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속도와 낭만. 두 평행선 위를 달리는 최첨단 고속열차

<KISTI의 과학향기> 제960호   2009년 07월 27일
‘기차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누구나 이 동요를 불러봤듯 기차여행에 대한 추억쯤은 다들 한두 개씩 갖고 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친구들과의 MT…. 그래서일까 요즈음 기차로 떠나는 테마 여행이 인기다. 기차는 1899년 9월 노량진과 제물포 간 운행을 처음 시작한 이래 서민의 발로, 산업의 동맥으로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1900년대 초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일반 열차로 17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지금은 2시간 40분이 걸린다. 경부고속철도가 완공되는 2010년이 되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속도의 혁명이라는 표현이 실감난다.

더욱이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시속 350km급 한국형고속열차 KTX-Ⅱ가 이르면 올해 말부터 운행될 예정이다. 현재 운행 중인 한국형고속철도(KTX)가 2004년 첫 운행을 시작한 이후 5년 만의 쾌거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일본, 프랑스,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시속 350㎞ 이상으로 달리는 초고속열차를 독자적으로 제작,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KTX-Ⅱ는 1996~2002년까지 6년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핵심부품에서부터 전체 시스템까지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하고 제작했다. 부품수 대비 92%를 국산화했다. 1100kW급 고속 대용량 유도전동기와 디지털제어 기능이 장착돼 있고, 전자석을 이용해 제동을 거는 ‘와전류제동장치’도 달려 있다. 빠르게 달리고 잘 설 수 있는, 가히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기차라고 할 수 있다.

차체는 알루미늄 압출재로 만들어져 훨씬 가벼워졌다. KTX가 20량 고정편성인데 비해, KTX-Ⅱ는 차량 수를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기존 KTX 열차의 문제로 지적돼온 터널 내 소음과 진동도 대폭 낮췄다. 2002년 시험운전을 시작해 2004년 12월 국내 최고기록인 시속 352.4km를 돌파했고, 총 20만km를 시험 주행하는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늘날 철도의 속도는 곧 기술력과 산업의 척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속도 향상을 위한 각국의 대결 양상은 가히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KTX-Ⅱ의 기술개발 성과를 바탕으로 2007년부터는 또 다른 열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바로 최고속도 시속 400km를 내는 ‘차세대 고속열차시스템’ 개발이다. 2013년까지 6년간 국내 30여 개의 산학연 기관이 이 연구에 대거 참여한다. 국내외 고속철도 기술개발 동향에 맞춰 고속화와 대용량화, 쾌적성, 안전성 등을 더욱 높일 예정이다.

기존 한국형고속열차, KTX-Ⅱ가 동력집중식인데 비해 새로운 차세대 고속열차는 동력분산식이다. 축당 하중이 가벼워 철도 시설물의 유지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가속과 감속 성능이 뛰어나 역간 거리가 짧은 한국 실정에서 더욱 유리하다.

<시속 400km의 속력을 내는 차세대 고속열차. 사진 제공 한국철도기술연구원>


KTX와는 전혀 다른 접근방법으로 개발하고 있는 고속열차도 있다. KTX는 전용 궤도를 건설하는 방법이어서 선로와 열차를 모두 바꿔야 했다. 하지만 이 열차는 기존의 열차 선로를 그대로 놓아두고, 열차만 새롭게 만들어 빠른 속력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연구개발을 완료하고 시험운행이 한창인 ‘틸팅열차’가 그것이다.

틸팅열차는 틸팅(Tilting)이라는 말 그대로 기울여 달리는 열차를 말한다. 곡선 구간을 주행할 때 차량을 곡선 안쪽으로 기울임으로써 달리면서 생기는 원심력을 감소시키는 원리를 이용한다. 스케이트나 오토바이 선수가 곡선 구간을 달릴 때 몸을 안쪽으로 최대한 기울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곡선 구간에서도 고속 주행이 가능해 전체 운행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스웨덴 등과 같이 산악 지형이 많은 나라에서 틸팅기술이 발달돼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는 다소 늦은 2001년부터 틸팅열차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중심이 돼 20여 개의 대학, 연구소, 기업들이 모여 2007년 초 6개의 차량으로 연결된 틸팅열차 개발을 완료했다. 그 해 4월부터 현재까지 호남선과 전라선, 충북선, 중앙선 등에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시험을 진행 중이다. 올해 7월 현재 총 주행 거리 10만km를 달성했다.

틸팅열차는 철도 고속화를 위해 새로운 선로를 건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건설비용 절감과 환경파괴 최소화, 전기 에너지 사용에 따른 친환경성 등의 장점이 있는 철도시스템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틸팅열차의 설계최고속도는 시속 200km, 운영최고속도는 시속 180km인 준고속 여객열차이다.

<틸팅열차는 곡선구간을 만나면 스스로 열차를 기울여원심력에 대항한다. 사진제공 한국철도연구원>


차체가 탄소 섬유의 복합소재로 제작돼 기존 차체의 무게에 비해 30% 이상 가볍고, 세계 최초로 전체 차체를 일체형 성형 기법으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틸팅열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틸팅대차는 첨단 전기 및 기계식 제어시스템으로 차체의 경사를 조정하며, 조향장치가 부착돼 곡선 구간에서의 탈선을 방지할 수 있다.

위성 신호를 통해 곡선을 자동 감지해 곡선 구간이 나타나면 스스로 차체를 기울인다. 이 때 열차에 전력을 공급받는 장치인 지붕의 집전장치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차체와는 반대로 기울어진다. 차체가 흔들리면서 고속 주행을 하지만 승객들은 거의 느낄 수 없으며, 차량 내 각종 시설물을 고급화하여 쾌적한 승차감과 함께 편의성을 높였다.

