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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려한 비밀
<KISTI의 과학향기> 제812호 2008년 09월 17일
16세기 초의 베네치아는 요즈음의 파리나 뉴욕이 그렇듯 미술의 메카였다. 당시 베네치아에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티치아노, 풍부한 색채감의 화가 지오반니 벨리니, 수수께끼의 상징성으로 점철된 그림 ‘폭풍’을 그린 지오르지오네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베네치아 화가들은 다른 유럽지역의 화가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색상과 재료를 사용했고, 그 결과 베네치아 화가들은 유럽의 회화를 선도하는 화가군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베네치아 화가들의 활동과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미국화학회 소식지에 실렸다. 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이 사용했던 환상적인 색상에 과학적인 비밀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식지에 따르면 당시 베네치아에는 벤데콜로리(Vendecolori)라고 불리는 물감 판매업자들이 성업하고 있었다. 벤데콜로리는 다양한 색상의 염료, 착색제, 물감 등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도매상이었다. 화가들은 벤데콜로리의 상점에서 물감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료 화가들을 만나서 새로운 기법이나 재료에 대한 정보를 얻어갔다. 말하자면 벤데콜로리의 상점은 가게뿐만이 아니라 베네치아 화가들의 살롱 역할까지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또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는 이 같은 벤데콜로리가 없었던 것일까? 당시 대부분의 유럽 화가들은 물감을 약방에서 구해다 썼다. 벤데콜로리처럼 종합적인 화방이 있는 도시는 베네치아 외에는 없었다. 때문에 이탈리아 전역의 화가들이 벤데콜로리에서만 판매하는 다양한 물감과 재료를 구하기 위해 베네치아를 찾아왔다고 한다.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16세기 베네치아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고 있었다. 이러한 해상무역로를 확보하고 있었던 벤데콜로리들은 다양한 물감과 그림 재료들을 어렵지 않게 수입할 수 있었다. 즉, 무역 강국이던 베네치아의 위치가 미술의 전성기를 이끄는 일등 공신 역할을 했던 것이다.
16세기 화가들이 사용한 안료, 염료, 착색제 등의 생산과정은 화합물 추출, 유기반응, 무기반응, 유기금속 반응, 산화환원 반응 등을 포함하는 종합화학이었다. 벤데콜로리들은 이 화학 반응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화가들은 벤데콜로리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회화에 적극적으로 응용할 수 있었다.
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려한 화풍에는 또 다른 비밀도 있었다. 유리와 도자기 제품들은 베네치아의 전통적인 특산물인데 이는 16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당시의 화가들이 유리 세공의 기법과 재료를 정통 회화에 응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역시 벤데콜로리의 역할이 컸다. 벤데콜로리는 유리세공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재료인 분쇄한 모래도 판매하고 있었다. 베네치아 화가들은 당시 유화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유리질의 착색제를 도입해서 한층 빛나고 생생한 색채감을 내는 데 성공했다. 또 당시 화가들이 물감이 마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탄산칼슘이나 유리를 사용한 데 비해 베네치아 화가들은 물감에 분쇄한 모래를 섞어 덧칠했다.
베네치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화가 로렌조 로토는 물감을 덧칠할 때 투명한 효과를 주기 위해 레이크 안료를 사용했다. 로토의 그림을 엑스선으로 분석해보면, 연한 백색과 주홍색을 섞어 만든 핑크색 물감층과 투명한 적색 레이크 안료층이 교대로 칠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학자들이 형광현미경으로 그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림 표면에 최소한 5개 층 이상의 투명한 적색 레이크 안료층이 덧발라져 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황화비소로 만든 특이한 오렌지색상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한 군청색 역시 베네치아 화가들이 즐겨 구사한 색상들이다.
