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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내 탓이 아니라 바이러스 탓!
<KISTI의 과학향기> 제3343호 2019년 04월 29일비만에 대한 흔한 오해 한 가지는 비만이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는 통념이다. 달고 기름진 음식만 먹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항상 군것질을 입에 달고 다니는 습관이 문제라고 말이다. 하지만 비만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생활습관만이 비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연구에 따르면 비만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있다. 이른바 ‘바이러스성 비만’이다.
비만 유발 바이러스의 발견
바이러스가 비만을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과거부터 알려져 있었다. 1980년대 인도의 의사 니킬 두란다는 비만 환자를 치료하면서 많은 환자가 전혀 살이 빠지지 않거나 살을 뺀 뒤에도 금방 다시 몸무게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의문에 빠졌다.
그때 인도 전역에 닭 전염병이 돌아 수많은 닭이 폐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두란다와 친분이 있었던 수의학자는 두란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닭 전염병의 원인은 ‘SMAM-1’이라는 조류 아데노 바이러스인데, 죽은 닭을 해부해보니 지방이 아주 많이 축적돼 있었다는 것이다.
두란다는 이런 사실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감염은 동물을 마르게 하지 살이 찌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에 두란다는 닭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 집단에는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다른 집단은 그냥 두어 비교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들은 건강한 닭에 비해 정말로 체중이 늘었다. 이는 비만의 원인이 바이러스임을 나타냈다.
닭에서 사람에게 옮겨가는 바이러스, 비만을 유발하다
정말로 흥미로운 사건은 또 있다. 미국에서 닭 농장을 경영하던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닭에게 할퀴고 갑자기 비만 체질이 된 것이다. 그는 닭에게 할퀸 이후부터 금방 배고픔을 느끼고 늘 음식 생각이 났다고 한다. 가족들은 사춘기가 와서 식욕이 늘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살을 빼기 위해 먹는 양을 일부러 줄이고 운동도 더 많이 했지만 살은 잘 빠지지 않았고 조금만 먹어도 금방 다시 쪘다.
두란다와 연구팀은 SMAM-1 바이러스를 연구하면서 이 바이러스와 유사한, 주로 감기와 눈병을 일으키는 Ad-36이라는 아데노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지방 축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구팀은 지방흡입술을 받은 환자의 지방조직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추출했다. 그 뒤 절반을 Ad-36에 노출하고 나머지는 비교를 위해 노출하지 않았다. 1주일간의 조직배양을 거친 후 결과는 놀라웠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성체줄기세포의 대부분은 지방세포로 전환되었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줄기세포들은 그렇지 않았다.
두란다 연구팀은 미국인 환자의 혈액 샘플도 조사했다. 그러자 환자에게서 Ad-36에 대한 항체를 발견했다. 즉 과거에 닭에게 물리면서 SMAM-1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SMAM-1 바이러스가 Ad-36 바이러스로 돌연변이했던 것이다.
어떻게 Ad-36 바이러스는 비만을 일으킬까?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바이러스가 지방 생성을 촉진하는 효소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것. 둘째는 혈액에 있는 포도당을 흡수해 지방으로 전환한다는 것. 셋째는 더 많은 지방 세포를 만들게 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아직 바이러스성 비만을 완벽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만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폄하하기는 힘들며 비만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생리적, 행동적 원인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비만한 사람을 탓하거나 그들의 자존심을 깎지 말고 어떻게 하면 여러 원인을 제거할 수 있을지 아는 데 집중하자.
글: 최붕규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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