틸팅열차는 고속철도가 다니지 않는 지역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열차로 우리나라 철도 네트워크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다. 또한 디젤연료를 사용하는 노후화된 새마을 열차를 대체하는 열차로도 추진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현재 시속 100~140km에 머물러 있는 일반 철도의 속도를 높여 고속철도와 함께 우리나라 철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열차의 고속화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을 넘어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화되고있다. 아침에 서울을 출발해 낮에는 부산에서 싱싱한 바다 회와 멋진 해운대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틸팅열차와 함께 그동안 발길이 별로 닺지 않던 내륙지방 여행도 하면 더욱 편리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열차 여행은 금방이라도 아스라한 향수를 일으키며 마음 속 깊이 숨어있는 그리운 추억 하나를 꺼내주는 낭만 철도로 변신할 것이다. 속도와 낭만.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두 줄의 평행선으로 함께 달리는 철도의 과학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글 : 한석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선임연구부장


KISTI NDSL(과학기술정보통합서비스) 지식링크


○관련 논문 정보
한국형 틸팅열차의 대차에 대한 전과정평가 [바로가기]
차세대 고속열차를 위한 시스템 요구사항 개발 [바로가기]
차세대 고속열차 차량시스템 성능예측 및 성능검증 체계 개발 [바로가기]

○관련 특허 정보
한국형 고속철도의 트라이포드 고장 감지 처리 방법(한국공개특허) [바로가기]
고속철도용 감속기 시험 장치(한국등록특허) [바로가기]
고속열차 집전장치용 양력조절장치(한국등록특허) [바로가기]

○해외 동향분석 자료
유럽연합 MODTRAIN, 미래의 유럽 공동기차 ‘이니셔티브’ 개발 추진 - 2008년 [바로가기]
동일본철도, 차세대 고속열차 E5 시리즈 열차 발표 - 2009년 [바로가기]
中, 시속 350Km 및 그 이상 고속철도 기술 시스템 구축 - 2008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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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 평점   별 5점

틸팅 열차가 실용화되면 기존의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것이 사실로 다가 옵니다. 예전, 비둘기호와 통일호도 무궁화,새마을,ktx가 등장함에 따라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 졌지만 이젠 그 당시의 추억이 모두 사라져서 더 이상 옛 기억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동유럽 국가들은 현재까지 수십년된 국제 열차나 산악열차등을 운영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대조를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새 제품이 개발되면 기존의 제품이 환영받지 못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것 또한 문제 입니다. 도시화로의한 아파트붐 때문에 과거의 초가집과 기와집이 사라진것도 문제 이지 않는가요? 이왕 폐지될 봐에는 기존의 한 노선 정도는 남겨 놓아야지만 추억으로의 여행이 가능하질 않겠어요?

20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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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두
  • 평점   별 5점

ktx-2에서 와류 제동잗치는 설계당시는 계획에 있었으나 실제는 반영되지 않았다죠? ktx이든 ktx2이든 고속열차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기술이 선진국 수준에 다다를 정도로 일취월장 발전한 것 이면에, 이 차량들을 운전하는 ktx기장들의 운전기술 노하우 또한 한 수준 업그레이드 되었다더군요..이들의 희생적인 노고도 공개 되었으면..

200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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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애
  • 평점   별 5점

동감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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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스톰
  • 평점   별 5점

각종 비리 근절에 대해서는 동감입니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무분별하게 민자 유치를 한다는 것에 있는데요, 민자 유치를 함으로써 공기는 짧아질 수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국민 세금만으로 건설할 때보다 더 많이 들어서 결국 밑지는 장사가 될 수 있어 우려됩니다.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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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ision
  • 평점   별 5점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의 도입은 필수 불가한 사항이긴 하지만 엄청난 국민세금이 투입되고 있지요,지방으로 가다보면 엄청난 고속도로와 국도 또한 텅텅 비어져 있는데 언제까지 SOC 에 대한 투자를 계속 해야하는건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조직을 위한 투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공사 외주 업체들에 대한 부정과 비리 또한 빨리 없어져야 할텐데 눈먼돈이라 생각하고 먼저 먹는 놈이 임자가 되는 불상사는 없어야겠지요.항상 말썽 많고 매스컴에 지적 많이 당하는 철도시설공단...국민 세금 무서운줄 알았으면 좋겠군요.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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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hoon
  • 평점   별 5점

기술력 향상도 좋지만 서민들을 위한 요금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의미가 있을 것 같네여.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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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직
  • 평점   별 5점

흥미로운이야기네요.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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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욱
  • 평점   별 5점

ktx-ll 보다는 틸팅열차에 더 관심이 가네요.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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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스톰
  • 평점   별 5점

다만 그 많은 고속도로와 국도가 명절 대수송기간이나 휴가철만 되면 꽉꽉 막히죠. 도로 건설은 철도보다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날이 갈수록 자동차 수가 늘어나 중복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도로망은 도서산간지역 쪽의 인프라 보강 정도만 하면 될 정도로 많이 깔려 있습니다. 철도의 경우 도로에 밀리는 바람에 주 간선축인 경부선과 호남선을 제외한 모든 선구가 제때 개량 또는 신설되지 않아 연말에 열차 타고 해돋이 갈 때마다 제 속도를 못 내는 형편입니다. 철도는 건설 단가가 무척 센 인프라이긴 합니다만, 한 번 깔아 놓고 관리만 잘 해 준다면 건설비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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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근
  • 평점   별 5점

비둘기호에서 KTX까지 정말 눈비신 발전입니다. 대한민국 기술이 세계최고가 됐으면 합니다!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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