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인공 신체를 내 몸처럼 편하게 움직이는 신경 인터페이스

<KISTI의 과학향기> 제3307호   2019년 02월 25일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1995년 승마 중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다. 척추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에 의지해 다녀야했다.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그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신체적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한 개인이 겪는 절망감은 아마 이를 겪지 않은 이의 상상으로는 가 닿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리브는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50회 생일까지 다시 일어나 걷고 싶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과연 영웅 ‘슈퍼맨’ 다운 면모다. 실제 그는 하반신 마비 환자 치료법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에서 내놓은 연구비는 수천억원대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리브는 2004년 심장마비로 숨져 스스로 걷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가 설립한 재단의 연구 지원덕분에 기적의 한걸음을 걷게 된 ‘제 2의 리브’들이 탄생하고 있다.
 
척수 전기 자극해 다시 걸었다
2018년은 리브가 못다 이룬 꿈이 현실이 된 해다. 같은 해 9월 미국 루이빌대 수전 하르케마 교수 연구팀은 하반신 마비 환자의 척수에 전기자극 장치를 연결해 뇌와 다리 근육 사이의 신경망을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연구결과는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9월 24일자에 발표됐다. 이 연구는 리브가 설립한 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연구팀은 뇌와 척수의 신호연결이 끊어진 환자에게 뇌 대신 척수에 전기 칩을 이식했다. 뇌가 척수에 신호를 보내는 것을 대신해 척수에 전기적 신호로 직접 자극을 줬다. 뇌와 척수의 연결이 끊겨도 척수는 적절한 자극만 받으면 움직일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했다. 뇌에서 신호 연결은 받지 못하지만 칩으로부터 전기적 자극을 받아 실험참가자들은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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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신경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인공 신체 기관을 뜻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연구는 인류 향상을 위한 과제이다. (출처: shutterstock)
 
연구진이 이용한 전기 칩은 미국 의료기관 ‘메드트로닉’이 개발한 ‘리스토어 어드밴스드 슈어 스어’라는 신경자극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통증관리 목적으로 승인을 받아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다.
 
이렇게 전기자극 장치를 이식받은 환자는 총 3명으로 이들은 수술 후 약 6개월 만에 보행기를 짚고 혼자 100m 이상 걸었다. 이번 연구는 척수 다친 사람이 전기 칩 이식 수술을 받고 스스로 걷는데 성공한 전세계 첫 사례로 기록됐다.
 
미국에 이어 유럽 연구진도 하반신환자 보행 성공시켜
두 달 뒤 유럽 연구진도 하반신 마비 환자에게 기적의 ‘한 걸음’을 선물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연구진은 하반신환자 3명을 걷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11월 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척수에 전기 자극을 주는 칩을 이식했다. 가장 적합한 자극 지점을 찾기위해 ‘신경 활성화 지도’까지 만든 덕분에 실험대상자 3인은 1주일 안에 다리를 움직였다. 보행기를 짚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걸을 수 있었다. 5개월간 재활훈련을 통해 전기자극 없어도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두달 전 미국 연구진의 연구보다 진일보한 점이다. 미국 연구진은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일일이 전기자극을 줘야 했다.
 
스위스 연구팀은 2016년 전 하지가 마비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신경자극 실험을 해 성공시켰다. 연구팀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바탕으로 2년 만에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해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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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손상된 척수를 우회해 두 전극을 연결하는 무선송수신 시스템을 통해 하지가 마비된 원숭이를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출처: nature)
 
마비된 신체에 전기자극을 줘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신경자극 인터페이스 연구는 2008년 미국 피츠버그대 슈워츠 교수가 원숭이와 로봇팔을 연결해 원숭이가 로봇팔을 움직이는데 성공시킨 것이 시초다. 슈워츠 교수는 원숭이 뇌의 운동피질 영역에 작은 전극이 모여 있는 칩을 심어 원숭이가 로봇팔을 움직여 먹을 것을 집어먹는 장면을 공개했다.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움직이게 된 것이다. 이 실험은 사고나 선천적 불구로 팔다리를 못 쓰게 된 사람들에게 기계적인 장치로 재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최초로 보여줬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브라운대,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모여 ‘브레인게이트2’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뇌에 심은 칩을 통해 컴퓨터나 기계를 작동시키는 연구가 이뤄졌다. 2012년에는 <네이처>에 상반신이 마비되거나 팔이 없는 사람이 뇌에 심은 전극 칩을 활용해 로봇팔을 움직여 물건을 집거나 컵에 담긴 음료수를 입으로 가져와 먹는 동작을 하는데 성공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브레인게이트2’ 프로젝트는 다양한 실험을 실시했으나 뇌에 칩을 심는 과정과 효과면에서의 한계도 경험했다. 그래도 다양한 시행착오가 2018년 두 건의 굵직한 연구 성과의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신경자극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훈련기간이 수개월 소요될 정도로 오래 걸리고, 사람마다 뇌파가 달라 이를 조절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신체 마비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이 인류에게 공헌할 수 있는 최선의 일 중 하나가 아닐까.
 
글: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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