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동물 성별 정하는 유전자 가위, 동물 살리는 길 될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718호   2022년 01월 24일
친한 친구의 임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흔히 태명 다음으로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된다. 여자인가, 남자인가. 염색체의 우연한 조합으로 결정되는 성별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런데 최근 한 국제학술지에 유전자 편집 기술로 동물의 성별을 결정하는 연구가 발표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통칭 크리스퍼(CRISPR)로 불리는 3세대 유전자 가위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등장한 이래 유전 공학계에 새로운 연구 열풍을 불러일으켜 왔다. 유전자 편집이라는 아이디어와 기술 자체는 반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으나 새로이 알려진 DNA의 면역 시스템을 응용해 만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이전 기술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며 만들기 쉬웠다. 이와 같은 유전 공학 기술의 편이성과 효율성은 ’우리 인간이 생명 현상의 어느 단계까지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오늘날의 논제로 만들고 있다. 최신 연구는 어떤 원리로 동물의 성별 결정 과정에 개입했으며,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길잡이와 가위’를 나누어 넣다
지난해(2021년) 12월, 제임스 터너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 성염색체 생물학 연구소 제임스 책임 연구원‧피터 엘리스 영국 켄트 대학교 생명공학과 선임 연구원 공동 연구팀의 연구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실험 쥐의 성염색체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적용해 배아 발달에 핵심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편집, 원하는 성별의 쥐를 탄생시켰다는 것이 연구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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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영국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원하는 성별의 쥐만 탄생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출처: Shutterstock) 
 
연구팀은 두 요소로 나뉘어 작동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시스템을 활용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가이드 RNA와 가위 역할을 하는 효소 단백질인 캐스나인(Cas9)으로 구성된다. 가이드 RNA가 절단해야 할 DNA 영역을 찾아 상보적으로 결합하면 Cas9이 해당 영역을 잘라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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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가이드 RNA가 절단해야 할 DNA 영역을 찾아 결합하면 캐스나인9 효소가 해당 부분의 DNA를 자르는 기술이다. (출처: Shutterstock)
 
원하는 성별의 쥐만 태어나게 하는 일은 실제로 어떻게 이뤄졌을까? 이들은 DNA 복제와 복구에 필수적인 Topisomerase1(Top1) 유전자를 가이드 DNA의 표적으로 삼았다. Top1 유전자가 손상된 실험 쥐는 4~16세포기에서 세포 분열을 멈추어 그 이상으로 자라지 못한다. 이렇게 설계한 가이드 DNA를 암컷의 DNA에, 가이드 DNA에 맞춤한 Cas9를 수컷의 성염색체 어느 한쪽에 넣으면 특정 성별의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다.
 
가령 암컷 쥐만을 원할 때는 Cas9을 수컷의 Y 염색체에 넣는다. 부모 각각으로부터 X 염색체를 물려받아 ‘가위’가 없는 암컷(XX) 배아는 Top1의 손상 없이 정상적으로 발달한다. 하지만 길잡이와 가위 모두를 물려받은 수컷(XYcas9) 배아는 두 요소가 결합하며 세포 분열을 멈추게 된다. 즉 이때의 성별 결정이란 원하지 않는 성별의 배아 치사율을 조정해 원하는 성별을 선택적으로 살려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수컷 쥐를 원할 때는 Cas9을 수컷의 X 염색체에 넣는다. 가위를 포함한 수컷의 X 염색체를 물려받은 암컷(XXcas9) 배아는 성장을 멈추고, 가이드 DNA가 있는 암컷의 X 염색체와 가위가 없는 수컷 Y 염색체를 물려받은 수컷(XY) 배아는 정상적으로 자란다.
 
 
인간은 동물의 성별에 늘 개입해 왔다
아무리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지만 동물의 성별을 정하는 기술이라니, 영 찜찜함이 남는다. 더욱이 Top1 유전자는 포유류 대부분이 갖고 있다는데, 쥐가 아닌 다른 동물까지 적용되면 더 위험하지 않을까? 그런데 연구팀은 이러한 상상의 다른 한편에서 동물 복지를 논한다. 성별을 고르는 안전한 기술이 기초 과학계와 축산업 현장에서 불필요하게 도살되는 개체 수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생물학‧의학 분야의 실험실 연구에서는 연구 목적상 한쪽 성별의 동물만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난자‧정자 생성과 관련된 실험이나 유방‧전립선 등 한쪽 성별에 특정한 생식 기관, 성별 특정 호르몬 등을 연구하는 실험이 그렇다. 실험에 쓰이지 못하는 다른 한쪽 성별은 무의미하게 살처분된다.
 
특정 성별 선호 현상은 축산업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보통 농가에서는 새끼와 젖을 얻을 수 있는 암컷을 선호한다. 무수히 많은 수평아리가 알을 낳지 못하고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도살된다. 연구팀은 육류 생산에 동원되지 않는 수컷 송아지가 영국에서 매년 약 9만 5000만 마리, 독일에서 약 20만 마리, 호주에서 약 50만 마리나 살처분되고 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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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암컷 닭을 선호하는 축산농가 때문에, 매년 전 세계에서 수십만 마리의 수평아리가 살처분되고 있다. (출처: Shutterstock)
 
이번 연구에서 유전자 편집으로 태어난 개체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요소의 한쪽만을 포함하기에 편집된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일을 통제할 수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집단 내에 퍼뜨리는 방식과 다른 점이다. 또한 적어도 실험 쥐에서는 유전자 편집으로 인해 유해한 영향을 받은 개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전자 편집에 의한 성별 통제가 이미 인간에 의해 공공연히 일어나는 성별 통제보다 절대적으로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까? 논문 공동 저자인 피터 엘리슨은 이 기술이 동물 복지 개선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자평하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기술이 농업 분야에 적용되려면 법 개정을 비롯한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논지다.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손기술과 기계로 동물의 성별에 개입해 왔다. 성별을 정하는 기술의 위험성은 기술의 잠재력뿐 아니라 안전과 효율을 대하는 인간 사용자의 자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글: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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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환[사도 요한]
  • 평점   별 5점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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