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매년 3월 24일은 세계 결핵의 날, 결핵의 모든 것

<KISTI의 과학향기> 제3629호   2021년 03월 22일
나도향, 김유정, 이상, 에드거 앨런 포, 쇼팽, 안톤 체호프, 프란츠 카프카, 브론테 자매, 도스토옙스키, 뭉크, 모딜리아니, 모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 예술가들 사이에는 국경과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결핵이 이들의 삶을 바꿨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이가 결핵을 앓으면서 삶이 바스러지는 고통을 겪고, 때로는 이 경험을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시켰다.
 
낭만적인 병으로 알려졌던 결핵
 
낭만주의가 정점을 찍었던 19세기 서양에서는 특히 결핵과 예술가의 감수성이 한데 엮여, 결핵이 ‘낭만적인 병(romantic disease)’이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런 소문이 생긴 첫 번째 이유는 결핵이라는 질병의 경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결핵은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당시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환이긴 했지만, 감염 후 장기간 유지되거나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결핵이 ‘오랫동안 천천히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사회 인식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죽음에 대비할 시간을 계획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이를 ‘좋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비유했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의 미적 기준과 관련된 것이었다. 창백한 피부에 살짝 수척해 갸름한 얼굴선, 열 때문에 붉어진 뺨과 입술. 쇼팽의 초상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결핵 환자의 외모적 특징은 감성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외모를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풍조 때문에 상류층 여성들은 일부러 결핵 환자처럼 창백하고 가냘프게 꾸몄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실제로 결핵 환자 혹은 결핵 환자를 가장한 모습을 모델 삼은 예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모네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카미유의 임종을 그린 그림(<카미유 부인의 죽음>(1879))이나, 마찬가지로 결핵으로 죽은 누나 소피를 그린 뭉크의 작품(<아픈 아이>(1886))에서는 죽음을 앞둔 나약한 인간의 처연함,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애통한 시선이 느껴진다. 한편, 영국 화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오필리아>(1850)는 폐결핵에 걸린 여성 특유의 외모를 묘사해 작품의 주제를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엘리자베스 시달이라는 폐결핵에 걸린 미인에게 따뜻한 욕조에 들어가 물에 떠 있는 연기를 하도록 주문했고, 그렇게 탄생한 걸작은 투명한 피부와 장밋빛 볼과 입술, 공허한 눈빛의 오필리아의 비극적 운명을 완벽히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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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결핵으로 죽은 누나를 그린 뭉크의 <아픈 아이>. 결핵이라는 질병은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 했고,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출처: wikipedia)
 
고대 그리스 기록이나 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 화석(논쟁 중)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는 결핵은 수천 년 동안 인류와 공존했다. 그러던 중 19, 20세기에 결핵이 더 만연해진 원인은 인류의 도시화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결핵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이라는 세균에 의해 감염되는 질환인데, 공중위생 관념이 부족하던 시기에 급격히 도시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전염병이 창궐하게 된 것이다. 페스트, 콜레라보다도 더 많은,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희생자를 낸 이 질병은 1882년 로버트 코흐 박사가 처음 결핵균을 발견한 후, 영양과 보건위생 개선 및 항생제의 개발로 마침내 꼬리를 잡혔다.
 
결핵은 아직도 척결되지 않은 질병이다
 
“요즘도 결핵 있는 사람이 있어요?” 영화 <기생충>에 나온 대사처럼 과거와 달리 결핵 환자 수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연간 140만 명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약 1,000만 명의 환자가 새롭게 발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기준 신규 결핵 환자 수가 2만 3,821명이었던 만큼 매년 감소하는 추세임에도 보건 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치료법이 있는데도 결핵균을 박멸하기 힘든 이유로는 결핵의 전염성이 높고 잠복기가 길다는 점이 꼽힌다.
 
결핵균은 결핵 환자가 기침할 때 공기 중에 뜬 비말과 함께 다른 사람의 들숨에 섞여 들어가 폐에 도달하는 과정을 거쳐 전염된다. 즉, 공기 매개성 전염병이다. 사실 결핵은 폐뿐 아니라 신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결핵의 약 85%가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어 폐에서 발생하는 폐결핵이지만, ‘폐외결핵’이라고 하여 림프절결핵, 척추결핵, 장결핵 등 다른 장기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폐외결핵은 타인에게 전염되지 않는다.
 
또한, 주변의 폐결핵 환자 때문에 결핵균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모두 결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결핵균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선천적인 면역 기제로 방어될 수 있다. 선천 면역 장벽을 뚫더라도, 2차 면역 기제인 세포매개성 면역반응을 통해 폐 속에서 결핵균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 이때 형성된 면역세포는 혈액 속에 남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여 결핵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 만약 선천성 면역에 의해 방어되었다면 결핵감염검사에서 음성, 2차 면역 반응이 일어났다면 양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검사 결과가 양성이어도 균이 제거되거나 억제되면 결핵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잠복결핵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양 상태가 떨어지고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억제되어 있던 결핵균은 면역이 약해진 틈을 타 다시 증식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염증 반응과 폐손상이 일어나는 결핵 질환이 진행된다. 기침, 가래, 미열, 무기력감과 같은 일반적인 증상이라 구별하기 힘들지만, 기침, 가래가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결핵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는 결핵균 배양 검사와 흉부방사선사진을 통해 감염이 진단된다. 결핵환자는 진단 전에 주변에 결핵을 전염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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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인류와 결핵균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핵의 전염성은 높은 편이다. (출처: shutterstock)
 
항생제라는 든든한 아군을 내세워 결핵과 공존하는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점은 ‘항생제 내성’이다. 결핵은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핀과 같은 항결핵 약제를 6개월~18개월 이상 복용하여 완치될 수 있다. 약 복용 후 2주 정도 지나서는 전염력 또한 거의 사라지므로 사람 대면이 잦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적당히 주의하면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해서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면 오히려 몸속에서 더 강력한 결핵균을 키우는 셈이 된다. 주요 약제에 대한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결핵으로 발전하면 약제 변경 후 치료 기간이 더 늘어나고 부작용도 늘어 치료 성공률이 떨어진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초기 치료에서 전문가의 진단에 따라 완치될 때까지 약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스크 착용도 비말 전염을 방지하므로 결핵을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마스크를 썼던 작년에 결핵 발병률이 감소했을 것으로 기대할 만하지만, 다른 호흡기 질환과 달리 긴 잠복 기간을 갖는 결핵은 발병률 측면에서 실제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잠복해 있는 결핵균으로부터 스스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머지않아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오더라도 철저한 위생 관리와 예방에 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 정유희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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