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과학적으로 따져보니

<KISTI의 과학향기> 제1031호   2010년 03월 01일
“코리아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올림픽 역사를 다시 썼다. 남녀 5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10,000m까지 제패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이승훈의 10,000m 금메달은 아시아인으로 처음인데다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웠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대해 ‘충격적인 승리’, ‘가장 예상치 못했던 금메달’이라는 표현을 늘어놓으며 감탄하고 있다.

2010년 밴쿠버 대회 이전까지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우리나라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김윤만이 최초로 딴 은메달과 4년 전 토리노 대회에서 이강석이 따낸 동메달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랬던 한국이 어떻게 세계 최강의 자리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한국인만의 기술응용력을 비결로 꼽는다. 쇼트트랙 강국의 노하우를 스피드스케이팅에 꾸준히 접목한 것이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다. 쇼트트랙의 코너워크 기술을 스피드스케이팅에 활용해 코너를 돌 때 가속할 수 있었고, 쇼트트랙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가지고 있던 스케이트화 기술로 만든 스케이트 날도 새로운 무기가 됐다.

코너워크 기술은 쇼트트랙 강국이었던 우리나라 선수들의 장기다. 쇼트트랙은 스피드스케이팅에 비해 곡선운동이 많은데, 이런 코스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원심력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대표팀은 고무 벨트를 허리에 걸고 코너를 도는 훈련을 한다. 지도자가 벨트를 당겨주는 동안 넘어지는 않는 감각을 익히는 것은 원심력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준다. 덕분에 선수들은 코너를 빠른 속도로 돌 수 있다.

코너워크 기술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은 초반 100m 이후 첫 코너링에서 얼마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가속을 하느냐에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코너에서 너무 욕심을 내면 원심력을 견디지 못해 넘어질 수도 있고, 균형을 잡기 위해 속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상황에서 ‘누가 코너링에 강하냐’가 메달 색깔을 결정짓는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쇼트트랙의 코너워크 기술을 스피드스케이팅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도 지난해 여름 쇼트트랙 스케이트화를 신고 코너링 훈련에 집중했다.

<이번 금메달에는 쇼트트랙의 코너워크 기술과 스케이트 날이 큰 공을 세웠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코너워크 기술과 함께 주목할 것이 바로 스케이트의 날이다.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냈던 데는 스케이트화도 한몫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쇼트트랙 스케이트화는 양쪽 스케이트 날이 각각 일정한 곡률 반경으로 휘어져 있어 선수들이 원운동하는 것을 돕는다. 날을 어떤 비율로 구부리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는 셈이다.

코치와 선수들은 각 선수 특성에 맞는 스케이트 날의 최적 곡선율을 찾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벤딩’(bending) 기술로 선수들은 코너링에서 스피드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선수 한 명의 왼쪽과 오른쪽 스케이트 날의 휘어진 정도가 서로 다를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스케이트 날이 승리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스케이트 날은 얼음면에 닿을 때 힘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이뤄져 있다. 또 앞쪽으로 잘 뻗도록 직선의 라인을 가진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에도 벤딩 기술을 사용했다. 언뜻 직선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날이 살짝 휜 것을 알 수 있는 것. 대표팀은 각 선수에게 맞는 정확한 날 휘어짐 각도를 계산하고, 장비 담당자까지 동원해 선수의 특성에 맞게 휨을 준 스케이트 날을 만들었다고 한다. 코너워크 기술이 그랬듯 이 역시 곡선 코스에서 가속을 돕기 위해서였다.

사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스케이트화의 중요성은 1998년부터 알려졌다. 당시 나가노 올림픽에서 네덜란드 선수들이 5개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는데, 그들이 신고 있던 스케이트화의 구조가 특이했던 것이다. 바로 부츠 뒷굽과 날이 분리되는 구조였던 것.

스텝을 옮길 때마다 ‘탁, 탁’하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클랩 스케이트’라고도 불리는 이 스케이트화는 직선구간에서 가속하기에 유리하다. 스케이트 날의 뒤쪽이 부츠의 뒤꿈치와 분리돼 경기하는 내내 스케이트 날이 빙판과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날과 얼음 사이의 마찰을 줄여줘 선수가 적은 힘을 들여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도와준다. 체력부담도 덜고 스피드도 유지하는 것. 따라서 1998년 이후 거의 모든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클랩 스케이트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클랩 스케이트로 직선 코스에서 체력과 속도를 확보하고, 벤딩 기술로 곡선 코스에서도 가속하기 유리한 스케이트화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는 아시아인의 불모지였던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의 금메달이라는 쾌거로 이어졌다. 물론 과학의 원리를 스포츠에 활용하는 것 이전에 고된 훈련을 이겨내며 쌓은 선수들의 기량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선수들의 열정과 과학적인 기술력이 우리나라의 동계 스포츠를 나날이 성장시키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있는 한 우리나라 스피드스케이팅의 미래는 밝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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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
  • 평점   별 5점

선전한 우리나라 선수들. 과학적으로 잘 분석해주셨네요. 잘봤습니다.

2010-03-02

답글 0

한결
  • 평점   별 5점

스케이트 날이 휜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3-02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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