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더 글로리' 전재준이 앓는 색약과 색맹, 치료법 있을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833호   2023년 02월 20일
전재준
사진 1.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은 “내가 색맹이지, 장님이냐?”며 적록색맹에 대한 자격지심을 대놓고 드러낸다. (출처: 넷플릭스)
 
학교 폭력과 복수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을 잔인하게 괴롭힌 가해자 중 한 명인 전재준에게는 콤플렉스가 하나 있다. 바로 색약, 정확히는 ‘적록 색각 이상’으로 녹색과 적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자기와 다른 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전재준의 지독한 안하무인은 색약이라는 열등한 부분을 감추기 위한 위악이기도 하다. 복수를 계획하는 문동은은 그녀에게 흑백에서 알록달록하게 변했다며 감탄하는 전재준에게 되받아친다. 
 
“넌 모르잖아, 알록달록한 세상을.”
 
색각 이상의 원인과 다양한 색 구별 보조도구들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색각 이상은 색약과 색맹으로 나뉜다. 색약은 빛의 삼원색을 감지하지만 그 감각이 저하되어 있다. 대개 적색과 녹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적록색약, 청색과 황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황록색약, 모든 색에 대한 감각이 둔한 전색약으로 나뉜다. 색맹은 특정 색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경우다.
 
색각 이상은 왜 생기는 걸까? 먼저 색 지각부터 알아보자. 망막에 있는 ‘시세포’는 상이 망막에 맺히면 이를 전기 신호로 변환해 뇌에 전달한다. 이 시세포를 구성하는 세포 중 ‘원추 세포’가 색 감각에 관여한다. 원추세포는 적색, 녹색, 청색 광선에 특별히 감수성이 높은 광색소를 갖고 있으며, 광색소가 빛을 흡수하면 원추세포가 이에 반응해 색을 인식한다. 빛의 파장에 따라 각각 S-원추세포, M-원추세포, L-원추세포라 하며 원추세포가 3색 계열에 대해 자극을 받은 비율에 따라 여러 색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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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정상과 녹색맹, 적색맹, 청색맹이 바라보는 색깔들(왼쪽부터).(출처: shutterstock)
 
색약은 사고나 질병으로 시신경이 손상돼 발생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유전적 이상으로 원추세포의 문제가 있어 색을 인식하는 민감도가 떨어진다. 색맹은 색을 지각하는 특정 원추세포가 없을 때 생긴다. 당뇨병 같은 질병으로 발생한 색각 이상은 치료할 수 있지만, 유전적 이상으로 발생한 색각 이상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선천적 문제이므로 훈련으로도 교정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색각 이상을 겪는 사람을 위한 다양한 보조도구다. 
 
드라마에서 전재준은 가운데 부분이 빨간 콘택트렌즈를 착용한다. 이 렌즈는 색약 환자들을 위해 1997년 영국 코닐 사가 개발한 ‘크로마젠 렌즈’다. 빨간 부분은 필터로, 이 필터는 색약 환자가 비슷한 파장으로 느끼는 빨간색과 초록색을 서로 다른 파장으로 바꾸어 다른 색으로 구별하게 돕는다.
 
색약 환자를 위한 안경도 있다. 미국에 엔크로마 사가 개발한 ‘엔크로마’라는 이 안경은 마치 선글라스처럼 렌즈에 코팅이 되어 있다. 이는 멀티 노치 필터(Multi-notch Filtering)로 적색과 녹색이 겹치는 구간의 빛을 차단해 녹색과 적색이 구별하도록 하고 각 색을 세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돕는다.
 
유전자 치료로 색맹 없는 미래를 꿈꾸다
 
그렇지만 정말로 색각 이상의 근본적 치료는 불가능한 걸까? 과학자들은 보조도구를 이용한 교정에만 만족하지는 않았으며 완전 색맹까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2015년에 미국 워싱턴 국립 영장류연구센터에서는 적색과 녹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수컷 다람쥐원숭이에게 바이러스를 매개체로 원숭이 망막에 적색을 식별하는 원추 세포 광수용체 유전자를 주입했다. 그러고 나서 20주 이상 터치스크린을 통해 회색 점이 가득한 배경에서 색깔이 있는 점을 골라내는 훈련을 시켰는데, 원숭이들이 점점 색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애초에 색 지각 신경회로가 없는 영장류에서 인위적 치료로 색 지각이 가능함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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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CNGA3' 유전자를 주사받은 환자들은 색을 식별하는 능력(BCVA)과 대비 감도(Contrast sensitivity)가 유의미하게 늘었다. (출처: JAMA Network)
 
2020년에는 이 실험을 인간에게 확대했다. 독일 튀빙겐대학 안과병원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학(LMU) 의대 안과 연구팀은 망막에 색 지각 유전자 ‘CNGA3’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완전 색맹 환자들이 색을 구별하도록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완전 색맹은 녹색, 청색, 적색을 모두 구별하지 못해 모든 사물이 회색으로 보이는 아주 희귀한 증상이다. 원인은 원추세포에 있는 ‘CNGA3’ 유전자 결함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CNGA3 유전자를 인체에 해가 없는 아데노바이러스를 매개체 삼아 실은 뒤 24세~59세 사이의 완전 색맹 환자 9명의 망막에 주사했다. 12개월 동안 시각 테스트를 여러 번 진행한 결과, 색을 식별하는 능력이 유의미하게 증가함을 확인했다.
 
2021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존슨앤드존슨의 유전자 치료제 제약기업인 메이라GT가 개발하는, CNGA3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색맹을 치료하는 후보물질 ‘AAV-CNGA3’의 우선심사를 승인하기도 했다. CNGA3 유전자 돌연변이는 눈의 원추형 광수용체가 기능을 하지 못해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유전성 망막질환이다. AAV-CNGA3은 망막하 주사(subretinal injection)로 약물이 눈 뒤쪽 원추세포 수용체에 전달돼, 원추세포 기능을 회복시키는 유전자 치료법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치료제가 시장에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그 장래가 밝은 것만은 분명하다. 먼 훗날에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글: 권오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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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환.
  • 평점   별 5점

감사합니다.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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