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약물 도핑 말고 기술 도핑 있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668호 2021년 08월 02일2020년 도쿄 올림픽이 한창이다. 전 세계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모이기 때문에 메달을 따는 것은 정말 신의 가호라고 불릴 정도다. 단 한끗 차이로 메달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나 판정을 둘러싸고 시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약물 도핑이다. 호르몬제는 일시적으로 집중력이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선수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는 메달권에 있는 선수 중 일부를 임의로 지정해 약물 검사를 한다.
첨단 기술의 선수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
그런데 도핑에는 약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쓰는 장비도 공정한 경쟁을 방해할 수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운동 장비들도 개량되고 있는데, 이 장비를 쓰는 선수와 쓰지 않는 선수 간에 기록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기술 도핑’이라고 부른다.
최근 기술 도핑 논쟁을 불러온 사례는 나이키에서 제작한 러닝화다. 2019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최초로 42.195㎞ 코스를 1시간 59분 40초만에 주파했다. 7명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린 비공인 기록이지만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던 2시간 벽을 깬 것이다.
전문가들은 킵초게의 기록 갱신을 오로지 킵초게의 러닝 능력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킵초게는 나이키가 선수만을 위해 특수 제작한 러닝화를 신었는데 밑창 중간에 탄소섬유로 만든 판이 스프링 효과를 내는 운동화로, 뛰는 힘을 10% 이상 크게 높여준다고 한다. 스프링 효과 덕분에 착지 후 도약력을 높여주며 무게도 180여 g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내리막길을 뛰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사진 1. 마라토너 킵초게는 특수 러닝화를 신고 마라톤 마의 벽을 깼다. (출처: 나이키)
실제로 2012~2019년 10km, 하프마라톤, 마라톤 등 3개 종목에 출전한 전 세계 남녀 엘리트 육상선수들의 최고 기록을 분석한 결과 나이키에서 제작한 특수 러닝화를 신은 2017년 이후 마라톤 선수들의 점점 단축됐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여자 선수에게서 두드러졌는데, 이 러닝화를 신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한 선수는 자신의 기록을 2분 10초 줄여 1.7%의 기록 단축 효과를 봤다. 기록을 2.3%까지 단축한 선수도 확인됐다. 마라톤계에서 이 정도 단축 기록은 엄청난 것이다.
이에 세계육상연맹은 특정 선수만을 위해 만든 운동화는 사용할 수 없다며 킵초게가 촉발한 논란을 해소하려고 했다. 이에 더해 공식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동화 규격도 만들었다. 세계육상연명은 새 규정에서 “신발 밑창의 두께는 40mm 이하여야 하며, 탄소섬유판은 1장만 허용한다”고 명시했다. 섬유판이 1장인 기존 시판 제품은 사용할 수 있지만 섬유판이 3장으로 알려져 있는 ‘킵초게 신발’은 안 된다고 천명한 것이다.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복잡한 문제
이런 기술 도핑 논란은 이제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전신 수영복 논란이 있다. 폴리우레탄 재질로 만들어진 이 전신 수영복은 부력을 높이고 물의 저항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선수들이 폴리우레탄 전신 수영복을 입기 시작하자 2009년 로마 수영선수권대회 당시 43개의 세계신기록이 쏟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제 선수들은 전신 수영복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전신 수영복은 2010년 퇴출됐다.
사진 2. 스피도사의 전신 수영복은 국제경기에서 퇴출됐다. (출처: 스피도)
이런 기술 도핑은 반드시 규제해야 하는 걸까? 킵초게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열심히 훈련하고, 기술의 도움도 받는다. 기술이 점점 발전하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스포츠 선수도 기술과 발을 맞춰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술은 계속 진보할 것이고 그 그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뛰어넘도록 도와줄 것이다. 기술의 진보와 스포츠 능력 향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정원호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과학향기 Story] 위고비의 뜻밖의 효능들
- 비만 치료제 위고비는 체중 문제로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안겨주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022년 단식과 위고비로 13kg을 뺐다고 X (구 트위터)에 올렸다.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도 위고비 덕을 보았다.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사람들도 이기기 힘든 몸무게의 압박을 극복하도록 돕는 약인 셈이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
-
- [과학향기 Story] 달갑지 않은 손님 백일해… 최근 유행 이유는?
- 최근 ‘레트로’라는 명칭으로 복고가 유행하고 있다. 약과와 양갱, 청청패션과 나팔바지, 5~60년 전 발음과 폰트를 전면에 내세운 인테리어와 포장지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떠나간 유행이 새롭게 재해석되며 ‘뉴트로’로서 자리 잡았다. 복고는 신세대에겐 새로움을, 기성세대에겐 향수를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달갑지 않은 레트로 유행도 있다. 홍역과 같은...
-
- [과학향기 Story] 난자와 정자 결합의 또 다른 비밀, 알파폴드가 풀다
- 올해 노벨 화학상의 영예는 21세기 단백질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연구자 3인에게 돌아갔다. 약 20년 전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놀라운 시도를 감행했다면,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와 존 점퍼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은 이 길을 따라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알파폴드’를 개발했다. 수...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산타할아버지는 언제 한국에 도착할까?
- [과학향기 Story] 딥러닝, 똑똑한 인공지능을 만든 비밀
- [과학향기 for Kids] 아침에 빵 먹으면 못생겨 보인다?
- 2024년은 청룡의 해, 신화와 과학으로 용의 기원 찾아 삼만 리
- 북한이 쏘아올린 작은 ‘만리경-1호’ 궤도 진입 성공, 성능과 목적은?
- 닷새 천하로 끝난 ChatGPT 아버지 샘 올트먼의 해고 사태, 그 이유와 의의는?
- 2022-2023, ‘양자 개념’이 노벨상 연속으로 차지했다? 양자 연구 톺아보기
- 전 세계 통신을 위한 우주 인터넷, ‘머스크 vs 베이조스’로 격돌 중
- ‘삭센다에서 위고비, 마운자로까지’ 없어서 못 판다는 비만치료제 돌풍
- 국내 최초 럼피스킨 확산에 축산업 ‘비상’, 무슨 병이길래?
ScienceON 관련논문
파워리프팅이라는 무거운 중량을 들어올리는 경기가 있습니다. 해당 종목에서는 무게를 드는게 도움을 주는 슈트를 장비 오로지 맨 몸의 순수한 힘으로만 드는 것을 무장비로 구분하고 각각의 기록을 별개로 기록하고 다른 종목으로 보고 별개의 순위를 매기죠.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록을 만드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스타트 지점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예시처럼 선수의 신체능력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만드는 장비를 활용하되 순수 인간의 능력만으로 달성한 기록과는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네요.
2021-08-11
답글 0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면 인간의 신체적 능력이 무슨 의미인가?
자전거 레이스에 전기 자전거 타면 되고 카약에도 모터 달면 되나?
펜싱은 왜 하나? 그냥 총으로 쏴버리지.
유도는 엑스맨 슈트 입으면 되겠군.
2021-08-02
답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