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평창올림픽에선 왜 러시아 국기를 볼 수 없을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093호   2018년 02월 14일
세계인의 축제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러시아 국기를 볼 수 없고, 러시아 국가도 들을 수 없다. 러시아 정부와 러시아 체육계가 공모하여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조직적인 도핑을 저지른 것이 탄로 났기 때문이다. 금지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된 선수들만이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들(Olympic Athletes from Russia, OAR)’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한다. 도대체 도핑이 무엇이길래, 국제 스포츠 사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걸까?

남성성을 만드는 테스토스테론
 
도핑 약물의 성분은 대개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일종으로 흔히 ‘남자다움’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남성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테스토스테론이 기능하지 못한다면 남성은 아예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태아는 발생 초기에 염색체 타입이 XX(여성)이든 XY(남성)이든 상관없이 장차 남성의 생식기가 될 볼프관(wolffuan duct)과 여성의 생식기가 될 뮐러관(mullerian duct)을 모두 가진다. 만일 태아가 남자아이라면 임신 8주 경, 태아의 조그만 고환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고, 이 신호를 기점으로 볼프관은 고환과 정관 및 남성 생식기로 분화되고 뮐러관은 퇴화한다. 만약 태아가 여자아이라면 고환이 만들어지지 않기에 테스토스테론 신호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임신 10주경까지 테스토스테론이 감지되지 않는다면 볼프관은 자동으로 퇴화하고 뮐러관이 자궁을 비롯한 여성생식기로 분화된다.
 
질병 치료에서 경기력 향상으로
 
사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이 남성다운 몸과 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다. 따라서 선천적인 이유로 고환이 없거나 위축된 경우,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기가 어려워진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아나볼릭-안드로게닌 스테로이드(AAS, anabolic-androgenic steroid)다.
 
AAS를 주입받은 이들의 몸은 근육이 늘고 체모가 자라고 성대가 굵어지면서 남성답게 변해간다. 특히나 AAS는 체내의 단백 동화 현상을 활성화시켜 근육의 양과 강도를 늘려주는 역할을 하기에, 목숨이 위험할 만큼 체중이 감소한 환자나 신부전 등으로 영양 공급이 부족할 수 있는 환자들에게 근육을 늘려 건강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극심한 기아와 굶주림으로 아사 위기에 놓인 사람들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했더니 체중 증가와 체력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는 연구 보도도 있다. AAS가 근육의 양을 늘려줄 뿐 아니라 강도도 강화시켜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AAS에 눈독을 들이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치열한 몸의 격전장에서 경쟁하는 스포츠 선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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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약물로 오용됐다. (출처: shutterstock)
 
악마의 유혹, 그리고 반도핑의 역사
 
사실 늘 날이 선 경쟁 속에 살아가는 직업 스포츠 선수들이 신체가 가진 한계점을 높이기 위해 약물을 사용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악습이었다. 이미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환각 성분이 든 무화과를 먹었다거나, 로마 시대의 검투사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흥분제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욕구가 과학기술과 만나자 그 파장은 훨씬 더 증폭됐다. 이제 선수들은 환각성 곰팡이나 코카나무 잎, 카페인에서 더해 암페타민과 같은 강력한 각성제와 에페드린, 각종 중추신경 자극제와 함께 테스토스테론을 포함한 AAS에까지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물질들은 근력을 키워주고 폐활량을 증가시키며 피로를 덜 느끼게 하고 정신을 맑게 유지해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는 이유로 점점 퍼져나갔다. 점차 이런 약물들은 선수들 사이에서 ‘드러내지는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존재가 돼 있었다.
 
암암리에 남용되던 약물에 본격적인 제제가 가해지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였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가 흥분제 과다복용의 부작용으로 경기 도중 급사하는 사고가 일어난 뒤였다. 특히나 이 사건의 경우, 해당 경기가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상태였기에 이 경기를 시청하던 시청자들에게도 약물 과다복용의 무서움을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선수들 사이의 약물 복용이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것을 감지한 스포츠위원회는 이후 공식적인 ‘반도핑 규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9년 강력한 제제 수단을 가진 ‘세계반도핑기구’가 자리 잡은 이후에는 이런 집단적 광기는 사그라 들었지만, 여전히 경쟁의 벼랑 끝에 내몰린 선수들은 은밀히 금단의 열매에 손을 내밀곤 한다.
 
선수의 생명과 공정한 경쟁을 위해
 
흔히 많은 이들이 반도핑 규정에 의해 스포츠 선수들의 약물 복용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 하는 숭고한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반도핑기구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은 스포츠 정신이 아니라 선수들 그 자체다. 스포츠계에서는 그간 젊고 창창한 유망주들이 한때의 유혹에 못 이겨 금지약물에 손을 댔다가 폐인이 되거나 혹은 목숨까지 잃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목숨까지 위협받아가며 메달에 집착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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