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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의 고조할아버지, 다게르
<KISTI의 과학향기> 제1295호 2011년 03월 07일
유명한 과학자들의 일화를 보면 우연한 계기를 통해 과학사적으로 중대한 발견을 한 사례가 종종 있다.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은 이야기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넘치는 물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알아낸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 유명하다. 이런 것을 두고 ‘세렌디피티(serendipity)’ 또는 ‘세렌디피티적 사고’라고 한다.
1830년대 어느 날 저녁, 중대한 발명을 이끌어 낸 우연한 사건이 찾아왔다. 한 발명가가 여느 때처럼 실험을 하다가 망친 은판을 화학약품 보관소에 넣어두었다. 며칠 후에 그 판을 꺼내보니 무언가 선명한 영상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연구 끝에 함께 들어있던 수은의 증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은 세기의 대발명 ‘사진’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발명가 이름은 루이 자끄 망테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오늘날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8시간 동안 카메라 앞에서 꼼짝 않고 있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림 1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이 다게르.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다게르는 1787년 11월 18일 프랑스 코르메유 장 파리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극장의 무대배경을 그리는 화가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자연풍경을 그렸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16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치는 밀폐된 상자의 한쪽 면에 구멍을 뚫으면 바깥 경치가 다른 쪽 면 위에 거꾸로 비치는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당시 화가들은 옵스큐라를 사용해 경치나 사물을 그리곤 했다.
다게르는 이 작업을 하면서 카메라 옵스큐라 초점판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남기고 싶어했다. 1827년경부터 본격적인 사진 연구에 착수했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파리의 한 렌즈 가게에서 사진을 연구하던 니에프스를 알게 됐다. 프랑스의 공학자였던 조세프 니에프스는 이미 1년 전, 자신의 집 앞 정원에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다게르보다 사진 연구에 앞서 있었다.
니에프스가 찍은 사진은 태양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에서 ‘헬리오그래피(Heliograpy)라 불렸다. 하지만 그가 찍은 사진은 질이 좋지 않았고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장장 8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빛에 노출시키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인물사진을 찍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829년 다게르는 니에프스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하고 10년의 계약을 맺었지만 6년 만에 니에프스는 사망한다. 하지만 다게르는 혼자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던 연구는 위에서 언급한 우연한 계기를 통해 해답을 찾게 됐다. 요오드화은판에 수은 증기를 쐬면 이미지가 드러나는 감광법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니에프스가 발명한 헬리오그래피를 발전시켜 1837년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는 독자적인 사진현상 방법을 발명했다. 은판을 수은 증기에 쐬어 이미지가 드러나게 한 뒤 그 원판을 소금물에 담가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니에프스의 사진보다 선명한 영상을 얻으면서도 촬영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다. 기존 8시간이었던 노출시간을 20분가량으로 줄인 획기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림 2 다게레오타입으로 찍은 사진들. 1837년(좌), 1838년 파리 거리에서 10분 이상 노출을 통해 얻은 사진(우).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이 기술은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공개돼 공식적인 최초의 사진술로 인정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 기술을 즉시 사들여 전 인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게레오타입에도 단점은 있었다. 렌즈가 어둡고 집광력(빛을 모으는 능력)이 약했기 때문에 노출시간이 많이 걸렸다. 게다가 촬영과 현상을 거쳐 단 한 장의 사진밖에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진술은 꾸준히 개발돼 1880년대 들어서며 롤 필름을 이용해 자유롭게 사진을 확대, 축소하거나 대량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다게레오타입을 최초의 사진술이라고 인정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견(異見)도 분분하다. 니에프스가 최초라는 의견도 있으며 영국에서는 자국의 수학·물리학자였던 톨벗을 사진술의 개척자로 내세운다. 니에프스의 공로를 덮어버린 다게르의 인간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차치하고서라도 다게르는 잠상이 현상에 의해 나타난다는 현대 사진술의 기초 원리를 확립한 인물이다. 또한 은판을 최종적으로 소금물에 담가 이미지를 정착시킨 방법은 현재의 정착 방법(광선에 의해 상이 파괴되는 것을 보호한다는)의 시초가 됐다.
