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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과학향기 Story] 녹아도 젖지 않는 얼음 젤리, 아이스팩 대신 쓸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183호   2025년 09월 29일
아직 무더위가 남아있는 날씨, 명절 선물을 조금이라도 신선하게 보내기 위해선 아이스팩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택배 박스에 아이스팩을 가득 넣더라도 팩이 열기에 녹아버리면 원하던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 경우 녹은 얼음물이 과일이나 채소를 적시면서 원물이 변질되는 등 낭패를 겪는 일도 왕왕 생긴다.
 
이렇게 녹아내린 얼음으로 생긴 번거로움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지난 8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화학회(ACS) 연례학회에서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은 젤리 얼음(jelly ice)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젤라틴을 이용한 이 새로운 냉각재는 실온에서는 젤리처럼 흔들리고 말랑하게 눌리지만, 0℃ 이하로 냉각하면 단단한 고체가 된다. 얼음처럼 시원하면서도 녹을 때 물이 생기지 않고, 깨끗이 씻어 재활용할 수 있다. 연구팀이 언제 어떻게 얼음 젤리라는 물질을 고안했는지, 그 특징은 무엇인지를 차례로 살펴보자.
 
젤라틴에 물 분자를 가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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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UC 데이비스 연구팀이 고안한 젤리 얼음 ⓒAmerican Chemical Society 영상 캡처

연구팀은 녹아도 물을 만들지 않는 얼음 냉각제를 어떻게 구현했을까? 핵심은 젤라틴의 하이드로겔 네트워크에 있다. 젤리의 주성분으로 쓰이는 젤라틴은 힘줄이나 연골 등 동물의 몸에 포함된 콜라겐 단백질을 분해해 얻는 고분자 물질이다. 단백질이 꼬여 형성된 고분자 구조에 물 분자가 갇히면서 물질은 고체와 액체 사이를 오가는 성질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물 분자가 그물망에 갇히면서 더 이상 자유롭게 흘러가지 못하고 젤리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선 강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 Davis) 생물농업공학과 석좌교수는 두부를 얼리는 과정을 보고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얼린 두부는 동결된 상태에는 내부에 물을 유지하다가 해동되면서 물을 방출한다. 두부 대신 인체에 무해한 젤라틴을 활용하면 안전하고 위생적인 냉각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생각이었다.
 
냉각 효율은 높게, 깨끗이 다시 쓰는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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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2021년 연구에서 연구팀은 얼음 젤리를 다양한 조건으로 동결-해동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a는 실온 조건의 젤라틴 하이드로젤과 단백질 중합체 구조를 보여준다. b~d는 각기 다른 온도로 동결할 때, e~g는 각기 다른 속도로 해동할 때의 구조를 도식화한 것이다. ⓒJiahan Zou, Luxin Wang, & Gang Sun(2021)

연구팀은 지난 2021년 ACS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지속가능 화학 및 공학(Sustainable Chemistry & Engineering)》에 젤리 얼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이래 이 물질의 생산 방법을 꾸준히 개선해 왔다. 4년 전 논문에서 이들은 젤리 얼음을 영하 20℃의 일반 냉동고, 영하 78℃의 드라이아이스, 영하 198℃의 액체질소 환경 등의 조건에 두고 여러 동결-해동 실험을 거쳤다. 실험 결과, 급속 냉동(F3)과 느린 해동(T1) 조건에서 구조 손상이 최소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F2, F3 수준의 낮은 온도에 동결된 젤라틴의 냉각 성능이 10회 안팎으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얼음 젤리가 기존 냉각재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아이스팩, 즉 일반 얼음은 냉각 효율이 뛰어나지만 녹을 때 반드시 물이 생기므로 식품 상태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 좋지 않다. 다시 얼려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회용에 그친다. 한편 요즘 위스키 바에서는 스테인리스에 물을 가둬 냉각하는 얼음을 쓰기도 하는데, 이 스테인리스 얼음은 재활용할 수 있으나 표면적의 한계로 온도를 빨리 낮추기 어렵고 일반 얼음보다 냉각 효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젤리 얼음은 기존 두 냉각재의 장점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연구팀의 지아한 조 박사는 “젤리 얼음은 같은 크기의 일반 얼음과 비교하여 최대 80%에 달하는 높은 냉각 잠열을 유지한다”라고 설명한다. 또 “무엇보다 여러 번 사용해도 열 흡수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 플라스틱 외피를 감싼 아이스팩이나 스테인레스 틀과 달리 젤라틴은 흙에 묻으면 자연스럽게 분해되는데, 분해를 넘어 퇴비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강조한다.
 
식품 보존에서 더 넓은 쓰임새로
 
지난여름 발표에서 연구진은 젤리 얼음의 생산 공정을 개선하며 상용화 가능성을 한 발 더 앞당겼다. 젤리 얼음에 글리세롤, 포도당 등 첨가제를 달리하여 대량 생산이 가능한 조건을 탐색한 것이다. 2021년의 연구가 젤리 얼음이 어떤 조건에서 잘 버티는가를 보이는 실험이었다면 올해의 후속 연구는 어떻게 만들어야 산업적 활용이 가능한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 젤리 얼음은 소형 큐브 형태부터 0.45㎏에 달하는 판형까지 다양하게 제작될 수 있다. 0.45㎏짜리는 시중에 사용되는 대형 아이스팩과 비슷한 크기이면서 플라스틱 외피가 없어 친환경적이다. 맨 처음 식품 보존 용도로 개발된 젤리 얼음은 소재와 활용처를 달리하며 쓰임새를 넓혀갈 예정이다. 새로운 얼음은 의약품이나 혈액, 백신 같은 생체 시료를 운반하는 등 얼음을 유통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쓰일 수 있다. 소재 면에서도 젤라틴이 아닌 콩 단백질 등 농업 부산물을 활용해 친환경 기능을 더 강화할 수도 있다. 
 
새로운 냉각재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아직 시장 분석, 제품 설계, 대규모 생산 시험 등의 여러 단계가 남았다. 이러한 과정의 끝에 우리는 물방울을 남기지 않는, 식품 보존에 뛰어난, 퇴비로까지 다시 쓸 수 있는 아이스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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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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