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쌍둥이 분자, 소리로 분리한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806호   2022년 11월 21일
똑 닮은 생김새의 쌍둥이들처럼 자연계의 많은 분자도 자신과 똑 닮은 ‘쌍둥이 분자’가 있다. 쌍둥이 형제의 성격이 서로 다르듯, 쌍둥이 분자 역시 서로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지곤 한다. 이들 쌍둥이 분자는 용액 안에서도 늘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분리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연구팀이 소리만을 이용해 한 용액 안에서 서로 다른 키랄성을 가지는 분자들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서로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은 구조를 가지는 분자의 성질을 거울상 이성질성 또는 키랄성이라고 한다. 쌍둥이처럼 닮은 키랄성 분자들은 양손처럼 서로를 거울에 비춰보면 같은 모양이지만, 아무리 회전시켜도 겹쳐지지 않는다.
 
화학에서 키랄성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체분자들은 특정 키랄성을 가지는 분자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대의 키랄성을 가진 분자는 사용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해로운 작용을 일으킨다. 하지만 키랄성 분자들은 입체 구조적 관점에서만 서로 다를 뿐, 물리·화학적 성질이 유사하기 때문에 용액 안에서 두 물질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연구팀은 산화-환원에 따라 서로 다른 키랄성을 보이는 분자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페릴린 다이이미드(PDI)는 L-페닐알라닌 유도체(LPF) 분자와 결합하면 왼쪽 방향으로 꼬인 고분자를 형성한다. 반면 PDI가 환원되면, 오른쪽 방향으로 꼬인 분자를 이룬다. 키랄성이 다른 두 분자는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을 띤다.
 
환원된 PDI/LPF 용액이 담긴 접시에 소리를 재생하자, 공기와 접촉이 활발한 부분에서는 산화 반응이 일어나며 용액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페트리 접시에는 산화된 붉은색과 기존의 푸른색이 번갈아 나타나는 동심원 모양의 색깔 패턴이 나타났다. 서로 다른 키랄성을 가지는 물질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김기문 연구단 단장은 “소리는 에너지가 작아 화학 반응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여겨졌지만, 우리 연구팀은 지금까지 소리로 산화-환원 반응, 효소 반응 등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특히, 이번 연구의 결과가 의약품 제조 등 키랄성 물질의 분리·조절이 필요한 여러 화학 반응에서 획기적 도구로 사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11월 16일 화학 분야 저명 국제학술지인 ‘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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