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인류를 구한 '불멸의 세포' 주인, 72년 만에 권리를 되찾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893호   2023년 09월 18일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1951년 미국. 몸에 이상을 느낀 31살의 흑인 여성이 존스 홉킨스 병원의 산부인과를 찾았다. 당시 존스 홉킨스 병원은 그 일대에서 유일하게 유색인종 환자를 치료해 주는 전문병원이었고, 그녀를 포함해 의료보험이 없어 진료비를 낼 형편이 못 되는 흑인 환자들로 가득했다. 그저 예사로워 보이는 역사의 한 장면 속 여성은 지금,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과도 연이 깊다. 그녀의 이름은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 이름이 강력한 힌트이기에, 일부 독자들은 연결고리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최근 보도된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이 여성이 어떻게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는지 되짚어보자.
 
헨리에타 랙스
그림 1. 이야기의 주인공 헨리에타 랙스.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가 의학에 미친 영향은 이루말할 수 없다. 출처: 오리건 주립대학교(Oregon State University)
 
담배 농부 헨리에타 랙스, 자궁경부암에 걸리다
1920년 버지니아 남부에서 태어난 헨리에타는 어머니를 여의고, 조상들이 노예로 일했던 밭에서 담배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함께 자란 사촌과 14살에 첫 아이를 낳고, 20살에 정식으로 결혼했다. 학교를 제대로 마칠 수 없을 정도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둘은 담배농장에서 일하면서 가정을 일구었다. 이후 부부는 볼티모어로 근거지를 옮겨 슬하에 다섯 아이를 두었다.
 
어느 날 헨리에타는 다섯째를 출산한 지 4개월 반 만에 병원을 찾았다. 속옷에 묻어난 이상 출혈 때문이었다. 당시 그녀는 스스로 자궁경부를 만졌을 때 무언가 딱딱한 게 만져지는 것을 느꼈는데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자궁경부암 종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검사를 시행했던 헨리에타의 주치의는 검사 보고서를 받은 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악성종양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이전까지 ‘자궁경부’나 ‘조직검사’ 같은 용어를 모르고 살던 그녀가 병을 얼마나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병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가족들을 안심시켰고, 주치의의 권유대로 방사성 금속인 라듐을 이용한 치료에 임했다.
 
 
죽은 헨리에타 랙스의 살아있는 일부, ‘헬라(HeLa) 세포주’
문제는 수술의 절차에 있었다. 헨리에타는 수술 당시 ‘수술 동의서’라는 이름의 양식에 서명했는데, 여기에는 요컨대 ‘의료진의 판단하에 환자에게 적절한 수술 및 치료, 전신 마취를 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만 있었다. 표본의 기증 여부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외과의는 헨리에타 몸속 종양과 정상 조직 각각에서 동전 크기의 표본을 채취해 조직배양학자에게 넘기고 말았다. 비록 인체유래물에 관한 윤리 의식이 정립되지 않았던 데다 관련된 법이 없어 불법은 아니었지만, 지금 시각에서는 상당히 비윤리적으로 비추어지는 행위였다.
 
게다가 이 당시에는 암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지식이 너무 많았다. 의학 연구자들은 암에 관한 수많은 수수께끼를 풀려면 암세포와 정상 세포 간의 차이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 조직배양학자들은 체외에서 살아있는 종양 세포를 배양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천착했다. 헨리에타의 조직 표본 역시 이 실험을 위해 수집된 수많은 표본 중 하나였다.
 
HeLa III그림 2. 세포골격 미세소관(자홍색)과 DNA(청록색)가 있는 헬라세포 이미지. 출처: Wikipedia
 
헨리에타의 자궁경부에서 채취한 종양 조직은 놀랍게도 다른 대부분의 조직 표본과 달리 실험실에서 계속해서 생존하고 수를 늘렸다. 이 세포주에는 헨리에타의 이름과 성의 앞 글자들을 따 ‘HeLa(헬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초로 ‘불멸’의 존재가 된 이 세포는 대량으로 배양되어 세계 각지 암 연구자들에게 배송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반면 헨리에타는 병이 빠르게 악화해 해를 넘기지 못하고 1951년 10월 4일 존스 홉킨스 병원의 유색인 병동에서 사망하여 이름 없는 무덤에 묻혔다.
 
헬라세포가 현대 의학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궁경부암의 원인인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 개발뿐 아니라 소아마비 백신, 겸상적혈구빈혈증, 혈우병, 헤르페스, 인플루엔자, 백혈병 및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 심지어 코로나19 백신 개발까지 현대 의학의 근간이 되는 수많은 연구가 헬라세포를 사용해 이루어졌다. 심지어 헬라세포를 이용한 연구 덕분에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도 2명이나 있었다.
 
