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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개구리 독으로 진통제 만든다구?
<KISTI의 과학향기> 제626호 2007년 07월 11일
하얀 사기그릇에 담긴 약을 들이미는 포졸 앞에서 소복을 입은 여인이 발광하기 시작한다. 머리가 다 풀어헤쳐질 때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몸을 비트는 여인을 보다 못 한 집행관이 “약을 입에 부어라”고 명령한다. 소복 위에 약 줄기가 번져나간 직후, 여인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장엄한 음악이 흐르며 화면은 페이드아웃. 사극 ‘장희빈’에서 보는 익숙한 광경이다.
사약의 주성분은 ‘부자’라는 독이다. 부자에 있는 ‘아코니틴’이라는 식물성 독은 신경전달물질의 움직임을 방해해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킨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방에서는 이 부자를 약재로 쓴다. 부자를 껍질을 벗기고 쌀뜨물에 넣는 등 ‘수치’(修治)라는 작업을 거친 뒤 다른 약재와 함께 끓이면 독성은 줄어들고 진통과 염증을 억제하는 약효를 내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사약과 몸을 편안하게 하는 관절염 치료제를 오가는 부자처럼 독의 ‘두 얼굴’을 살펴보자.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사는 독개구리 중에는 한 마리 분으로도 10여명을 죽일 정도로 맹독을 내뿜는 녀석이 있다. 그런데 이 독도 잘 쓰면 훌륭한 약이 된다. 암은 말기에 이르면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다. 이 상태가 되면 아스피린 등의 일반 진통제는 듣지 않기 때문에 모르핀을 투여한다. 모르핀은 마약 성분인 만큼 부작용도 크다. 호흡기 질환에 ‘극약’인데다 장의 운동을 방해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변비를 일으킨다. 또 중독성이 강해 장기간 투여할 경우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한 폐해를 일으킨다.
미국 아보트 연구소의 연구팀은 1998년 모르핀을 대체할 새로운 진통제를 개발했다. ‘에피페도바테스 트리컬러’라는 독개구리에서 추출한 물질 ‘에피바티딘’을 기반으로 한 진통제다. 에피바티딘의 진통 효과는 모르핀보다 200배 강한 반면 부작용이나 중독성은 거의 없다. 개구리 독은 원래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냥을 하거나 적을 죽일 때 사용하는 맹독이지만 잘 다루면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약제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개구리 독은 진통제 말고도 쓰임새가 많다. 미국 국립 당뇨소화신장질환연구소의 존 달리 박사팀은 개구리 피부에서 추출한 독으로 천연 모기약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푸밀리오톡신 251d’라고 이름 붙인 이 독의 활용법을 연구하던 차에 특히 모기에게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모기약은 화학 모기약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나다. 다만 사람이 직접 사용하기에는 독성이 너무 강해 사람에 대한 독성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 외에도 개구리 독에 항균, 항진균,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 다양한 약재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주름을 제거하고 피부를 탱탱하게 해 연예인에게 인기있는 보톡스 주사는 신경성 독성물질 ‘보톨리늄 톡신’을 이용한다. ‘클로스트리디음 보튤리늄’이라는 균이 만들어내는 이 독에 감염된 음식을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 실제로 1793년 독일 남부에서 익히지 않은 소시지를 먹은 사람이 이 독 때문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독을 피부에 주사하면 주름을 만드는 근육의 운동신경을 억제해 탄력 넘치는 피부를 만들어준다. 근육의 비정상적인 수축도 완화하기 때문에 뇌성마비나 안구 경련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도 좋은 치료약이다.
열과 근육통을 일으키며 바닷가에서 놀던 이들에게 지독한 고통을 선사하는 해파리 독도 약에 쓸 데가 있다. 단백질 성분으로 이루어진 해파리 독은 간세포의 독성을 증가시키고 적혈구 안의 헤모글로빈을 혈구 밖으로 빼내는 작용을 한다. 2005년 중국 과학원 연구팀은 해파리 촉수에 있는 독을 이용해 복숭아흑진딧물 등의 해충을 퇴치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을 없애기 위해 화학 살충제를 쓰면 해충에 내성이 생겨 결국 살충제 양만 느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더 큰 문제는 살충제 성분이 고스란히 사람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연구팀은 해파리 촉수의 독을 썼을 때 해충의 치사율이 최고 98%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독은 해충에 특이적으로 반응하고 사람의 몸에는 쌓이지 않는다. 이들은 해파리를 이용해 화학 살충제보다 효과는 뛰어나고 부작용은 적은 자연 살충제를 만드는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바닷가에 널려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해파리를 유용한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모든 독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독은 분명 건강과 생활에 도움을 주는 ‘보석’을 품고 있다. 독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힌 이는 그 보석을 찾지 못한다. 어쩌면 독 뿐 아니라 사람, 돈, 시간, 사랑 그 모든 것이 그럴 지도 모르겠다. 독 안에 숨겨진 약 성분을 찾아낸 과학자처럼 선입관을 버리고 사물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 눈이 필요하지 않을까. 독과 약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판단력과 함께.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사약의 주성분은 ‘부자’라는 독이다. 부자에 있는 ‘아코니틴’이라는 식물성 독은 신경전달물질의 움직임을 방해해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킨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방에서는 이 부자를 약재로 쓴다. 부자를 껍질을 벗기고 쌀뜨물에 넣는 등 ‘수치’(修治)라는 작업을 거친 뒤 다른 약재와 함께 끓이면 독성은 줄어들고 진통과 염증을 억제하는 약효를 내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사약과 몸을 편안하게 하는 관절염 치료제를 오가는 부자처럼 독의 ‘두 얼굴’을 살펴보자.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사는 독개구리 중에는 한 마리 분으로도 10여명을 죽일 정도로 맹독을 내뿜는 녀석이 있다. 그런데 이 독도 잘 쓰면 훌륭한 약이 된다. 암은 말기에 이르면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다. 이 상태가 되면 아스피린 등의 일반 진통제는 듣지 않기 때문에 모르핀을 투여한다. 모르핀은 마약 성분인 만큼 부작용도 크다. 호흡기 질환에 ‘극약’인데다 장의 운동을 방해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변비를 일으킨다. 또 중독성이 강해 장기간 투여할 경우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한 폐해를 일으킨다.
