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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뇌세포가 첫 한 입부터 먹는 속도, 시간 조절한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25호 2024년 01월 15일아주 배고픈 상태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주했을 때, 뇌에서는 어떤 명령을 보낼까. ‘최대한 빨리 음식을 섭취해’라는 명령? ‘체하니까 천천히 먹어’라는 명령? 얼핏 생각하기엔 먹는 속도에 관한 두 가설은 모두 일리가 있다. 최근 미국 UC 샌프란시스코 연구팀이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밝혀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섭식을 조절하는 두 가지 뉴런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조건 반사 현상을 밝혀낸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먹는 속도가 음식의 냄새, 맛과 음식을 인식한 시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이를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파블로프의 주장은 사실도, 거짓도 아닌 채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 1970~80년대에도 생리학자들은 음식의 맛이 우리가 먹는 속도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과정을 제어하는 부분이 뇌 깊숙이 있어 먹는 동안 뇌 활동 변화를 포착할 수 없었다.
쯔엉 리 UC 샌프란시스코 생리학과 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은 최초로 뇌에서 먹는 속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찾아냈다. 연구팀이 주목한 곳은 뇌간의 고립로핵 꼬리(cNTS)였다. 이곳은 미각을 받아들이는 중추로, 이곳에서 분비되는 여러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맛에 대한 반응이 조절된다. 연구팀은 고립로핵 꼬리에 있는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PRLH) 뉴런과 글루카곤(GCG) 뉴런의 활성도를 살펴봤다.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 뉴런은 섭식 행동을 억제하고, 글루카곤 뉴런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위고비와 같은 체중 감량 약물이 모방한 식욕 억제 호르몬이다.
연구팀은 일상적인 환경에서 두 뉴런이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했다. 선행 연구들에서는 실험동물을 마취한 다음, 위에 부푼 풍선을 넣거나 음식을 직접 주입해 가득 채워 실험했는데, 마취한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배를 채운 것이다 보니 얻을 수 있는 결과에 한계가 많았다. 이번 연구에서는 연구팀이 직접 개발한 영상 장치를 사용했다. 실험 쥐가 깨어 있는 동안 뇌 깊은 곳의 메커니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였다. 이를 통해 쥐가 음식을 먹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확인했다.
혀에 음식이 닿으면 먹는 속도 늦추는 뉴런 활성화
실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진행됐다. 음식을 위장에 직접 주입하는 방법, 자유롭게 먹도록 놔두는 방법, 빛으로 뉴런을 직접 자극하는 방법이었다. 먹이는 지방과 단백질, 설탕, 비타민, 미네랄 등이 혼합된 액체 식품을 사용했다.
실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진행됐다. 음식을 위장에 직접 주입하는 방법, 자유롭게 먹도록 놔두는 방법, 빛으로 뉴런을 직접 자극하는 방법이었다. 먹이는 지방과 단백질, 설탕, 비타민, 미네랄 등이 혼합된 액체 식품을 사용했다.
먼저 위장에 음식을 직접 주입했을 때는 주입되는 먹이의 양이 늘어날수록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 뉴런이 활성화됐고, 먹이 주입이 끝나고 몇 분 후에 가장 활성도가 높았다. 먹이 대신 식염수를 주입했을 때는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는 이전 선행 연구들과 일치하는 결과였다.
그러나 쥐가 평소처럼 먹이를 자유롭게 먹도록 했을 때는 쥐가 먹이를 핥자마자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 뉴런이 활성화됐다. 주목할 점은 먹이 핥기를 멈췄을 때는 즉시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 뉴런의 활성이 멈췄다는 것이다. 또한 입으로 먹이를 섭취했을 때는 장으로부터 시작되는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 뉴런 활성 신호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먹이를 먹는 쥐의 뉴런을 레이저로 과도하게 활성화시켜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 뉴런의 활성도를 높여봤다. 그 결과, 생쥐의 먹이 속도가 줄어들었다.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 뉴런이 활성화되면 식욕 억제 효과가 나타나 자연스레 먹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쯔엉 리 연구원은 “이번 실험은 음식을 핥을 때 뉴런이 활성되는 것을 보아 입에서 시작되는 신호가 장에서 시작되는 신호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오직 장에 음식물이 찼을 때만 식욕 조절 시스템이 작동할 거라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식욕 조절 시스템에 다른 구성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점은 먹이를 섭취하기 시작하자마자, 즉 가장 배고플 때 섭식 행동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다. 이에 쯔엉 리 연구원은 “배고플 때 뇌가 먹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직관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뇌는 음식의 맛 신호를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음식을 섭취했을 때 ‘이거 맛있어, 더 먹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식욕 억제와 관련된 호르몬을 분비해 ‘천천히 먹어’라고 주의를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기만 먹어도 뇌는 식욕 억제한다?
연구팀은 먹이를 먹을 때 글루카곤 뉴런의 활성도도 관찰했다. 실험 결과, 글루카곤 뉴런은 쥐가 식사를 시작한 지 몇 분 안에 장의 신호를 받아 활성화됐다. 주목할 점은 장에 공기를 주입할 때도 동일하게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즉, 글루카곤 뉴런은 체내에 음식물이 얼마나 들어왔는지를 장의 부피로 감지해 활성화된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포만감’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이다.
그림 4. 글루카곤 뉴런은 늘어난 장의 부피로 포만감을 인식한다. ⓒshutterstock
논문의 교신저자인 재커리 나이트 UC 샌프란시스코 생리학과 교수는 “프로락틴 방출 호르몬 뉴런과 글루카곤 뉴런은 하나는 미각에서 들어온 신호를 인지해 먹는 속도를 늦추고, 다른 하나는 먹는 양을 이용해 식욕을 억제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비만 치료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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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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