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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뇌를 청소하는 시간
<KISTI의 과학향기> 제3479호 2019년 12월 23일생물이 왜 잠을 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피로를 해소하고 재충전하기 위해서라는 가설도 있고, 낮 동안 쌓인 정보를 재정리하는 시간이라는 가설도 있다. 또 어떤 학자는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이 우리의 욕구를 해소해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중 어느 것 하나가 정답일 필요는 없다. 잠은 피로회복과 정보정리, 욕구해소 등을 모두 하는 생명의 보편 기제인 것. 그런데 최근 잠의 기능을 설명하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또 하나 발표됐다. 잠은 뇌에 있는 독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뇌세포 활동의 찌꺼기를 청소하는 뇌척수액
사실 잠이 독소를 청소한다는 연구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2013년에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메디컬 센터의 마이켄 네더가르드 연구팀은 쥐 연구를 통해 자는 동안 뇌에서는 깨어 있을 때 생성돼 노폐물을 씻어내는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밝혔다.
연구팀은 쥐의 뇌에 관찰용 염료를 넣은 뒤 자고 있을 때, 깨어 있을 때, 마취되어 있을 때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뇌에 있는 각종 액체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자고 있을 때 신경세포 간 틈새 공간이 크게 확장되면서 뇌척수액이 이 공간을 돌아다니며 세포의 대사산물을 청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잠을 잘 때 뇌에서는 배관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뇌척수액은 세척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9년의 연구는 인간을 대상으로 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 의공학과의 로라 로이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에서 잠을 자게 해, 자는 동안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2013년 쥐 연구와 유사한 과정을 관찰했다.
사람이 잠에 들면 신경세포의 활동이 정지하고 혈액이 조금씩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 뇌척수액이 흘러 들어왔다. 즉 뇌척수액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혈액이 자리를 비키는 것이다. 뇌척수액은 뇌 곳곳을 흐르며 신경세포의 활동으로 쌓인 노폐물을 밀어냈다.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은 뇌 청소 능력이 떨어진 것과 관련된다
그럼 뇌는 왜 하필 수면 중에 청소를 하는 걸까? 연구팀은 잠이 들면 뇌의 신경세포가 활동을 정지하고 이렇게 활동을 멈춰야 신경세포에 해야 하는 산소 공급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그렇게 혈액이 빠져나가야 비로소 뇌척수액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뇌척수액이 청소하는 노폐물은 대개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이다. 베타-아밀로이드는 퇴행성 신경질환에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단백질이라 치매의 주요 원인물질로 지목받고 있다. 뇌척수액은 베타-아밀로이드를 어디로 배출하는 걸까?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 고규영 단장 연구팀은 노화한 생쥐의 뇌척수액에 형광물질을 주입해 뇌척수액의 경로를 밝혀냈다. 그에 따르면 뇌척수액이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노폐물을 배출하는 주요 통로는 뇌 하부에 위치한 ‘뇌막 림프관’이라는 곳이다. 림프관이란 마치 하수도처럼 액체와 물질을 수송하는 관인데, 뇌에도 림프관이 있어 노폐물을 뇌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또한 고규영 단장 연구팀은 나이가 들수록 림프관의 배출 기능이 떨어져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인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인지기능이 나빠지고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 걸리는 이유도 뇌척수액의 청소 활동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연구들은 수면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일과 공부 때문에 아무리 바쁘다고 하더라도 잠을 양보하지는 말자.
글: 이인호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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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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