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비만이 항암제의 효과를 높인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291호   2019년 01월 28일
비만은 흡연 다음으로 암을 발생시키는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영국 암 연구소가 36만 명의 암환자(2015년 기준)를 대상으로 생활습관에 따른 암 발병원인을 분류한 결과, 흡연(15.1%) 다음으로 과체중과 비만이 6.3%에 달해 2위를 차지했다. 비만이 암 위험을 높이는 이유는 많이 연구됐는데, 과도한 지방이 면역 세포의 특정 대사 과정을 차단해 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비만인 암 환자에게 면역항암제가 더 잘 듣는다는 연구가 나왔다. 기존의 학설과는 상반된 결과다. 어떻게 면역항암제는 비만인 사람들에게 더 잘 듣는 걸까.
 
면역 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 항암제
 
우선 면역 항암제가 무엇인지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면역항암제는 다른 항암제들과 달리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찾아 제거하도록 만드는 치료제다. 면역세포에게 암세포는 제거해야 할 비정상적인 세포다. 하지만 암세포들은 면역세포를 속이고, 면역 반응을 회피해 살아남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암세포 표면에 있는 ‘PDL-1’이라는 단백질이다. PDL-1은 면역세포인 T세포의 PD-1 수용체와 결합해 T세포의 활성을 억제한다. 이때 면역항암제인 PD-1 억제제를 쓰면 PD-1과 PDL-1이 결합하지 못하고, T세포가 활성화돼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다. 이 약들은 흑생종과 폐암 등 여러 난치성 종양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해 왔다. 이 공로로 일본 교토대 혼조 다스쿠 명예교수는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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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비만은 암을 발생시키는 위험 요인이지만 역설적으로 비만인 사람에게 항암제가 더 잘 듣는다고 한다. (출처: shutterstock)
 
비만 환자의 렙틴 호르몬이 열쇠
 
그런데 PD-1을 이용한 면역항암제가 특히 과체중인 사람들에게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3월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텍사스 MD 앤더슨 암 센터 공동연구팀은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또는 일반 화학항암제를 투여한 2046명의 흑색종 환자 중에서 비만인 환자와와 그렇지 않은 환자 사이의 생존율을 비교 분석해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랜싯 종양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면역항암제(PD-1 억제제) 치료를 받은 330명의 흑색종 환자 중 과체중인 남성 환자들이 체질량지수(BMI)가 정상 체중을 가진 남성 환자들(생존기간 14개월)에 비해 생존기간이 27개월로 더 길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면역항암제 외에 표적항암제 치료를 받은 비만인 남성 환자들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미국 UC데이비스 의대 연구팀은 비만인 쥐의 T세포를 연구했다. 그 결과, 비만인 쥐의 T세포는 느리게 증식했고 면역 반응을 돕는 단백질도 분비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힘이 없는 상태였다. 그만큼 암세포가 더 잘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연구팀은 실제로 비만인 쥐에서 암세포가 더 공격적으로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뚱뚱할수록 포도당 등의 영양분이 암세포에게 더 잘 공급되고, 면역 체계가 약화되기 때문에 암이 빨리 자랐다. 여기까지는 비만이 암의 발생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기존의 학설과 일치하는 결과였다.
 
그런데 연구팀은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비만인 쥐와 비만인 환자의 T세포에는 표면에 PD-1 단백질이 평균보다 많이 발현돼 있었다. 연구팀은 그 이유가 ‘렙틴’ 호르몬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렙틴은 지방세포가 분비하는 호르몬으로, 뇌의 시상하부에 포만감 신호를 보내 음식 섭취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비만인 동물과 사람의 지방세포에서는 정상보다 오히려 더 높은 농도의 렙틴이 분비된다. 렙틴의 농도만 높고 포만감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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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의 3D 모델링. 비만인 사람은 T세포의 PD-1 단백질이 많아 항암제의 효과를 높이다. (출처: shutterstock)
 
연구팀의 실험 결과, 렙틴 농도가 증가할수록 PD-1 단백질의 발현도 증가했다. 렙틴이 면역계에도 영향을 미쳐 T세포 표면에 PD-1 단백질을 더 많이 만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PD-1이 많은 비만 환자의 T세포는 면역항암제(PD-1 억제제)에 그만큼 더 잘 반응해 암 세포를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었다. 비만인 쥐는 포도당을 비롯한 영양소를 풍부하게 섭취했기 때문에 정상 체중인 쥐들보다 암세포를 무찌르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앞으로 연구팀은 암에 걸린 정상 체중 쥐에게 고단백 먹이나 렙틴을 투여했을 때도 비만이었을 때처럼 PD-1 억제제의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실험할 계획이다. 연구를 이끈 윌리엄 머피 UC데이비스 피부과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비만이 면역 항암치료 과정의 특정 상황에서 도움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만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궁극적으로 성별, 연령, BMI 등 여러 요인 간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 2018년 11월 12일자에 실렸다.
 
글: 정시영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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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풍
  • 평점   별 5점

비만이 암 발생을 증가시키지만 항암제 효과도 좋아지게 한다니 아이러니하네요. 근데 그냥 살찌면 지방도 늘지만 근육량도 늘어난다는 거랑 다를게 없어보여요. 어떤 것이든 총체적으론 나빠보여도 내부를 잘 살펴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니까요.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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