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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금모래 만들기
<KISTI의 과학향기> 제1502호 2011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작은 제비의 입에 물려 있는 금조각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 조각이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마지막으로 벗어던진 최후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비는 지친 날개를 재빨리 저어대며 날았습니다. 날씨는 너무 추웠고, 매일 밤 날아다니느라 기력도 쇠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제비의 머릿속에는 오직 마지막 금 조각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디작은 뇌를 달콤하게 지배하던 따스한 이집트에 대한 향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작고 쓰러져가는 오두막의 창가에 내려앉은 제비는 떨리는 부리를 조용히 열어 금 조각을 떨궜습니다. 창가 앞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가난한 과학도의 눈에 띌 수 있는 정확한 위치에 말입니다. 깜짝 놀라 반짝이는 조각을 집어 든 과학도는 조심스레 조각을 깨물어 보고 주위를 휘휘 둘러본 뒤 그 자리에 꿇어앉았습니다. 과학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는 생활고를 잊고 자신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도는 눈물로 얼룩진 눈을 들어 창가를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누구신가요, 이런 고마운 성탄 선물을 주신 분은!”
제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까요. 그저 떨리는 날개를 모아 쥐고 비틀대는 다리를 어렵게 유지한 채 고개를 갸웃댔을 뿐입니다. 제비를 본 과학도는 다시 한 번 부르짖었습니다.
“오오, 네가 전해준 거였구나!”
제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댔습니다.
“그래, 창가에 앉아 추위에 떨지 말고 잠시나마 들어오지 않겠니? 너를 통해 이러한 선물을 주신 분께 변변치 않지만 작은 선물이나마 돌려 드리고 싶어서 그런단다. 아주 잠시만 기다리거라.”
제비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왕자님의 보석이며 금을 온 마을에 뿌려왔지만, 보답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조심스레 발을 들이밀어 창가의 작은 촛불 옆으로 간 제비는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사이에 부스럭대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과학도가 작은 시험관을 내밀었습니다. 제비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가루들이 아름답게 춤추고 있었거든요. 이리도 금이 많다면 애초에 나누어 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왕자님의 마지막 사랑을 이런 곳에 던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깊은 후회와 분노에 몸을 떨기 시작한 제비 앞에서 과학도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오해하지 말렴, 작은 제비야. 이건 진짜 금이 아니란다. 요오드화납이라는 물질의 작은 결정일 뿐이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한 번 따스한 공기에 몸을 맡긴 제비를 보며 과학도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촛불 불빛을 받은 시험관은 아까보다 훨씬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마치 햇빛 속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왕자님의 몸처럼 말이지요.
“네가 몸을 녹일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으니 짧게나마 설명을 해 주마. 내가 넣은 건 질산납 용액과 요오드화칼륨 용액이란다. 이 두 물질을 물에 녹여 섞으면 요오드화납이 만들어지지. 요오드화납은 아주 강한 노란색을 띠고 찬물에 녹지 않아. 그래서 처음에는 노란 가루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지. 이 용액을 다시 한 번 가열하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물에 점점 녹아들어가면서 용액이 다시 투명해진단다. 그 용액을 찬물에서 재빨리 식히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다시 나타나지. 그래, 찬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이때는 결정이 자라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마치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주 작은 가루들이 만들어지지. 반대로 천천히 식히면 결정이 커지고 달라붙어서 원래의 노란 덩어리가 나타나게 될 거야.”
말을 마친 과학도는 시험관을 가로로 내밀었습니다. 살짝 날아올라 발끝으로 시험관을 붙잡은 제비는 다시 한 번 과학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눈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환한 촛불 불빛 속에서 마치 은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입니다.
“진짜 금은 줄 수 없지만, 어쩌면 싸구려 눈속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빛나는 계절에 이 작고 초라한 사람 하나를 구원해주신 분도 함께 빛났으면 하는 마음에 드리는 거란다. 어쩌면 그 분께 이런 걸 드리는 것부터 누가 될지 몰라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는구나. 혹시라도 너무 무겁거나 들기 버거우면 중간에 버리고 가렴.”
