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과학향기 Story] 고주파 초음파로 살아난 정자, 난임 문제 해결할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043호   2024년 03월 18일
저출생 시대에도 아이를 갖고자 하는 부부는 여전히 많다. 피임 없이 성생활을 하는 이성 파트너는 보통 1년 이내에 약 85~90%가 임신에 성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지 못한 부부는 여러 보조 생식 기술의 도움을 받으며 원하던 소식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지난 2월 호주 모나쉬대 연구팀은 남성 난임의 한 요소인 정자의 운동성 감소를 초음파로 회복하는 방법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고주파 초음파가 정자의 운동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익히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초음파를 맞은 정자의 이동 효과가 워낙 커 운동성에 미치는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히 가리기 어려웠다. 모나쉬대 연구팀이 새롭게 알아낸 사실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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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난임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성 난임 뿐만 아니라 남성 난임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Shutterstock
 
정자 운동성은 수정의 핵심
난임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여성 난임에 집중했던 이전과 달리 남성 난임 요인과 치료법에 관한 연구가 차츰 진행되고 있다. 202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난임 가이드북’에 따르면 남성 요인으로 인한 난임은 전체 원인의 약 20~30%를 차지하는데, 민간 의료 기관의 조사에서는 그 비율을 40%까지 높게 보기도 한다.
 
남성 난임의 주 원인은 사정액이 없거나 적은 경우, 정자 수 자체가 적은 경우, 정자의 운동성이 저하된 경우 등이다. 정자가 난자까지 이동하는 능력은 자연 수정의 핵심이다. 기존 연구는 정자의 운동성이 10% 증가할 때마다 임신율이 8% 높아진다고 보고한다. 이 능력은 보조 생식 기술의 도움을 받을 때도 중요한데, 세포질 내 정자 직접 주입술(ICSI, 채취한 난자에서 난자를 둘러싼 세포를 제거한 후 세포질 안에 정자를 직접 주입하는 기술)에서 운동성 정자를 주입하면 임신율이 최대 25%까지 증가한다고 한다. 펜톡시필린, 테오필린 등의 약물로 정자의 운동성을 개선할 수도 있으나 이러한 약물은 정자의 수명에 잠재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현재 불임 치료에 권장되지 않는 편이다.
 
미세 물방울을 활용해 전후 효과를 보다
정자 세포는 미토콘드리아와 꼬리에서 일어나는 대사를 통해 운동성을 얻는다. 정자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산화적 인산화는 전자전달계에 의한 산화환원반응으로 아데노신 삼인산(ATP)을 생성한다. 이는 곧 정자 미토콘드리아의 대사를 높여 정자의 운동성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탄성체 표면을 따라 이동하는 표면 탄성파(SAW, Surface Acoustic Waves) 시스템은 단일 세포를 분석하거나 세포를 조작하는 데 익히 쓰여 왔다. 가령 표면 탄성파를 부착 세포에 쏘이면 표면 부착이 억제되고 세포 확산이 감소되면서 대사 활동 속도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SAW 시스템을 활용한 방식은 정자 자체를 상당히 이동시키므로 전파가 미토콘드리아의 대사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내기 어려웠다. 
 
논문 이미지
그림 2. (A) 연구진이 활용한 미세 유체 플랫폼. 왼쪽의 폴리디메틸실록산 미세 물방울 생성 장치와 IDT가 패턴화된 오른쪽 LN 압전 기판이 결합한 형태다. (B) 왼쪽 장치에서 분리된 정자가 800밀리와트 초음파를 쏘인 뒤 오른쪽 기판 위에서 움직이는 모습. ⓒSCIENCE ADVANCES
 
이에 모나쉬대 연구팀은 미세 유체 기술로 서로 다른 구획을 만드는 방법을 활용했다. 미세 물방울로 정자를 분리해 냄으로써, 변환기(IDT)에서 나오는 표면 탄성파가 미세 물방울 내에 움직임을 일으키더라도 전파 노출 전후 개별 세포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구팀은 20~40세 사이인 세 참가자에게서 채취한 정액 샘플 50개를 운동성에 따라 급속 진행성(A), 느린 진행성(B), 비운동성(C) 세 그룹으로 구분했다. 정자에 400헤르츠/800밀리와트 초음파를 20초 동안 노출한 결과 정자의 유영 속도가 증가했다. 특히 B, C등급 세포의 59%가 더 높은 등급으로 이동했으며 C등급 세포 18개 중 2개가 A등급으로 바뀌었다. 고주파 초음파는 최대 266%까지 운동성 향상 효과를 보였고, 비운동성 정자의 34%가 운동성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정자 운동성 증가의 생체 역학을 규명하고자 미토콘드리아 막전위(MMP) 수준을 모니터링했다. MMP 수치 변화는 세포 내 에너지 공급 변화를 나타내 ATP 생산과 세포 운동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도록 한다. 분석 결과 고주파 초음파에 노출되어 운동성이 증가한 정자의 MMP 수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초음파 노출이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조절한 것이다.
 
운동성이 개선된 정자는 무정자증과 같은 심각한 남성 요인 불임을 해결책인 한편 일반적인 체외 수정법의 성공률도 높일 수 있다. 운동성 정자가 전체 정자의 40%보다 적으면 시험과 시술의 수정 실패율이 높아지지만, 40%보다 많을 경우 수정률이 15% 정도 상승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정자에 잠재적 악영향을 주는 화학적 방식이나 더 침습적인 기술 대신 초음파를 이용한 비침습적 기술과 체외 수정 기술을 결합하면 결과는 더 성공적일 것이다. 연구진은 초음파가 난자나 정자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안정성을 확보한다면 남성 불임의 새로운 치료법이 가능하리라 내다본다. 다양한 신기술이 난임 부부의 염원을 이루어주길 기원하는 한편, 시술자의 안전 또한 고려한 기술이 도입되길 바라본다.
 
글: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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