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과학향기 Story] 환관의 장수 비결, '생식세포'에 있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77호   2024년 07월 15일
올해 초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생명보험에 가입한 국내 여성과 남성의 평균수명은 각각 90.7세, 86.3세로 나타났다.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약 4년 더 길다. 1990년대 초 국내 남녀 평균수명 격차가 9.9세인 것을 감안하면 격차가 감소했으나 성별에 따른 수명 차이는 여전하다. 성별에 따른 수명 차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기대수명 자료에 따르면,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는 최대 9.8년까지 벌어졌다. 그렇다면 왜 성별에 따라 수명이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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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남녀 평균 수명 차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 ⓒ보험개발원
 
조선시대, 거세한 환관이 양반보다 오래 살았다?
 
통계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수명 차이가 기질이나 생활방식 등 후천적 요인이 아닌 생물학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에 일부 학자는 남녀 수명 격차의 원인을 생물학적 원인, 특히 '생식세포'에 주목하고 있다. 생식세포란, 정자와 난자처럼 자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포를 일컫는다. 2012년, 인하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연구진은 16~19세기 조선의 환관과 동시대 양반 남성의 평균 수명 차이를 분석한 바 있다. 연구 결과, 생식능력을 잃은 환관은 양반보다 수명이 평균 14~19년 더 길었다. 심지어 환갑 자체가 큰 경사로 여겨지던 시절임에도 환갑을 넘긴 환관이 흔했을 뿐 아니라, 100세를 넘긴 환관도 일부 기록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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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조선시대 당시, 생식기를 거세한 환관은 일반 양반에 비해 수명이 긴 경향을 보였다.  ⓒCJEntertainmentUSA 영상 캡처
 
 
당시 연구팀은 환관과 양반의 수명 차가 식습관과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거세로 인해 남성 호르몬 분비가 억제됐기 때문에 차이가 두드러진 것으로 추정했다. 일부 유인원 역시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사는 경향이 있지만, 이를 실험으로 입증한 사례가 적어 추측으로 그쳤다. 그런데 최근 일본 오사카대학교와 규슈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아프리카 호수에 서식하는 '킬리피시(killifish)'를 이용해 생식능력이 암수 간 수명 차이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렸다.
 
생식세포 제거하자 수명 격차 줄어
몸길이가 4~5㎝인 킬리피시는 계절에 따라 호수가 생겼다 없어지는 열대 건조지방에 서식한다. 비가 오는 우기에는 알에서 부화해 성장한다. 반면 호수가 말라붙는 건기에는 배아가 휴면 상태를 유지했다 비가 오면 부화한다. 이렇게 독특한 생애주기 때문에 성체로 성장하는 기간이 약 2주로 척추동물 중 가장 짧다. 수명 역시 반년에 불과해 실험용 쥐보다 짧은 기간 내에 탄생부터 노화,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게다가 초파리나 선충보다 인간과 가까워 노화나 수명 연구에 자주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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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킬리피시의 생식 능력을 제거하자, 암컷의 생존 기간은 줄었고 수컷의 생존 기간은 늘어났다. ⓒScience Advances
 
연구팀은 킬리피시의 생식세포를 제거해 성별이 노화와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생식세포를 제거한 킬리피시 암컷의 평균 생존 기간은 6.6% 줄었고, 수컷의 생존 기간은 13% 늘었다. 특히 생식세포가 사라진 암컷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줄어 혈중 지질단백질 수치가 높아졌고 심혈관 질환 위험 역시 증가했다. 또한 성장호르몬이 늘어나면서 몸집이 커졌지만, 부작용으로 암 발병률이 높아진 탓에 수명이 줄었다. 반면 생식세포가 제거된 수컷은 정자를 만들지 못하는 대신, 간에서 비타민 D를 많이 생성했다. 비타민D는 골격근을 튼튼하게 만들 뿐 아니라, 피부를 건강하게 만들어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실제로 암수 킬리피시에 비타민D를 투여한 결과, 수컷과 암컷의 수명은 각각 21%, 7% 늘어났다. 이에 연구팀은 “생식세포가 척추동물의 성별에 따라 노화와 수명에 끼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생식능력이 수명 격차를 만든다는 가설에 힘을 실었다.
 
수명 격차, 요인 복잡해
다만 수명은 단순히 성별 차이로만 설명할 수 없다. 예컨대,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CDC)는 남녀 간 행동 차이가 수명 격차의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남성의 경우 여성보다 흡연, 음주, 해로운 식습관 등을 접할 가능성이 높고, 남성은 여성에 비해 의사의 조언을 잘 따르지 않으므로 여성보다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망자 중 남성의 비중이 높은 것도 남성이 여성보다 개인 방역장비나 마스크를 덜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학자들은 최근 금연, 절주 등 건강을 챙기는 남성이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남녀 간의 수명 격차는 점점 더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비록 생물학적 차이가 수명 격차에 영향을 미쳐도, 후천적 노력을 통해 수명 격차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생물학적인 요인을 보상하고, 남녀의 행동을 교정하면 남성과 여성의 수명이 같아질 날이 더 빨리 올 것이라 기대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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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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