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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 잠수정 심해 속에 사라지다. 심해 생물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873호 2023년 07월 10일2023년 6월 16일, 잠수정 타이탄이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관찰하기 위해 조종사 한 명과 승객 네 명을 태우고 캐나다 뉴펀들랜드섬을 출발한 후 동쪽으로 약 700km 정도 나아갔다. 타이탄은 약 2시간 반에 걸쳐 수심 4,000m의 심해까지 잠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잠수가 시작되고 1시간 45분 만에 타이탄은 해수면에 있던 현장 수송선 폴라프린스호와 통신이 끊겼다.
그림 1. 타이타닉호 관광 잠수정 타이탄의 3D 모델링. 이 잠수정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출처: Wikipedia
미국과 캐나다 해안경비대는 곧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난항을 겪었다. 경기도의 세 배, 서울의 20배나 되는 넓이에, 수심이 약 4,000m나 되는 해역에서 길이가 불과 6.7m밖에 안 되는 하얀 잠수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6월 22일 오전 11시 45분(미 동부 표준시), 미 해안경비대는 수색 활동을 종료하며 탑승객이 전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타이타닉호 뱃머리로부터 488m 떨어진 해저에서 테일콘(기체 꼬리 부분의 원뿔형 구조물) 등 잠수정 잔해물 5개를 발견한 것이었다. 타이탄을 탄 탑승객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심해 잠수정 사건, 그 자세한 내막은?
미 해안경비대는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근거로 잠수정 내부에 균열이 발생해 심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점을 꼽았다. 물체가 외부 압력을 못 이겨 내부로 무너져 파괴되는 ‘내파(內破, implosion)’가 벌어진 것이다. 심해 수압은 얼마나 강할까? 물체의 면 혹은 내부 면을 향해 수직으로 누르는 힘을 ‘압력’이라고 한다. 지상에서 공기가 누르는 힘, 표준대기압(1기압)은 0.1MPa로 이는 새끼손톱 정도의 넓이인 1㎠의 면에 1kg의 힘이 실린 상태다. 참고로 압력밥솥의 압력은 0.1~0.2MPa, 가스탱크는 1MPa 전후, 가스통 내부의 압력은 수십MPa 정도다.
그림 2. 수심 6~11km에 이르는 깊은 부분을 '하달존'이라 부른다. 출처: Shutterstock
수압은 수면에서 10m 깊어질 때마다 0.1 MPa씩 압력이 더해진다. 타이탄 호가 향한 약 4,000m(4km)의 심해층에 도달하면 대기압의 400배에 해당하는 40MPa의 압력이, 가장 깊다고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의 약 1만m(10km)는 약 1,000배인 100MPa의 압력이 가해진다. 수심 6~11km에 이르는 깊은 부분에서는 쇳덩이도 찌그러진다. 오죽하면 그리스 신화 속 죽음과 저승의 신 하데스의 이름을 따 하달존(Hadal Zone, 초심해저대)이라 부를 정도다.
심해 수압은 컵라면 용기를 압축하거나 뚜껑을 닫은 빈 깡통을 순식간에 찌그러뜨릴 정도로 강력하다. 잠수정이 타이타닉호 인근까지 내려가 내파했다면, 잠수정 밖으로 튕겨 나온 탑승객들은 1㎠ 약 400kg이라는 엄청난 하중에 노출된 셈이다. 영국 사우샘프턴대학교 해양 공학자 블레어 손튼 교수는 “잠수정에 작용한 압력은 파리 에펠탑 무게인 약 1만 톤에 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해의 생물은 어떻게 압력을 버티는가?
춥고 어두컴컴하며 엄청난 수압이 도사리는 심해 속에는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초롱아귀나 블롭피쉬 같은 생물이 멀쩡하게 살고 있다. 심해생물은 압력 가득한 혹독한 환경을 어떻게 견디는 걸까?
일부 심해어는 부레를 사용하지 않거나, 아예 부레를 제거하는 식으로 심해의 수압에 대응한다. 보통 물고기는 부레에 공기를 채워 부력을 얻는다. 그런데 부레 속에 공기를 채우면 몸을 둘러싼 심해의 수압을 견딜 수 없기에 심해어는 부레에 공기를 채우는 대신 지방을 축적해 부력을 얻는다. 일부 심해어는 간을 일부러 지방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림 3. 바다 밖으로 포획한 블롭피쉬(위)와 심해에 있는 블롭피쉬(아래)의 모습. 바깥과 다르게 심해 속 블롭피쉬는 엄청 못생기지는 않았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아예 근육과 피부 대부분을 물로 채우는 것도 대응책 중 하나다. 수분을 가득 머금으면 몸이 몽실몽실해지고 수압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수분을 대량으로 함유하는 곤약이나 두부를 깊은 바다에 가라앉혀도 그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몸이 녹아내린 것처럼 보이는 블롭피쉬의 못생긴 외모는 사실 깊은 바닷속 수압을 이겨내기 위한 전략의 결과물이다.
딱딱한 외피로 몸을 보호해 수압을 이겨내는 방법도 있다. 위에서 말한 피부나 근육을 몽실몽실하게 만드는 전략과 반대되는 방법이다. 심해에 사는 꽃게류나 새우류처럼 몸을 두꺼운 껍질로 보호하는 외골격계 동물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아예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유전 정보와 단백질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심해에 정착한 동물도 있다. 높은 수압에 적응하기 위해 근육을 만드는 단백질을 더 강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어묵을 만들 때 재료로 사용되는 대구목 민태과의 심해어들이 이런 전략을 구사한다.
그림 4. 해저 7,000~8,000m에 사는 마리아나 스네일피쉬의 모습. C는 포획한 스네일피쉬로, 바깥에 끌어올리자마자 크기가 작아지고 녹아내리듯이 흐물거렸다고 한다. 출처: Wikipedia
삼투 물질 또는 삼투질로 염분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액체가 이동하는 압력, 삼투압을 조절해 수압에 대응하는 동물도 존재한다. 몸 밖에서 압박하는 수압을, 몸속에서 물을 밀어내는 삼투압으로 상쇄시키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는 삼투 물질 중 하나인 트리메틸아민옥시드(TMAO, 물고기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의 주성분) 수치가 높은 심해생물일수록 더 깊은 바다에 살 수 있으며, 수심 8,400m까지의 수압을 이겨낼 수 있다고 보았다. 중국 서북공업대학 연구진은 마리아나 해구(해저 7,000~8,000m)에 서식하는 마리아나 스네일피시(Pseudoliparis swirei)의 경우, TMAO가 체내 단백질이 변성되는 것을 막는 덕에 수압을 견딜 수 있다고 2019년 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했다. 영국 리즈대학교 연구진도 2022년 TMAO가 물 분자와 강한 수소 결합을 형성해 “수중에서 고정점” 역할을 한다고 Communications Chemistry에 밝혔다.
과학기술이 많이 발달했음에도 인류가 탐사한 심해는 전체의 2%밖에 안 되며, 심해생물의 50% 이상은 미확인 종이다.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많기에 심해는 지구 안에 있는 외계와 다를 바 없겠다. 또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위험이 많이 남았기에 인간이 자연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타이탄’이 내파된 원인이 허술한 설계와 안전불감증임이 밝혀지면서, 우리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할 때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로운 영역을 발굴할 모험심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니까 말이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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