이 이 방식으로 미국, 영국 대사관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기술은 그 이전부터 개발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2. 일상에서 사용되는 전구가 도청 수단이 될 수 있다. (출처: Shutterstock)
레이저 없이 전구의 떨림을 광센서로 측정해 도청하는 방식도 개발됐다. 지난 2020년 6월 이스라엘 벤구리온대학교와 바이츠만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전구의 미세한 진동을 분석해 도청하는 기술인 ‘램폰(lamphone)’을 공개했다. 램폰은 망원경, 광센서, 노트북 등 비교적 간단한 도구만으로 특정 공간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도청할 수 있다. 소리로 인해 천장에 매달린 전구의 표면이 진동하면 이를 광센서로 전기신호로 바꾼 후 음성으로 복원하는 방식이다.
그림 3. 램폰이 작동하는 원리. 소리로 전구 표면이 진동하면, 전기신호로 바꿔 음성으로 복원하는 방식이다. (출처: Black Hat security conference)
연구팀은 램폰으로 얼마나 정확하게 도청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사무실에 달린 전구에서 약 80피트(약 24미터) 떨어진 곳에 망원경을 배치하고, 접안렌즈 쪽에 광센서를 달았다. 그 후 방안에서 음악과 녹음된 연설을 재생했다. 전구가 발생시킨 진동을 측정한 후 전용 알고리즘을 이용해 음성으로 복원했다. 그 결과, 램폰은 미세한 진동으로도 음성 검출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복원한 노래는 음악 찾기 애플리케이션이 원곡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비슷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 도청 방지에도 힘써야
이처럼 도청 기술을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기 때문에 오롯이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면 약점을 찾아 백신을 개발하는 것처럼, 도청 기술의 약점을 찾아 방지하는 방법 역시 존재한다. 예컨대 레이저도청은 창문이 없는 공간에서 사용할 수 없다. 또 레이저가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캠코더 렌즈를 통해서는 보이기 때문에 장비를 갖추고 있다면 도청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전구의 진동으로 도청하는 기술 역시 약점이 있다. 천장이나 벽에 단단히 고정된 전구로도 음성 복원이 가능한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소리로 대화할 경우에 전구의 진동에서 도청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원래 소리와 얼마나 비슷한 지 등도 확인되지 않았다.
특정 기술에 대한 방지법 외에 중앙전파관리소는 개인 차원에서도 도청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먼저 중요한 업무 내용은 전화로 주고받지 말고 가까운 곳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게 좋다. 또 녹음기가 감춰져 있을 수 있는 물건을 꼼꼼히 살피고 의심스러우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전화의 경우 여닫은 흔적이 있는지 수시로 살펴봐야 한다. 중요한 대화는 도청을 방해하기 위해 라디오 등 다른 소리를 노출한 상태로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램폰을 개발한 연구팀은 “램폰은 첩보 활동에 상당히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종류의 도청 공격을 알고 이에 대한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전했다.
글: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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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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