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달콤한 향과 맛을 지닌 웃음가스의 진실

<KISTI의 과학향기> 제2982호   2017년 08월 02일
“마약인 듯 마약 아닌 마약 같은 너?”, “잠깐이지만 즐거웠어. 웃음을 안겨준 풍선은 네가 처음이야”, “마지막에 눈 풀림. 이게 뭐라고, 와 기분 째지네.”
 
최근 술집이나 클럽에서 ‘해피벌룬’을 흡입한 젊은이들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후기다. 해피벌룬 속 기체를 마시면 20~30초 동안은 정신이 몽롱해지고 술에 취한 듯 환각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의사의 지시 없이 함부로 들이마셨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수원에서 20대 남성이 해피벌룬 속 기체를 흡입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다. 해피벌룬 속 기체는 어떤 물질일까.
 
●달콤한 향과 맛을 지닌 웃음가스
 
해피벌룬의 정체는 달콤한 향과 맛을 지닌 아산화질소다. 아산화질소의 화학 구조식은 N2O로 질산암모늄을 열로 분해할 때 발생하는 기체다. 고체, 액체, 기체 모두 무색이며 물과 알코올에는 상당히 잘 녹는다. 신기하게도 아산화질소를 흡입하면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웃음가스’라 부르는 이유다.
 
아산화질소는 인류 최초로 마취제 효과가 입증된 물질이다. 아산화질소는 1772년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에 의해 발견됐고 이후 험프리 데이비가 이 가스를 흡입한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져 걱정이 줄고 자제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800년 그는 이 가스를 ‘아산화질소’라 이름 짓고 마취제의 효능을 입증하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산화질소가 곧바로 수술용 마취제로 쓰이지는 않았다. 데이비 역시 친한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던 중 환각효과를 얻기 위해 아산화질소를 사용했다. 그 뒤 1844년 미국 코넷티컷주의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는 이 가스를 이용하면 무통 진료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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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냄새와 맛이 나는 아산화질소는 치과에서 어린이용 마취제로 사용된다. (출처: shutterstock)
 
웰스는 웃음가스 파티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다리에 상처 입은 남자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다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지만 웃음가스 때문에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웰스는 바로 여기서 웃음가스를 마취제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얼마 뒤 그는 파티장에서 웃음가스를 들이마시고 집에 돌아와 앓고 있던 자신의 사랑니를 뽑았다. 하지만 이를 뽑는데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스스로 자신의 치과치료에 웃음가스를 사용하고 마취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자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1845년 2월 웰스는 매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외과 의사들을 모아 놓고 최초로 마취제 공개 실험을 실시했다. 그러나 아산화질소의 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고 환자는 고통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질렀다. 마취제 실험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곧이어 웰스의 동료였던 윌리엄 모턴은 아산화질소보다 더 강력한 마취 효능을 지닌 물질을 찾았다. 바로 에테르였다. 1540년 독일의 식물학자 발레리우스 코르더스에 의해 처음 발견된 에테르는 18세기까지 가래를 제거하는 거담제로 이용됐다. 에테르를 흡입하면 끈끈한 가래를 녹여서 뱉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테르가 아산화질소처럼 마취효능이 있다는 사실은 1818년 영국의 물리·화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에 의해서도 확인됐었다. 
 
윌리엄 모턴은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에게 에테르를 주입했다. 에테르에 취한 강아지는 완전히 맥이 풀려 꼬집어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자 강아지는 다시 깨어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힘차게 뛰어다녔다.
 
모턴은 1846년 10월 16일 매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마취제 공개실험을 실시했고, 환자의 목에서 혹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수술 결과는 그 다음 달 의학저널에 실리면서 오늘날까지 외과수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저산소증, 조혈기능 장애 불러와
 
아산화질소는 마취효능이 약한 편이지만 냄새와 맛이 달콤해 지금도 치과에서 어린이용 마취제로 사용하거나 국소마취제의 보조제로도 이용된다. 그렇다면 의료용으로도 사용되는 아산화질소의 흡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와 입을 통해 체내에 흡수된 아산화질소는 혈액에 녹아 들어가 혈액 내 헤모글로빈의 산소포화도를 낮춘다. 그만큼 뇌로 공급되는 산소량은 떨어진다. 해피벌룬을 흡입하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증상은 뇌에 공급되는 산소량이 줄어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아산화질소 흡입량이 늘어나면 자칫 저산소증이 나타날 수 있고, 장기간 흡입 시 피를 만드는 조혈기능에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세포벽의 이온채널을 막아 세포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중추신경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아산화질소를 치료에 사용하는 치과 전문의들 역시 아산화질소를 다량으로 급격하게 흡입하면 신경장애와 백혈구 감소로 악성빈혈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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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이나 클럽에서 판매하는 해피벌룬을 오·남용하면 저산소증, 악성빈혈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출처: shutterstock)
 
이런 위험성으로 인해 현재 외국에서는 아산화질소 사용을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산화질소의 마취효과가 낮아 환자마다 일정한 양의 아산화질소를 투입하는 것이 힘들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신체에 부작용을 주지 않고 이상적인 마취를 할 수 있는 아산화질소 농도는 어느 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람마다 다르다. 평소 마취가 많이 이뤄지는 성형외과에서 가장 강력한 수면마취를 할 경우에도 마취가 잘되는 사람과 잘 안 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약한 마취제로 분류되는 아산화질소를 쓰더라도 어떤 사람은 낮은 농도(아산화질소 30% 이하)에서 마취가 잘되는데, 다른 사람은 높은 농도(아산화질소 50% 이하)에서도 마취가 잘되지 않는다. 치과에서는 의료장비를 통해 환자에게 공급되는 아산화질소 농도를 최고 70%로 제한하고 있다. 
 
160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지금 생각하면 상상초월의 마취법을 사용했다. 환자의 머리에 나무통을 씌우고 두개골이 손상되지 않을 정도로 두드려 환자를 기절시키거나 목을 졸라 환자를 죽이지 않고 무의식 상태까지 질식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파티장에서 아산화질소를 오·남용하는 것은 이와 비슷하다. 의사의 적절한 진단 없이 아산화질소를 사용하는 것이므로 1600년대 이탈리아에서 환자의 생사를 걸고 마취하던 일과 다르지 않다. 분명한 것은 아산화질소가 신경독성물질이기 때문에 다량의 해피벌룬을 흡입한다면 치명적인 뇌세포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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