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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 활용 기술, 끝나지 않은 변신
<KISTI의 과학향기> 제2994호 2017년 08월 23일돌고래나 박쥐는 초음파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박쥐는 자체적으로 발생시킨 초음파를 물체에 반사시켜 물체와 먹이의 거리와 방향을 탐지하며, 돌고래는 초음파를 쏴서 먹이를 찾을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을 하는 데도 사용한다. 초음파란 주파수가 2만Hz 이상의 파로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음파를 말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초음파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안경점에서는 초음파 세척기로 안경을 씻어내고, 병원에서는 몸속을 들여다보거나 결석, 종양을 치료하는 데 초음파를 활용한다. 가정에서는 가습기에 초음파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초음파는 언제부터 사용된 것일까. 인간이 보거나 들을 수도 없는 데 말이다.
초음파 기술은 1900년 초 유럽에서 처음 개발됐다. 영국의 리처드슨이 초음파를 이용해 물속 물체를 탐지하는 기계를 발명한 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프랑스의 랑주뱅이 초음파로 수중의 빙산과 잠수함을 탐지하고 거리를 계산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 이후 초음파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임산부의 뱃속 태아를 관찰하는데 사용되는 초음파 기술은 기계를 분해하지 않고 내부 균열을 찾아내는 비파괴 검사에서 시작됐다. 출처 : shutterstock
기계를 분해하지 않고도 내부의 균열을 찾아내는 비파괴 초음파 검사도 등장했다. 물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파동을 분석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도 감지할 수 있다는 초음파의 특성을 기계설비에 적용한 것이다. 비파괴 초음파 검사 기술의 성공은 기계의 내부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속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확장됐다. 1950년 스웨덴의 심장의학자 에들러가 심장초음파 실험에 성공하면서 초음파 기술은 의학 분야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물론 초음파 기술은 몸속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고강도의 초음파가 물고기를 죽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를 통해 초음파 에너지가 조직을 가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현재 병원에서 종양을 태우는 온열치료, 몸속에 생긴 결석을 깨는 시술(쇄석술)은 모두 초음파 에너지가 내는 조직 가열 기술의 발전으로 생겨난 결과다.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초음파는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왔다. 초음파를 활용한 기술 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초음파의 화학적 응용 분야인 ‘초음파화학(sonochemistry)’이 있다.
1894년 영국 왕립해군은 고속 어뢰 보트를 시험 운항하던 중 모터가 급속도로 부식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해군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존 레일리에게 문제 해결을 의뢰했는데, 레일리는 모터가 돌아갈 때 생기는 수많은 기포에서 발생한 열과 압력이 모터를 부식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모터가 돌아가면서 나오는 다양한 소리들 가운데 초음파가 발생시킨 공동현상(cavitation) 때문이었다. 강한 초음파가 액체를 진동시키면 액체 속에 녹아 있던 기체들이 외부로 나오면서 공동(cavity)을 이룬다. 이 공동은 물체 표면에서 붕괴되고 공동이 붕괴하면 물체 표면에는 상당한 압력이 가해지면서 동시에 순간적인 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프로펠러가 빠르게 부식됐던 것이다.
안경세척기에서 발생되는 초음파는 액체를 빠르게 진동시켜 안경 사이사이의 먼지나 잔여물을 씻어낸다. 출처 : shutterstock
초음파의 공동현상을 이용한 기술은 일상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바로 안경세척기다. 초음파로 만들어낸 공동이 안경 사이사이의 먼지나 잔여물을 씻어내는 원리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현재 사용되는 초음파 공동 기술이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동이 붕괴할 때 열과 압력은 아주 작은 지점에 발생해 잠깐 사이에 사라지지만, 해당 지점에서의 순간적인 에너지 집중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붕괴 지점에서는 순간이나마 태양 표면만큼 높은 온도와 깊은 해저면 수준의 높은 압력까지 도달한다. 이런 극한 환경은 물질의 화학반응을 100만 배까지 빠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현재 자동차 산업에서는 배기가스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이나 염화수소 등 유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백금이나 로듐과 같은 값비싼 촉매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공동 붕괴를 잘 조절한다면 이들 촉매를 초음파로 대신할 수 있다. 물론 화학 반응의 촉매 작용은 예측불허의 공동 붕괴에 의존하기 때문에 얼마만큼 정교하게 화학 반응을 조절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언젠가 초음파화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공동 붕괴를 조절할 있는 날이 온다면 초음파를 이용한 더 많은 기술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초음파 공동 기술은 생명력이 끈질긴 박테리아를 없애는 바이오 응용 분야에서의 활용도 생각해 볼 만하다.
글 : 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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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ON 관련논문
우리 주위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네요! 좀 더 발전해서 유익한 곳에 사용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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