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스테이크 맛은 육즙 가두기가 아니라 마이야르 반응에 달렸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769호 2018년 12월 19일음식 프로그램과 먹방의 전성시대다. TV나 모니터에서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침이 고인다. 그때 진행자나 출연자가 꼭 하는 말이 있다. “센 불에 구워서 스테이크의 육즙을 가둬야 고기가 맛있어져요.” 육즙을 가두는 게 정말 가능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스테이크를 맛있게 하는 것은 육즙 가두기가 아니다. 바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다.
스테이크를 불에 구우면 고기 표면에서 수분이 제거되며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고기의 색은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하고 침샘을 자극하는 향기가 생겨난다.
고기를 씹을 때 나는 맛은 단백질의 맛이 아니다. 단백질은 인간이 맛을 느낄 수 있는 분자의 크기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백질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면 큰 분자들이 작고 다양한 분자로 변하면서 맛과 향이 풍부해진다.
마이야르 반응은 온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섭씨 130~200도(℃) 사이에서 격렬하게 반응이 일어나고 수많은 향기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 반응을 일어나게 하려면 고기를 섭씨 130~200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스테이크를 강한 불에 굽는 이유는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사진. 높은 온도에서 스테이크를 구워도 육즙은 빠질 수밖에 없다. 높은 온도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이유는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너무 높은 온도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것은 좋지 않다. 온도가 섭씨 200도 이상 올라가면 마이야르 반응에서 새로운 분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때 생기는 분자는 발암물질이 섞여 있고 맛 또한 좋지 않다.
마이야르 반응을 이용해 맛있는 소스를 만들기도 한다. 스테이크를 굽고 난 팬에 육수나 물, 술, 우유 등을 넣어 팬을 닦아내 이 국물로 소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 요리 기술은 ‘데글라이즈(Deglaze)’라고 불린다.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팬에 남은 향기 물질들을 모아서 사용하는 요리 기술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향기를 발생시키는 마이야르 반응은 무엇일까. 이 반응은 1912년 프랑스 생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Louis Camile Maillard)가 발견해 처음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그가 한 연구는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생물 세포의 생화학 분야에 몰두한 의사로, 인체 세포 속에서 발견되는 아미노산과 당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가 죽은 이후에야 음식에서도 아미노산과 당의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 알려져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마이야르 반응은 환원당의 카복시기(-COOH, 이온화하기 쉽고 산성을 나타내는 작용기)와 아미노산, 펩티드, 단백질 등 아미노기(-NH₂, 한 개의 질소 원자와 두 개의 수소 원자로 이루어진 작용기)를 갖는 화합물 사이에서 일어난다. 식품의 대표적인 성분 간 반응으로 식품의 가열처리, 조리 혹은 저장 중에 일어나는 갈변현상이나 향기 생성에 관여한다.
반응에 관여하는 당과 아미노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한 가지 당과 아미노산 쌍에서 만들어지는 실제 생성물은 반응 온도나 산성도, 옆에 있는 다른 화학 물질 등에 의해 달라진다. 심지어는 운에 의해서도 좌우된다니, 똑같은 재료로 요리를 해도 온도와 환경에 따라 다른 향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고기를 구울 때 나는 향기 외에도 빵집에서 빵을 굽는 향기, 커피 향기, 소시지를 자를 때 나는 고소한 향기 등도 모두 마이야르 반응에 의해 생긴다.
마이야르 반응이 고온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간장이나 된장을 만들 때에도 마이야르 반응은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 경우 실온상태에서 아주 천천히 반응이 진행된다. 장맛이 오래 묵힐수록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이야르 반응에서 만들어지는 분자는 2011년 현재까지 1,000가지 이상 발견됐다. 그만큼 마이야르 반응은 대단히 복잡한 화학 반응이다. 당과 아미노산의 타입에 따라 수 백 가지의 서로 다른 향미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인공 향미를 만들어낸다. 마이야르 반응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밝히고 더욱 다양한 향미를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의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향기의 과학이 우리의 식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길 기대해본다.
글: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
- [과학향기 Story] 차 한 잔에 중금속이 줄었다? 찻잎의 숨겨진 능력!
-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이에 커피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커피의 소비량은 ‘차(茶)’의 소비량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는 많은 국가에서 차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페인 외에도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어, 건강을 목적으로 섭취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산타할아버지는 언제 한국에 도착할까?
- [과학향기 Story] 딥러닝, 똑똑한 인공지능을 만든 비밀
- [과학향기 for Kids] 아침에 빵 먹으면 못생겨 보인다?
- [과학향기 for Kids] “내 솜씨 어때” 125년 만에 밝혀진 소변 색의 비밀은?
- [과학향기 for Kids]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커튼 ‘오로라’
- [과학향기 Story] 원두 갈기 전, 물 “칙칙” 찐~한 커피 만드는 과학적 비법
- 2024년은 청룡의 해, 신화와 과학으로 용의 기원 찾아 삼만 리
- ‘누나’가 만들어낸 희소성 만점 핑크 다이아몬드, 비결은 초대륙 충돌
- 북한이 쏘아올린 작은 ‘만리경-1호’ 궤도 진입 성공, 성능과 목적은?
- 닷새 천하로 끝난 ChatGPT 아버지 샘 올트먼의 해고 사태, 그 이유와 의의는?
ScienceON 관련논문
설탕과 생크림으로 만드는 카라멜도 마이야르 반응의 일종일까요? 카라멜 너무 좋아요 ㅎㅎ
2018-12-28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