미국 아보트 연구소의 연구팀은 1998년 모르핀을 대체할 새로운 진통제를 개발했다. ‘에피페도바테스 트리컬러’라는 독개구리에서 추출한 물질 ‘에피바티딘’을 기반으로 한 진통제다. 에피바티딘의 진통 효과는 모르핀보다 200배 강한 반면 부작용이나 중독성은 거의 없다. 개구리 독은 원래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냥을 하거나 적을 죽일 때 사용하는 맹독이지만 잘 다루면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약제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개구리 독은 진통제 말고도 쓰임새가 많다. 미국 국립 당뇨소화신장질환연구소의 존 달리 박사팀은 개구리 피부에서 추출한 독으로 천연 모기약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푸밀리오톡신 251d’라고 이름 붙인 이 독의 활용법을 연구하던 차에 특히 모기에게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모기약은 화학 모기약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나다. 다만 사람이 직접 사용하기에는 독성이 너무 강해 사람에 대한 독성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 외에도 개구리 독에 항균, 항진균,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 다양한 약재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주름을 제거하고 피부를 탱탱하게 해 연예인에게 인기있는 보톡스 주사는 신경성 독성물질 ‘보톨리늄 톡신’을 이용한다. ‘클로스트리디음 보튤리늄’이라는 균이 만들어내는 이 독에 감염된 음식을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 실제로 1793년 독일 남부에서 익히지 않은 소시지를 먹은 사람이 이 독 때문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독을 피부에 주사하면 주름을 만드는 근육의 운동신경을 억제해 탄력 넘치는 피부를 만들어준다. 근육의 비정상적인 수축도 완화하기 때문에 뇌성마비나 안구 경련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도 좋은 치료약이다.
열과 근육통을 일으키며 바닷가에서 놀던 이들에게 지독한 고통을 선사하는 해파리 독도 약에 쓸 데가 있다. 단백질 성분으로 이루어진 해파리 독은 간세포의 독성을 증가시키고 적혈구 안의 헤모글로빈을 혈구 밖으로 빼내는 작용을 한다. 2005년 중국 과학원 연구팀은 해파리 촉수에 있는 독을 이용해 복숭아흑진딧물 등의 해충을 퇴치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을 없애기 위해 화학 살충제를 쓰면 해충에 내성이 생겨 결국 살충제 양만 느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더 큰 문제는 살충제 성분이 고스란히 사람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연구팀은 해파리 촉수의 독을 썼을 때 해충의 치사율이 최고 98%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독은 해충에 특이적으로 반응하고 사람의 몸에는 쌓이지 않는다. 이들은 해파리를 이용해 화학 살충제보다 효과는 뛰어나고 부작용은 적은 자연 살충제를 만드는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바닷가에 널려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해파리를 유용한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모든 독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독은 분명 건강과 생활에 도움을 주는 ‘보석’을 품고 있다. 독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힌 이는 그 보석을 찾지 못한다. 어쩌면 독 뿐 아니라 사람, 돈, 시간, 사랑 그 모든 것이 그럴 지도 모르겠다. 독 안에 숨겨진 약 성분을 찾아낸 과학자처럼 선입관을 버리고 사물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 눈이 필요하지 않을까. 독과 약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판단력과 함께.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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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모 드라마에서 성형외과 의사가 얼굴 경련에 보톡스를 주기적으로 맞는 장면이 나오던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독, 잘쓰면 약이요 잘못쓰면 그야말로 독이네요.
2009-04-09
답글 0
엄청나게 재미있고 유익하고...잘 읽었습니다. Kisti감사합니다.
2007-07-31
답글 0
독어의 독성을 이용하여 살충제를 만들면 어떨까요 사람도 죽이는데
2007-07-19
답글 0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007-07-19
답글 0
유익하고 좋은글 항상 감사합니다.
이글 연구단지안전협의회 까페에 올리겠습니다.
문제가 되면 지우겠습니다.
항상 좋은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007-07-12
답글 0
정말 유익한 글입니다. 메일 감사합니다.
2007-07-11
답글 0
유익하고 큰 지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07-11
답글 0
본문의 정보들도 흥미롭고 유익했습니다만, 마지막 단락에 감명받았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참 감칠맛 나게 잘 쓰시네요. 고맙습니다.
2007-07-11
답글 0
항상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07-07-11
답글 0
네이버 블러그에 복사해 갑니다.
2007-07-11
답글 0
참 글을 잘쓰십니다..ㅋㅋ 마지막 부분에 사람을 선입견없이 보와야 한다는 구절은 누구나 알지만 참 인지시키기 어려운 부분인데 이렇게 독에 비유하니 참으로 마음속에 와닿군요....
2007-07-11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