제비는 고개를 저으며 날아올랐습니다. 확실히 아무리 작다고는 하지만 물이 가득한 시험관은 지친 제비가 감당하기에 많이 무겁고, 또 미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제비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발끝에 잔뜩 모으며 시험관을 단단히 그러쥐었습니다. 소중한 마음은 절대 떨어뜨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법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여전히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제비 다리에 끼어 있는 시험관 속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가루가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따스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비가 알고, 왕자님도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제비는 지친 날개를 재빨리 저어대며 날았습니다. 날씨는 너무 추웠고, 매일 밤 날아다니느라 기력도 쇠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제비의 머릿속에는 오직 마지막 금 조각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디작은 뇌를 달콤하게 지배하던 따스한 이집트에 대한 향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작고 쓰러져가는 오두막의 창가에 내려앉은 제비는 떨리는 부리를 조용히 열어 금 조각을 떨궜습니다. 창가 앞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가난한 과학도의 눈에 띌 수 있는 정확한 위치에 말입니다. 깜짝 놀라 반짝이는 조각을 집어 든 과학도는 조심스레 조각을 깨물어 보고 주위를 휘휘 둘러본 뒤 그 자리에 꿇어앉았습니다. 과학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는 생활고를 잊고 자신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도는 눈물로 얼룩진 눈을 들어 창가를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누구신가요, 이런 고마운 성탄 선물을 주신 분은!”
제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까요. 그저 떨리는 날개를 모아 쥐고 비틀대는 다리를 어렵게 유지한 채 고개를 갸웃댔을 뿐입니다. 제비를 본 과학도는 다시 한 번 부르짖었습니다.
“오오, 네가 전해준 거였구나!”
제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댔습니다.
“그래, 창가에 앉아 추위에 떨지 말고 잠시나마 들어오지 않겠니? 너를 통해 이러한 선물을 주신 분께 변변치 않지만 작은 선물이나마 돌려 드리고 싶어서 그런단다. 아주 잠시만 기다리거라.”
제비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왕자님의 보석이며 금을 온 마을에 뿌려왔지만, 보답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조심스레 발을 들이밀어 창가의 작은 촛불 옆으로 간 제비는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사이에 부스럭대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과학도가 작은 시험관을 내밀었습니다. 제비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가루들이 아름답게 춤추고 있었거든요. 이리도 금이 많다면 애초에 나누어 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왕자님의 마지막 사랑을 이런 곳에 던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깊은 후회와 분노에 몸을 떨기 시작한 제비 앞에서 과학도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오해하지 말렴, 작은 제비야. 이건 진짜 금이 아니란다. 요오드화납이라는 물질의 작은 결정일 뿐이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한 번 따스한 공기에 몸을 맡긴 제비를 보며 과학도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촛불 불빛을 받은 시험관은 아까보다 훨씬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마치 햇빛 속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왕자님의 몸처럼 말이지요.
“네가 몸을 녹일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으니 짧게나마 설명을 해 주마. 내가 넣은 건 질산납 용액과 요오드화칼륨 용액이란다. 이 두 물질을 물에 녹여 섞으면 요오드화납이 만들어지지. 요오드화납은 아주 강한 노란색을 띠고 찬물에 녹지 않아. 그래서 처음에는 노란 가루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지. 이 용액을 다시 한 번 가열하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물에 점점 녹아들어가면서 용액이 다시 투명해진단다. 그 용액을 찬물에서 재빨리 식히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다시 나타나지. 그래, 찬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이때는 결정이 자라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마치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주 작은 가루들이 만들어지지. 반대로 천천히 식히면 결정이 커지고 달라붙어서 원래의 노란 덩어리가 나타나게 될 거야.”
말을 마친 과학도는 시험관을 가로로 내밀었습니다. 살짝 날아올라 발끝으로 시험관을 붙잡은 제비는 다시 한 번 과학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눈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환한 촛불 불빛 속에서 마치 은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입니다.
“진짜 금은 줄 수 없지만, 어쩌면 싸구려 눈속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빛나는 계절에 이 작고 초라한 사람 하나를 구원해주신 분도 함께 빛났으면 하는 마음에 드리는 거란다. 어쩌면 그 분께 이런 걸 드리는 것부터 누가 될지 몰라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는구나. 혹시라도 너무 무겁거나 들기 버거우면 중간에 버리고 가렴.”
제비는 고개를 저으며 날아올랐습니다. 확실히 아무리 작다고는 하지만 물이 가득한 시험관은 지친 제비가 감당하기에 많이 무겁고, 또 미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제비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발끝에 잔뜩 모으며 시험관을 단단히 그러쥐었습니다. 소중한 마음은 절대 떨어뜨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법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여전히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제비 다리에 끼어 있는 시험관 속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가루가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따스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비가 알고, 왕자님도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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