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야구 홈런 수가 늘어난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861호   2023년 05월 29일
호쾌하게 터지는 역전 홈런은 스타디움을 메우거나 TV 앞에 앉은 야구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타오르게 한다. 하늘을 가르며 시원하게 날아가는 홈런은 야구를 보는 묘미 중 하나다. 하지만 홈런이 너무 자주 나오면, 야구를 보는 재미가 줄어든다. 쫄깃한 투수전이나 안타를 쌓아가며 엎치락뒤치락 벌이는 점수 싸움 등과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야구의 매력이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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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야구 경기, 스포츠는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출처: Shutterstock)
 
시즌마다 ‘올해는 타격이 활발하고 투수가 힘을 못 쓰는 타고투저다’ 혹은 ‘투수의 능력이 타자들 보다 뛰어나 리그 전체적인 득점저하가 일어나는 투고타저다’ 평가가 나오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홈런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유가 무엇일까? 경기장 구조의 변화나 데이터 분석의 발전 등 여러 가지가 홈런 증가의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새로운 요인이 하나 더 등장했다. 바로 기후변화다.
 
더운 날에는 홈런 많이 나온다
 
날이 더우면 홈런은 더 많이 나온다. 이는 자연스러운 물리 법칙이다. 따뜻한 공기는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공기가 더워지면 분자는 빠르게 움직이고, 분자 사이 공간이 넓어지면서 밀도는 떨어진다. 이에 따라 공기 저항이 적어져 타구는 더 멀리 날아간다. 
 
그렇다면 현재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으니, 그 영향으로 홈런도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실제로 이를 연구한 과학자들이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 지리학과 저스틴 맨킨 교수팀이 기후변화와 메이저리그 홈런 숫자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를 학술지 ‘미국 기상학회보(Bulletin of the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에 최근 공개했다. 야구를 향한 연구팀의 열렬한 ‘팬심’과 ‘데이터’가 풍부하다는 야구의 특징이 결합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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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다트머스대 연구팀이 해마다 추산한 미국 메이저리그 홈런 개수. (출처: 미국 기상학회보)
 
연구진은 1962년에서 2019년까지 메이저리그 경기 10만 회와 실제 타격 22만 회의 데이터, 경기가 벌어진 날의 기상 정보를 분석해 기온과 홈런 개수와의 관계를 추적했다. 추적 결과, 기온이 평균보다 10℃ 높은 날 치룬 경기에서는 홈런이 평소보다 20% 가까이 더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에서 2019년 사이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때문에 약 500개의 홈런이 더 나온 것으로 연구진은 추산했다. 매 시즌 평균 58개의 홈런이 추가된 셈이다. 
 
야구가 데이터 스포츠인 덕분에
 
10만 회의 경기 동안 쌓인 풍부한 데이터 덕분에 기온과 홈런 개수에 대한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다행히 기온은 경기장 구조나 경기장이 위치한 고도, 볼과 배트의 특성, 약물 사용 등 홈런 숫자에 영향을 미칠 다른 요소와 독립적이라 연구가 비교적 단순해졌다. 제1저자인 다트머스대학 박사 과정 크리스토퍼 캘러한은 “계절 평균에 맞지 않게 기온이 높은 날에는 기온이 낮은 날에 비해 홈런이 많이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라며 “타자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은 매일의 날씨에 따라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보았다”라고 말했다.
 
경기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활용한 타구 분석도 연구에 힘을 보탰다. 메이저리그 경기장에는 2015년부터 초고속 카메라가 대부분 설치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날이 덥건 춥건 상관없이 타구의 각도와 속도 등을 항상 같은 위치에서 같은 앵글로 분석해 비교할 수 있다. 기온과 홈런 숫자를 분석한 경기 단위 모델과 카메라에 찍힌 타구를 분석한 모델은 기온이 홈런숫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거의 같은 결과를 예측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기후모델을 활용해 기온 상승으로 인한 홈런이 몇 개나 더 나왔는지 추정할 수 있었다.
온도 상승에 따른 구장별 홈런 숫자 예측다트머스대

그림 3. 온도 상승에 따른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장별 홈런 숫자 예측 분석 결과. GMST는 지구 표면 온도 변화를 말하며, 지구 표면이 1.5°, 2°, 3°, 4°C씩 오를 때마다 각 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추가 홈런 수를 계산했다. (출처: 미국 기상학회보)
 
연구진은 미국의 주요 야구 경기장에서 기온과 홈런 숫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분석했다. 야간 경기를 잘 치르지 않는 야외 구장인 시카고 링글리필드에서 영향이 가장 컸다. 기온이 1℃ 올라갈 때마다 시즌당 홈런이 15개 늘었다.
 
기온 상승의 영향이 가장 미미했던 경기장은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였다. 이 경기장은 메이저리그 경기장 중 유일한 완전폐쇄형 구장이다. 트로피카나 필드는 플로리다의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천장이 완전히 덮인 돔 방식으로 지어졌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지표면 온도 상승이나 하강이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돔 구장은 닫힌 공간이라 공기가 쉽게 더워지고 건축 구조로 인한 상승 기류가 생겨 일반 구장보다는 홈런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또 기온이 떨어지는 야간에 경기를 하면, 기온과 공기 밀도가 타구의 비거리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 수 있다.
 
기후변화는 야구의 문제, 동시에 우리 삶의 문제
 
연구진은 이 연구가 기후변화가 현대인의 문화의 일부가 된 메이저리그 야구를 포함해,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이어지면 홈런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21세기 전체로 따지면 누적 수 천 개의 메이저리그 홈런이 기후변화로 인해 더 터져 나오리라는 추산이다.
 
홈런이 많이 나오면 박진감 있는 경기가 많이 나와 팬들이 즐거울 수 있지만, 기온 상승은 선수나 관중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뙤약볕 아래서 뛰어야 하는 선수나 관중의 건강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야간 경기를 늘리거나 돔 구장을 더 건설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중 하나인 야구를 플레이하거나 즐기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홈런은 야구 경기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다. 그 클라이맥스가 기후변화 때문에 반복된다면, 야구를 예전처럼 즐겁게 보기 힘들지 않을까?
 
글: 한세희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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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mee
  • 평점   별 5점

잘 읽었습니다 ㅎㅎ

2023-06-09

답글 0

재밌어요
  • 평점   별 5점

넘 재밌네욤 ㅎㅎ

2023-05-31

답글 0

윤승환 사도 요한.
  • 평점   별 5점

좋은 이야기와 정보 감사합니다.

2023-05-31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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