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시력 잃은 노인, 전자 눈으로 책을 읽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194호 2025년 11월 17일본다는 행위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각으로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배우며 살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보고 행복해지는 것 등 시각은 단순히 물리적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감정을 느끼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 점점 읽기 힘들어지는 글자, 그리고 결국 찾아오는 어둠. 이것이 바로 황반변성을 비롯한 노인성 안질환 환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한번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기는 힘들다. 특히 황반변성은 눈 조직 중 하나인 황반이 손상되면서 시야 중앙이 검게 변하거나 사물이 왜곡돼 보이다가 결국 실명에 이르게 만드는데 아직 완벽한 치료법은 없으며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다. 돌파구가 없을까? 최근 아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른바 ‘전자 눈’의 발명이다.
사이보그처럼 기술로 인간 한계를 극복하기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안과의 다니엘 팔랑커(Daniel Palanker) 교수 연구팀은 망막에 이식한 초소형 무선 칩과 첨단 안경이 진행성 노인성 황반변성(AMD) 환자들의 시력을 부분적으로 회복시켰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초소형 전자 칩, 특수 안경, 휴대용 컴퓨터로 구성된 이 장치들을 '프리마(PRIMA) 시스템'이라고 한다. ‘광전 망막 임플란트 마이크로어레이(Photovoltaic Retina Implant MicroArray)’에서 따온 것이다. 이름 그대로 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풀면 이렇다. 먼저 눈 망막 아래인 ‘망막하’에 아주 작은 칩, 이른바 광전 마이크로칩을 환자에게 이식한다. 두께가 30마이크로미터 정도로 머리카락보다 얇은 이 칩은 눈에 있는 광수용 세포처럼 망막에서 받은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칩 내부에는 광전 셀이 약 378개 이상 분포되어 있다.
그다음으로 환자에게 카메라가 달린 특수 안경을 씌우고 허리에는 휴대용 컴퓨터를 단다. 안경 카메라가 세상을 보고 촬영하며 근적외선으로 칩에 빛을 쏘면, 휴대용 컴퓨터는 인공지능으로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칩이 인식하도록 처리한다. 근적외선인 이유는 대개의 황반변성 환자가 가운데 중심 시력은 잃었지만, 바깥쪽 시야인 주변부 시력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망막의 주변 시력은 광수용 세포와 마찬가지로 가시광선을 감지하고 중심 시력만 적외선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칩에 영상을 전기 신호로 바꿔 뇌의 시각 피질로 보내면 ‘보는’ 행위가 이뤄진다.
사진 2. 프리마 시스템은 초소형 전자 칩, 특수 안경, 휴대용 컴퓨터을 이용해 '보는' 행위를 돕는다. ⓒScience Corporation
보고, 읽는 즐거움의 감각을 회복하다
실제로 환자들에게 적용한 결과는 어땠을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있는 17개 실제로 환자들에게 적용한 결과는 어땠을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있는 17개 병원에서 60세 이상 노인성 황반변성 환자 38명이 PRIMA 시스템을 이식받았다. 환자들 눈의 시력은 최소 스넬렌 등가 20/320(한국식 0.06)이었다. 스넬렌 등가란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하는 시력 지표로 검사받는 사람이 20피트(약 6미터) 거리에서 겨우 볼 수 있는 글자를,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은 320피트(약 97미터)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정상인보다 16배 이상 가까이 가야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주요 평가 변수는 이식 후 12개월 시점에 기준선 대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시력 개선과 시술 또는 기기 관련 심각한 이상 반응이 있는지였다.
그 결과 12개월 시점에 평가를 완료한 남은 32명 중 81퍼센트인 26명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을 달성했다.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은 시력표에서 최소 10글자를 더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정의되었는데 평균 시력 개선은 PRIMA 안경 착용 시 24.5글자를 더 읽었으며 참가자가 글자를 선택할 때는 25.5글자를 더 읽었다. 가장 큰 개선을 보인 경우는 59글자를 더 읽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확대 및 축소 같은 PRIMA 안경의 디지털 향상 기능을 사용하여 100마이크로미터 픽셀의 이론적 해상도인 약 20/400(한국식 0.05)보다 훨씬 작은 글꼴을 읽을 수 있었다. 최대 시력 향상은 스넬렌 등가 20/42(한국식 0.5)까지 가능했다. 일상생활 활용도도 높았다. 12개월 시점에 참가자의 84%인 32명 중 27명이 집에서 문자, 숫자, 단어를 읽을 수 있었다고 보고했으며 69%인 22명이 시스템에 대해 중간에서 높은 사용자 만족도를 나타냈다.
이상 반응은 안내압 상승으로 6건, 즉 23%가 발생했으나 모두 해결되었다. 주변 망막 파열은 5건 발생했으나 모두 수술 중 치료되었으며 열공성 망막 박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에 데이터 및 안전 모니터링 위원회는 PRIMA 시스템의 이점이 이식 위험보다 크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PRIMA 시스템의 이점은 광전지라는 특성 덕분에 무선 작동이 가능하며 이식 기술이 간단하다는 점이다. 무선 설계는 눈에 영구적인 개구부를 만드는 유선 임플란트에 비해 이식이 쉽고 수술 및 수술 후 이상 반응의 위험을 줄여준다. 현재 이식한 칩의 해상도는 378픽셀(화소)인데 연구팀은 앞으로 칩당 1만 픽셀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기술은 이렇게 ‘인간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SF영화에서 보듯 기계화된 신체 기관을 달고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그렇게 먼 미래로 보이지는 않는다.
글 : 권오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 뭐가 다를까?
- 많은 사람이 최근 일어난 PC방 살인 사건이나 거제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피해자를 잔혹하고 무참하게 살해하고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분노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 부르며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는 무엇이 다르고 보통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Story] 엉덩이로 숨쉬기? 인간 대상 실험 첫 성공
- [과학향기 for Kids] 우주에서는 빨래를 어떻게 할까?
- [과학향기 Story] 아름다운 자연 풍경, 고통을 ‘진짜로’ 덜어준다
- [과학향기 Story] 응급 수술의 판을 바꾸다, 의료용 글루건의 탄생
- [과학향기 Story] 다이어트 고민, 부작용 싹 없앤 ‘녹차 비만약’으로 해결?
- [과학향기 Story] 귀성길 멀미, 약 대신 음악으로 잡는다?
- [과학향기 Story] 머리카락 성분으로 만든 치약, 구강 건강 게임체인저 될까
- [과학향기 Story] 우리 몸이 발전소가 된다?
- [과학향기 Story] 사랑은 숨겨도 가려움은 숨길 수 없는 이유
- [과학향기 Story] 토마토의 비명에 나방이 등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