로토가 사용한 기법은 베네치아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방법이다. 즉, 투명한 색상과 반투명한 색상의 유화물감을 번갈아 덧칠해서 특별한 효과를 얻는 것이다.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여러 새로운 안료를 시험한 끝에 각각의 물감층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아래층의 색상을 가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색감을 내는 안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벨리니는 하늘의 푸른빛에 노란빛이 나는 오렌지색을 조금씩 덧칠해서 미묘한 색감의 변화를 내기도 했다. 엑스분석법과 광학현미경 사진을 통해 화학자들은 벨리니가 사용한 주황색 물감이 안티몬과 철을 포함한 실리케이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의 베네치아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색채감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좋은 빛깔을 나타내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가운데 과학적 노하우가 반영된 고유한 화법이 작품에 적용되었다. 그러한 노력이 마침내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베네치아의 미술문화를 꽃피우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이 당시 베네치아 화가들의 활동과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미국화학회 소식지에 실렸다. 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이 사용했던 환상적인 색상에 과학적인 비밀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식지에 따르면 당시 베네치아에는 벤데콜로리(Vendecolori)라고 불리는 물감 판매업자들이 성업하고 있었다. 벤데콜로리는 다양한 색상의 염료, 착색제, 물감 등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도매상이었다. 화가들은 벤데콜로리의 상점에서 물감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료 화가들을 만나서 새로운 기법이나 재료에 대한 정보를 얻어갔다. 말하자면 벤데콜로리의 상점은 가게뿐만이 아니라 베네치아 화가들의 살롱 역할까지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또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는 이 같은 벤데콜로리가 없었던 것일까? 당시 대부분의 유럽 화가들은 물감을 약방에서 구해다 썼다. 벤데콜로리처럼 종합적인 화방이 있는 도시는 베네치아 외에는 없었다. 때문에 이탈리아 전역의 화가들이 벤데콜로리에서만 판매하는 다양한 물감과 재료를 구하기 위해 베네치아를 찾아왔다고 한다.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16세기 베네치아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고 있었다. 이러한 해상무역로를 확보하고 있었던 벤데콜로리들은 다양한 물감과 그림 재료들을 어렵지 않게 수입할 수 있었다. 즉, 무역 강국이던 베네치아의 위치가 미술의 전성기를 이끄는 일등 공신 역할을 했던 것이다.
16세기 화가들이 사용한 안료, 염료, 착색제 등의 생산과정은 화합물 추출, 유기반응, 무기반응, 유기금속 반응, 산화환원 반응 등을 포함하는 종합화학이었다. 벤데콜로리들은 이 화학 반응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화가들은 벤데콜로리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회화에 적극적으로 응용할 수 있었다.
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려한 화풍에는 또 다른 비밀도 있었다. 유리와 도자기 제품들은 베네치아의 전통적인 특산물인데 이는 16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당시의 화가들이 유리 세공의 기법과 재료를 정통 회화에 응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역시 벤데콜로리의 역할이 컸다. 벤데콜로리는 유리세공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재료인 분쇄한 모래도 판매하고 있었다. 베네치아 화가들은 당시 유화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유리질의 착색제를 도입해서 한층 빛나고 생생한 색채감을 내는 데 성공했다. 또 당시 화가들이 물감이 마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탄산칼슘이나 유리를 사용한 데 비해 베네치아 화가들은 물감에 분쇄한 모래를 섞어 덧칠했다.
베네치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화가 로렌조 로토는 물감을 덧칠할 때 투명한 효과를 주기 위해 레이크 안료를 사용했다. 로토의 그림을 엑스선으로 분석해보면, 연한 백색과 주홍색을 섞어 만든 핑크색 물감층과 투명한 적색 레이크 안료층이 교대로 칠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학자들이 형광현미경으로 그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림 표면에 최소한 5개 층 이상의 투명한 적색 레이크 안료층이 덧발라져 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황화비소로 만든 특이한 오렌지색상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한 군청색 역시 베네치아 화가들이 즐겨 구사한 색상들이다.
로토가 사용한 기법은 베네치아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방법이다. 즉, 투명한 색상과 반투명한 색상의 유화물감을 번갈아 덧칠해서 특별한 효과를 얻는 것이다.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여러 새로운 안료를 시험한 끝에 각각의 물감층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아래층의 색상을 가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색감을 내는 안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벨리니는 하늘의 푸른빛에 노란빛이 나는 오렌지색을 조금씩 덧칠해서 미묘한 색감의 변화를 내기도 했다. 엑스분석법과 광학현미경 사진을 통해 화학자들은 벨리니가 사용한 주황색 물감이 안티몬과 철을 포함한 실리케이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의 베네치아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색채감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좋은 빛깔을 나타내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가운데 과학적 노하우가 반영된 고유한 화법이 작품에 적용되었다. 그러한 노력이 마침내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베네치아의 미술문화를 꽃피우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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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데 모래도 섞어서 사용했군요. 약방에서 물감을 구입해서 썼다니 흥미롭네요. 궁금하네요. 물감이 약품으로 분리되어 있었나요?
2009-04-13
답글 0
벤데콜로리가 베네치아의 화풍을 드높여주는데 일조를 했군요. 16세기에 다른 곳에서는 약방에서 물감을 팔았다는 사실도 흥미롭네요. 무엇보다도 베네치아 화가들의 색감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그들의 명성을 높게 해준 가장 큰 이유겠죠,.
2009-04-09
답글 0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2008-09-23
답글 0
재미있는 내용 감사합니다^^
2008-09-18
답글 0
와우~ 놀라워요.ㅎㅎㅎㅋㅋㅋ
2008-09-17
답글 0
오 삽화는 밥 아저씨네요 ㅎㅎ 그림 참 쉽죠 ~
2008-09-17
답글 0
우후~ 놀라워라~ 화가아이씨들이 그림분야의 과학자였네~
2008-09-17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