 
유족들, 동의하지 않은 기증자의 권리를 찾아 싸우다
불행히도 생전의 헨리에타와 유족들은 그녀의 일부가 무한히 증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유족들은 1975년에서야 한 기자가 헬라세포에 대해 알고 취재해 오면서 뒤늦게 이를 전해 들었다. 심지어 이들은 몇 년 전 존스 홉킨스 병원으로부터 혈액 표본을 제공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무료 건강검진이라 생각해 응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야 헬라세포를 식별할 표지자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다.
 
어머니의 세포가 당사자나 가족의 동의 없이 온갖 실험에 사용됐으며, 특허권까지 받아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행여 세포 채취 때문에 헨리에타의 병이 더 나빠진 것은 아닌지, 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했는지, 헨리에타의 공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왜 그녀를 건강보험에 가입시키지 않고 방관했는지 등 유족들은 여러 의문에 휩싸여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들 자체적으로 헬라세포의 진상을 추적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찮았다. 2000년에 이르러서야 레베카 스클루트라는 기자가 본격적으로 가족들을 취재해 2010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헬라세포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poster
그림 3.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영화화까지 이루어져 대중들에게 헨리에타 랙스의 이야기를 널리 알렸다. 출처: HBO
 
이 책을 계기로 헬라세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 온 헨리에타의 유족들은 사람들의 큰 지지를 얻었다. 특히 오프라 윈프리가 헨리에타의 딸 역할로 분한 드라마를 통해 이 사연은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그 여파로 2013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는 헬라세포의 DNA 정보 사용에 대해 이 가족들의 일부 통제권을 부여했다. 유족들은 아무런 장벽 없이 세상에 온전히 공개될 뻔했던 헬라세포의 DNA 정보를 NIH의 관리하에 심사를 거쳐 의뢰자에게 전달되도록 합의했다. 이는 연구 참여자가 실험 대상이 아닌 동반자라는 인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장치였다.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HHMI)에서는 헬라세포를 사용한 대가로 헨리에타 랙스 재단에 수십만 달러를 지급했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헨리에타 랙스에게 과학적 혁신의 토대를 제공했다며 공식적으로 경의를 표했다. “5,500만 톤 이상의 헬라세포가 전 세계에 배포되어 7만 5,000개 이상의 연구에 사용되었다”며 헬라세포가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흑인을 비롯해 전 세계 소외된 환자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진료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진행형으로 되찾아가는 권리, 지식재산권보다 중요한 가치
같은 해 유족들은 영향력 있는 변호사단과 힘을 모아 동의 없이 헬라세포를 전 세계 실험실에 판매한 생명공학 기업 서모피셔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상대로 소송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유명한 민권 변호사 벤 크럼프를 비롯한 변호사단은 헨리에타 랙스가 ‘착취’ 당했으며, 이는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오랜 투쟁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또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이 엄청난 부당 이익을 얻었음에도 유족들에게 조금도 나눠주지 않았다며, 부당이득의 반환 명령을 법원에 요청했다.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은 공소시효가 지났음을 주장하며 유족들에 맞섰지만, 결국 지난 8월 2일 유족들과의 비공개 협상 끝에 합의를 마쳤다. 합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족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앞으로 다른 회사들을 상대로도 소송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헨리에타 랙스의 헬라세포 사례 외에도 부당한 방식을 통해 과학 발전을 이룬 사례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포주 ‘WI-38’다. 이 세포는 1962년 합법적인 낙태를 한 스웨덴의 한 여성의 태아로부터 채취됐으며, 해당 여성은 몇 달 후 연구자들이 그녀의 병력을 묻기 전까지 태아에서 세포가 채취됐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낙태된 태아와 연관되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크지만, 현재 이 세포는 소아마비, 홍역, 볼거리, 풍진, 수두, 대상포진, 아데노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다.
 
HenriettaLacksstatue Bristol wideview
그림 4. 미국 브리스톨대에 설치된 헨리에타 랙스의 기동상. 출처: Wikimedia Commons
 
오늘날에는 어떨까? 대부분은 인체유래물 및 임상시험에 관한 법률 덕분에, 생명 윤리적 가치가 예전보다는 잘 지켜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최신식 사전동의서조차 “상업화에 대한 언급이 환자가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며 주의를 요한다. 과연 이러한 동의서가 유효할까? 일반인들이 부당한 동의서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을까? 나 개인뿐이 아닌 정의로운 과학적 발전을 위해 생각해 볼 문제다.
 

글: 정유희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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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땡
  • 평점   별 5점

잘 보았고,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10-02

답글 0

윤승환
  • 평점   별 5점

감사합니다.

2023-09-23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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