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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죽음을 초월한 인간, 《미키17》이 던지는 질문
<KISTI의 과학향기> 제3142호 2025년 03월 17일지난 2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이 개봉했다. 《미키17》는 자원이 고갈된 인류가 지구에 이어 정착할 또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서는 2054년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마카롱 가게를 열었다가 빚더미에 나앉은 주인공 미키는 지구의 최하층민으로 남기보다 개척지 행성으로 탈출해 새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가진 것이라곤 몸뚱어리밖에 없는 미키가 할 수 있는 일은 ‘익스펜더블’, 복제 기술로 필요에 따라 되살아나는 실험용 인간으로 지원하는 것뿐이었다.
영화 속 복제인간 기술은 한 인간의 기억과 외형을 미리 저장해 두고, 그 인간이 죽으면 백업 데이터를 통해 똑같은 인간을 프린트해 낸다. 미개척지의 극한 환경, 바이러스, 괴수의 위험 앞에 익스펜더블은 실험체로서 선다. 임무를 마친 미키1이 죽으면(혹은 쓸모를 다한 미키를 죽이면) 첫 번째 미키를 밑바탕으로 미키2를 찍어 만든다.
익스펜더블 지원을 말리는 직원에게 미키는 말한다. “뭘 하든 여기보단 낫겠죠.” 오늘날 많은 사람이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눈앞의 위험을 감수한다. 그런데 만약 《미키17》처럼 ‘단지 지금의 내가 잠시 죽을 뿐인’ 복제 기술을 쓸 수 있다면 어떨까? 복제인간 기술과 인공 신체에 관한 기술의 현주소를 살피며 윤리적 문제에 관한 질문을 던져 보자.
113개 배아 중 하나, 4년간 생존하다
1996년 최초의 체세포 복제 동물인 ‘복제양 돌리’ 탄생 이래 약 30년, 인간 복제를 목표로 한 실험들은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대 중반 황우석의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 시도 및 논문 조작 사건, 2018년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의 유전자 편집 아기 논란 등은 현대 의학과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달을 암시했다. 이와 동시에 이들 사례는 인간 복제 기술을 현실화하기에 인류가 현재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 모았다.
현재 인간 복제 기술은 윤리적, 법적, 기술적 한계로 직접적인 인간 복제는 실현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영장류 복제 연구는 중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례로 지난해(2024년)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개량 복제 기술로 탄생한 붉은털원숭이 ‘레트로’가 2년 이상 건강하게 생존 중임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를 통해 밝혔다.
복제양 돌리를 만든 영국 과학자들은 양의 체세포에서 추출한 핵을 암컷의 난자 핵 자리에 넣고, 이 복제 배아를 대리모인 암컷 자궁에 이식하는 방법을 썼다. 이러한 체세포 복제 기술로 개, 고양이, 소, 말 등 20여 종의 동물 복제가 진행되었으나 생존율은 대부분 1~3퍼센트에 그쳤다.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복제 배아의 태반 성장 과정에 주목해 생존율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들은 체외 수정으로 만든 복제 배아의 태반이 비복제 정상 배아보다 두껍고 결함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초기 단계의 복제 배아를 태반을 형성할 비복제 배아에 삽입해 발달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원숭이 레트로는 이런 방식으로 얻은 113개 배아 중 11개를 대리모에 이식해 정상적으로 태어난 유일한 한 마리였다.
뇌를 떼어 또 다른 나를 만든다는 상상
중국이 동물 복제 연구에 앞장선다면 최근 미국에서는 뇌공학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기억을 이식하는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2016년 설립된 스타트업 ‘뉴럴링크’는 인간 뇌의 정보를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전자 기기에 전송하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에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이보다 더 과감한 주장에 나선 기업도 있다. 2024년 5월 미국 스타트업 ‘브레인브릿지’는 사람의 머리를 통째로 떼어내 타인의 몸에 이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그 수술 과정을 그래픽 시연 영상으로 공개했다. 업체에 따르면 수술 전 수혜자와 기증자의 몸은 냉각되어 뇌 손상에 대비하고, 모든 절차는 인공지능 시스템에 의해 엄격히 통제된다. 또 수술에 성공한 수혜자는 원래 기억과 의식이 유지되는 동시에 더 건강한 몸을 얻어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시연 영상 속 수혜자는 의식을 잃은 채 로봇에 의해 새 삶(심지어 더 나은 삶)을 얻는다. 마치 죽은 미키가 우주선 지하 실험 공간에서 단백질로 분해되고, 매끈한 육체를 얻어 새 미키로 거듭나듯이 말이다. 프로젝트 리더 하셈 알 가일리는 자신들의 기술로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의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쉽게 짐작하겠지만 전문가들은 브레인브릿지의 수술이 “뇌의 작동 방식을 심각하게 단순화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가능성이 희박한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뉴럴링크의 마인드 업로딩 기술, 브레인브릿지의 머리 이식 수술이 실제 사람에게 시도될 날은 언제일까? 우리는 실제 성공 사례가 있는 중국과학원 사례에서조차 복제 기술의 성공률이 무척 낮으며 이 과정에 수많은 실험체가 동원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스페인의 한 생명공학자는 중국의 사례가 두 가지를 입증했다고 말했다. 바로 “첫째는 영장류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 둘째는 이렇게 낮은 효율성으로 실험을 성공시키는 것조차 극도로 어렵다는 점”이다.
익스펜더블 자격으로 개척단에 합류한 미키는 승선한 지 얼마 안 되어 우주선을 고치다 죽는다. 방사능이 가득한 우주 환경에 나가 죽음을 불사하고 선체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미키뿐이고, 이것이 곧 익스펜더블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개척단의 최하층에 위치한 미키는 다음 미키가 자신을 계승한 개체임을 의심하지 않으며 현재의 삶의 의미를 흘려보낸다. 그러던 중 언제나처럼 죽음 직전에 간 미키17이 외계 생명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다음 복제체인 미키18과 만나면서 미키는 두 복제인간이 서로 같다고 할 수 없는 순간과 마주친다. 현재의 인류는 생명 복제로 죽음을 초월하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먼 훗날 세포핵을 떼 내어, 뇌를 옮겨 죽음을 이기는 날이 온다면 그 의미는 이전의 나의 부활이 아닌 목숨을 부지한 새 삶의 향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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