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유기농 식품 고르는 법

<KISTI의 과학향기> 제791호   2008년 07월 30일
과학자보다는 농담꾼(?)으로 더 잘 알려진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박사는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가운데 “과학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이면서 동시에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어떤 문이 지옥의 문인지 또는 천국의 문인지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열쇠를 버릴 것인가, 아니면 열쇠를 사용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까?

독일 과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는 인공비료를 최초로 발명한 과학자다. 그는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60억 인구가 적당한 양의 식량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결국 하버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인공비료를 합성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의 양심상 우리 농민에게 권할 수는 없다.” 인공비료 역시 천국의 열쇠이면서 지옥의 열쇠인 것이다.

사람들이 인공비료에 대한 불안감이 생긴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식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진 다음에 생긴 문제다. 이제 여유가 생긴 사람들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식품을 구입해 먹는다. 문제는 건강에 좋다며 비싼 값을 부르는 유기농 채소들이 진짜로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것인지 아니면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조금이라도 쓴 것인지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농작물의 잔류농약을 검사하는 게 고작이었다.

최근 외신들은 뉴질랜드 과학자들이 동위원소를 사용해서 채소의 기본 성분을 조사함으로 동물의 분뇨 등을 이용한 유기농 채소인지 아니면 화학비료를 사용한 것인지 분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2004년에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노희명 교수가 개발한 방법으로 현재 유기농 채소 판매업자들이 제품 검사에 사용하고 있다. 노 교수가 개발한 방법은 ‘화학비료와 퇴비를 사용할 경우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질소의 동위원소 잔류비율을 이용하여, 유기농법 재배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이다.

동위(同位)원소란 말 그대로 ‘위치가 같은 원소’다. 원소번호에 따라 원소를 나열한 주기율표에서 같은 자리에 있는 원소라는 뜻이다. 원소번호가 같은데 뭐가 다를까? 질량이 다르다. 모든 수소(H)의 원소번호는 1이지만 질량수는 1, 2, 3 세 가지가 있다. 주기율표에는 수소의 질량수가 1.00794로 되어 있다. 이것은 수소 원자는 대부분 질량수가 1이고, 질량수가 2와 3인 동위원소는 아주 조금밖에 없다는 뜻이다.

퇴비든 인공비료든 상관없이 어쨌든 비료를 써야 하는 비극의 원천은 대부분의 식물과 동물이 공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를 직접 사용할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한다. 오죽하면 이름마저 ‘숨 막히는 원소’라는 뜻의 ‘질소(窒素)’이겠는가! 생명체에 공급되는 자연적인 질소는 거름과 콩과식물을 통해 공급되는 게 거의 전부다. 이것은 인류에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데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다.

질소에는 질량수가 각각 14와 15인 두 가지 동위원소가 있다. 주기율표에 질소의 질량수가 14.0067인 것을 보면 대부분의 질소는 질량수가 14이고 질량수가 15인 질소는 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농부가 사용한 비료가 화학비료인지 퇴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질량수에 따라 반응성이 미세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가벼운 원소는 무거운 원소보다 반응성이 더 좋다. 몸이 가벼우니 활동성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여러 차례 화학반응을 거칠수록 N-14가 많이 소모되어 N-15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화학비료는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하여 직접 만들어지므로 그 사이에 거친 화학반응의 수가 적지만, 퇴비는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많은 화학반응을 거친다. 따라서 퇴비는 화학비료보다 N-15의 비율이 높다. 예를 들어, 옥수수의 경우 화학비료를 사용한 토양에서는 N-15가 0.34%로 나타났지만, 퇴비를 사용한 토양에서는 2.07%로 큰 차이가 났다. 콩과 배추 등 9가지 농작물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 검사법은 농약 잔류물 조사 방법과는 달리 비누나 물로 씻어낼 수도 없다. 또한 검사 비용이 싸고 채소가 자라는 동안 어떤 단계에서도 검사가 가능하며 결과가 나오는 데는 10일 정도가 걸린다. 그렇다면 이제 소비자들은 더 이상 이름만 내세운 유기농 채소에 속는 일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이 기술은 유통업자가 확인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유통업자가 실제로 그 채소를 먹을 구매자를 속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농축산물 생산이력제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은 짝퉁이 판치는 시대다. 가짜 약품, 가짜 휘발유, 가짜 지문, 가짜 그림, 가짜 유기농산물 등 끝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짝퉁은 과학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을 밝히는 것도 과학이 할 일이다. 과학이 천국의 열쇠이면서 지옥의 열쇠라는 파인만의 말처럼 열쇠의 사용설명서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어렵지 않다. 내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것만 결정하면 된다.

글 : 이정모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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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유기농이라서 무조건 맹신하는것은 좋지 않은것 같습니다. 믿고 먹을수 있도록 신뢰를 주는게 무엇보다 중요하겠네요. 조금비싸더라도 환경과 건강을 생각한다면 유기농 농산물이 좋겠지요 ^^

200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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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hankim
  • 평점   별 4점

농축산물 이력제 정말 필요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신뢰를 가지며 좋은 먹거리를 만들고 불안해하지않고 먹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제도라고 볼 수 있죠. 생산자는 땀과 정성으로 내가 먹는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농사와 축산을 할 수 있고 흘린 땀방울과 정성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어 도시보다 부유하고 여유로운 농촌으로 거듭나게 되니 농촌을 떠나지 않고 농촌으로 모여드는 우리사회의 가장 문제되는 이농현상을 막을 수 있어 좋고, 이곳에 좋은 젊은 인재들이 살기좋은 농촌을 만드는 터전이 될 수있는 바로 그 제도가 아닐까 합니다. 농축민과 도시민사이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유통업자-판매자로 이어지는 농축산물 이력제도를 국가지원사업으로 시범으로나마 일단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수퍼에서 농축산물 살때 비싼돈 치른 만큼 마음졸리고 의심하지않고 기쁜마음으로 웃으며 먹고싶다!!!

200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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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부
  • 평점   별 5점

과학을 좋은 곳에 많이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농축산물 이력제가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모두 좋은 제도일텐데..빨리 시행되었으면 좋겠네요

200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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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 평점   별 5점

지금 먹고 있는 쥬스도.. 유기농 쥬스래는데.. 과연

200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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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쌤
  • 평점   별 5점

유익한 정보 고맙습니다. 신뢰사회가 우선 되어야겠군요!

200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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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 평점   별 5점

농축산물 이력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사람이 만든 화학비료를 쓴 식품보다는 그래도 자연 그대로인 유기농 식품이 더 좋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구별법을 알게되어서 좋았습니다.

200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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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삼
  • 평점   별 5점

대단히 유익한 글이다. 그런데 약간은 슬픈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뢰지수가 높아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데 우리의 신뢰지수는 얼마나 될까? 우리 모두 신뢰지수 높이기에 앞장서자.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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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조
  • 평점   별 5점

건강을 생각하는 나이인 저에게는 아주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써 주신 이정모님과 과학향기를 운영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드립니다.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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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 평점   별 5점

Traceability가 관건이라는 말씀 이시군요.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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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 평점   별 5점

소비자가 직접 확인하는 방법이 없으니 전문검사인을 믿어야겠죠. . 잘봤습니당.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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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
  • 평점   별 5점

잘 봤습니다. 좋은 정보이기는 한데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확인은 불가하다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습니다.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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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 평점   별 5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생활협동방식의 유통구조를 확대하여 서로 신뢰 할 수있는 먹거리 사회를 만들어야 되겠어요..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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