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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열로 읽는 지리여행의 가치
<KISTI의 과학향기> 제3066호 2017년 12월 27일흥해 지진이 일어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요즘 이와 관련된 보도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수습이 잘되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 같은 혹한에 지진이 일어났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파국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필자의 ‘지리학과 교수의 포항 흥해 지진 답사기’를 본 한 독자로부터 메일이 있었다. 지열 발전으로 인한 지진 발생 여부를 발전소 측과 따지고 있으니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달라는 내용이었다. 사진 찍는 것도 빠듯했던 반나절 답사였으니 기름기 뜬 논의 물을 채수했을 리 만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물이라도 좀 떠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다 생각 부족이다.
지열(地熱). 지열을 논할 때 일본보다 더 좋은 곳도 없다. 판과 판이 부딪혀 달궈진 땅. 지열 발전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바로 일본이다. 구마모토, 벳부, 운젠, 우레시노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규슈의 온천지는 그야말로 지열로 가득한 곳이다. 사실 일본 전역이 그렇다. 광천인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온천 마크를 여관 표식으로 쓰고 있는 우리나라를 보고 일본인들은 깜짝 놀란다. 한국에 온천장이 이렇게도 많았냐며 말이다. 민망한 일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가고시마(鹿兒島). 가고시마는 사쿠라지마(桜島)로 유명한 곳이다. 2만 9천 년 전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이라(姶良) 칼데라가 생긴 다음, 3천 년 후 남쪽에서 터진 화산이 사쿠라지마란 섬을 만들었다(그림 1, 사진 1). 지금의 긴코완(錦江灣)은 아이라 분화로 형성된 함몰 분화구인 것이다. 아이라 폭발은 1주일 만에 두께 60m의 화산재를 쌓아 ‘시라스’라는 이름의 대지를 만들었다. 가고시마 주변 지형이 일자형으로 평탄하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사진 2). 1946년의 사쿠라지마 대분화는 용암을 동쪽으로 흘려보내 섬을 육지로 만들었다.
사진 1. 일본 가고시마현의 사쿠라지마. 2만 9천 년 전의 화산 분화로 섬이 되었다가, 1946년 용암 분출로 인해 동쪽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hot spring’ 자체인 화산 지대의 지하수
화산 지대의 지하수는 ‘hot spring’ 그 자체다. 사쿠라지마의 온천 수온은 51℃. 찬물을 섞지 않고는 도저히 손님을 받을 수 없다. 이부스키(指宿) 해안의 스나무시(砂むし, 모래찜질, 사진 3)는 지열의 결정판이다. 바다로 흐르는 온천수가 덥혀놓은 모래가 얼마나 뜨거운지 10분 이상의 찜질욕을 금하고 있다. 이런 곳이야말로 바로 지열을 말할 수 있는 곳이다. 후쿠시마 쓰나미, 고베 지진과 같은 대자연재해와 화산·온천의 관광을 맞바꾼 일본. 일본을 볼 때마다 ‘천혜’의 자연을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이 된다.
사진 3. 일본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해안의 스나무시(모래찜질).
유학 때의 일이다. 대학원 시절 일본의 한 지열발전소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뜨거운 지하수를 뽑아내 터빈을 돌린 다음, 그 물을 다시 환수공을 통해 땅 속으로 집어넣는데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터빈을 돌린 지하수 수온을 아무리 낮춰도 계곡수온과 1℃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는 것. 1℃의 수온 차이가 생태계 교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이어졌다. 1℃를 낮추는 일이 그들에겐 큰 명제였던 것이었다.
그때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수 문제가 머리를 스쳤다. 7℃ 정도 높은 온배수를 방출해 해양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 물론 30년 전의 일이니 지금 애써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일본은 이미 1988년 1℃의 수온 제어에 그들의 연구 역량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진도 2~3을 각오하고 물을 쏟아부어 지열을 얻어내려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다.
환경에 국경 따윈 없다. 잠시 후손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다는 말을 명심하면서 지금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지리여행을 통해 지구와 대화하자
지리여행의 가치는 바로 이런 데 있다. 지구에의 겸손함을 격려하고 거만함을 불허한다. 지구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풍요를 나눈다. 지구에 무관심한 사람은 ‘1등시민자격증’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은 지구를 소박하게 가꾸는 사람들을 어렵게 만드는 무개념 소비자일 뿐이다. 지리여행은 그들을 친자연형으로 바꿀 수 있는 둘도 없는 보약이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쉼터를 제공하지만, 사실은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힐링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힐링을 하려면 자연과 생각을 나누어야 한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필자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과는 아직 많은 격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를 대하는 인식의 차이가 그렇다는 말이다. 자연을 존중하고, 지구 속 일원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과학 칼럼이 필요한 이유도 일반인들의 과학 상식을 높이는 목적이 우선이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바로잡기 위함에 있다. 내년부터 개설되는 인문계 고등학교 ‘여행지리’ 교과도 바로 이런 사고(思考)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의 마지막 칼럼을 지열로 시작해 지구 사랑의 가치로 끝내려는 필자의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글: 건국대학교 이과대학 지리학과 교수 박종관 /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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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새로운정보와지식콰태도를알게하여주심에감사합니다.
201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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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적인 내용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일본에 살고 있지만 의외로 사소하게 여겨지는 부분에서 우리나라와 차이가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앞으로 지구를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가치를 지식 쌓기와 같이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7-12-27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