오늘날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의 복잡한 과정이 대폭 줄어들었다. 누구나 촬영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찍은 영상을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저장과 가공 역시 간편해졌다. 이같이 현대 카메라의 혜택은 19세기 사진술의 발견 덕택에 풍요로워 졌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1830년대 어느 날 저녁, 중대한 발명을 이끌어 낸 우연한 사건이 찾아왔다. 한 발명가가 여느 때처럼 실험을 하다가 망친 은판을 화학약품 보관소에 넣어두었다. 며칠 후에 그 판을 꺼내보니 무언가 선명한 영상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연구 끝에 함께 들어있던 수은의 증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은 세기의 대발명 ‘사진’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발명가 이름은 루이 자끄 망테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오늘날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8시간 동안 카메라 앞에서 꼼짝 않고 있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림 1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이 다게르.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다게르는 1787년 11월 18일 프랑스 코르메유 장 파리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극장의 무대배경을 그리는 화가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자연풍경을 그렸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16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치는 밀폐된 상자의 한쪽 면에 구멍을 뚫으면 바깥 경치가 다른 쪽 면 위에 거꾸로 비치는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당시 화가들은 옵스큐라를 사용해 경치나 사물을 그리곤 했다.
다게르는 이 작업을 하면서 카메라 옵스큐라 초점판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남기고 싶어했다. 1827년경부터 본격적인 사진 연구에 착수했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파리의 한 렌즈 가게에서 사진을 연구하던 니에프스를 알게 됐다. 프랑스의 공학자였던 조세프 니에프스는 이미 1년 전, 자신의 집 앞 정원에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다게르보다 사진 연구에 앞서 있었다.
니에프스가 찍은 사진은 태양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에서 ‘헬리오그래피(Heliograpy)라 불렸다. 하지만 그가 찍은 사진은 질이 좋지 않았고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장장 8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빛에 노출시키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인물사진을 찍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829년 다게르는 니에프스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하고 10년의 계약을 맺었지만 6년 만에 니에프스는 사망한다. 하지만 다게르는 혼자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던 연구는 위에서 언급한 우연한 계기를 통해 해답을 찾게 됐다. 요오드화은판에 수은 증기를 쐬면 이미지가 드러나는 감광법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니에프스가 발명한 헬리오그래피를 발전시켜 1837년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는 독자적인 사진현상 방법을 발명했다. 은판을 수은 증기에 쐬어 이미지가 드러나게 한 뒤 그 원판을 소금물에 담가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니에프스의 사진보다 선명한 영상을 얻으면서도 촬영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다. 기존 8시간이었던 노출시간을 20분가량으로 줄인 획기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림 2 다게레오타입으로 찍은 사진들. 1837년(좌), 1838년 파리 거리에서 10분 이상 노출을 통해 얻은 사진(우).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이 기술은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공개돼 공식적인 최초의 사진술로 인정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 기술을 즉시 사들여 전 인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게레오타입에도 단점은 있었다. 렌즈가 어둡고 집광력(빛을 모으는 능력)이 약했기 때문에 노출시간이 많이 걸렸다. 게다가 촬영과 현상을 거쳐 단 한 장의 사진밖에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진술은 꾸준히 개발돼 1880년대 들어서며 롤 필름을 이용해 자유롭게 사진을 확대, 축소하거나 대량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다게레오타입을 최초의 사진술이라고 인정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견(異見)도 분분하다. 니에프스가 최초라는 의견도 있으며 영국에서는 자국의 수학·물리학자였던 톨벗을 사진술의 개척자로 내세운다. 니에프스의 공로를 덮어버린 다게르의 인간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차치하고서라도 다게르는 잠상이 현상에 의해 나타난다는 현대 사진술의 기초 원리를 확립한 인물이다. 또한 은판을 최종적으로 소금물에 담가 이미지를 정착시킨 방법은 현재의 정착 방법(광선에 의해 상이 파괴되는 것을 보호한다는)의 시초가 됐다.
오늘날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의 복잡한 과정이 대폭 줄어들었다. 누구나 촬영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찍은 영상을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저장과 가공 역시 간편해졌다. 이같이 현대 카메라의 혜택은 19세기 사진술의 발견 덕택에 풍요로워 졌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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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파리의 거리가 아주 선명하게 찍혔네요. 그 당시에 이런 기술을 발명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2011-04-05
답글 0
훌륭한데요..^^세렌디피티..
2011-03-17
답글 0
사진기 발명이 이렇게 이루어진거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1-03-14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