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36초 남은 마라톤 ‘2시간의 벽’, 과학이 도와줄 수 있을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901호   2023년 10월 16일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에서 주인공 신데렐라는 요정의 마법으로 예쁜 드레스와 호박 마차, 유리구두를 받아 무도회로 가게 된다. 여기서 요정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 12번이 끝나면 모든 마법이 풀린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신데렐라는 왕자와 무도회에서 춤을 추다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종이 12번 울리기 전에 달려서 마차에 타고 유리구두 한 짝만을 남긴 채 성을 빠져나간다.
 
신데렐라 포스터
그림 1. 영화 <신데렐라> 포스터. 신데렐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성품뿐만 아니라, '체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출처: 월트 디즈니 픽처스
 
2003~2012년까지 KBS에서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 연구소>에서는 과연 종이 12번 울리기 전에 무도회장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지 직접 실험해봤다. 실험 결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구두까지 신은 상태로는 도망치기는커녕 호박 마차에도 다다를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도회장에서 마차까지의 거리가 약 60m, 종이 12번 울리는 시간이 약 25초라고 가정할 때, 운동화를 신은 육상선수 정도가 되어야 간신히 마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레스에 굽 높은 구두로 도망치는데 성공한 신데렐라는 고운 마음씨뿐만 아니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강철 체력’까지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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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마라토너들에게 서브2는 꿈의 기록이자, 마의 벽이다. 출처: Shutterstock
 
마라톤에서는 신데렐라에 견줄만한 달리기 속도를 꿈꾸는 선수들이 몰려든다. 이들의 목표는 ‘서브2(풀코스 2시간 이내 주파)’에 다다르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2시간 안에 완주한 선수는 아직 없지만, 2시간에 가까운 신기록을 세운 마라토너들이 점점 나타나는 중이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10월 8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2023 시카고 마라톤’에서 케냐 선수 켈빈 키프텀이 2시간 00분 35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킵초게가 세운 종전 최고 기록(2시간 1분 9초)을 무려 34초 앞당기면서 서브2에 단 36초 차로 다가선 것이다.
 
현재 마라톤 공인 거리 42.195km가 처음 도입된 1908년 런덤올림픽 당시 최고 기록은 2시간 55분 18초였다. 이후 1935년 2시간 26분 42초, 1965년 2시간 12분, 1999년 2시간 5분 42초를 지나 2023년 2시간 35초까지 달려왔으니 대략 한 세기 동안 1시간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2시간을 돌파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과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아보자.
 
공기저항 잘 막으면 4분 넘게 줄인다
마라토너의 기량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외 요소를 유리하게 바꿔야 한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는 공기저항을 줄여 속도를 높이고, 둘째는 가벼운 기능성 신발을 신어 발의 부담을 덜고, 탄성을 높이면 된다. 지난 2017년 미국 휴스턴대와 콜로라도대 공동연구팀은 당시 세계기록 보유자인 마라토너 데니스 키메토의 신체 능력과 기록을 토대로 공기저항을 줄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 약 3분, 운동화 무게를 100g 줄이면 약 57초 기록을 단축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스포츠의학 저널(The Journal of Sports Medicine and Physical Fitness)’에 공개했다.
 
실제로 첫 번째 전략을 이용해 ‘서브 2’를 정복한 사례도 있다. 키프텀 이전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킵초게는 지난 2019년 10월 12일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 파크에서 개최한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 59분 40.2초만에 완주했다. 물론 이 마라톤은 2시간 벽을 깨기 위해 영국의 다국적 화학업체 이네오스가 후원해 개최한 비공식 경기였다. 당시 킵초게의 기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페이스메이커와 보조요원, 속도 조절을 위한 발광 장치 등이 동원됐고, 킵초게는 최초로 2시간 안에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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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프랑스 에콜 상트랄 리옹 연구팀이 축소 모형으로 진행한 풍동 실험. 출처: École Centrale de Lyon
 
이 경기에서 주목할 건 7명의 페이스메이커였다. 원래 이들의 역할은 마라토너의 속도 조절을 돕는 것이지만, 독특한 대형을 통해 킵초게에 가해지는 공기저항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위에서 봤을 때 5명은 킵초게 앞에서 V자 대형으로, 나머지 2명은 뒤에서 나란히 달리는 대형이다. 프랑스 에콜 상트랄 리옹 연구팀은 지난 8월 축소 모형으로 풍동 실험을 진행한 결과, 이 대형이 킵초게에 가해지는 공기저항을 절반으로 줄였고, 덕분에 기록을 3분 33초를 단축할 수 있었다고 ‘영국왕립학회보A(Royal Society Open Science A)’에서 밝혔다.
 
나아가 연구팀은 페이스메이커 5명이 소문자 t자 대형(앞에서부터 1명-1명-2명-1명)을 만든다면 기록을 4분 22초까지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실제로 공식 경기에서 활용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2~3명의 페이스메이커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협동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서로의 페이스메이커를 번갈아 가며 활용해 기록을 단축시킬 수 있다.
 
‘좋은 신발’ 신어야 신기록 세운다
킵초게는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좋은 신발을 신는 두 번째 전략도 사용했다. 당시 그가 신은 신발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특별 제작한 것(줌엑스 베이퍼플라이)으로, 가벼울 뿐 아니라 밑창 부분이 탄소섬유 4장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스프링 역할을 해 뛰는 힘을 10% 이상 높여준 것으로 분석됐다. 킵초게가 20초만 늦었어도 2시간 이내에 완주하지 못했을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운동화가 기록에 큰 영향을 줬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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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운동화를 바꿔봐도 달리기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출처: Shutterstock
 
그런데 페이스메이커와 마찬가지로 이 운동화 역시 공식 경기에서는 쓸 수 없다. 킵초게가 2시간 벽을 깨며 주목받자 이러한 신발을 신는 것이 ‘기술 도핑’이 아니냐는 논란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육상연맹은 ‘특정 선수를 위해 제작된 신발은 공식 대회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밑창의 두께는 40㎜ 이하, 탄소섬유를 1장만 허용한다고도 했다.
 
한편 영국 매체는 더타임스는 최근 키프텀의 기록 역시 그가 신은 탄소섬유를 장착한 미발매 나이키 운동화 덕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신발 기술이 발달하면서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안에 완주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평가했다. 언젠가 마라토너들이 서브2의 벽을 돌파하게 도울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글: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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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 평점   별 3점

풍동실험은 인공적으로 바람을 일으켜 달리는 사람에게 저항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장애물[사람들]이 있으면 바람을 막아서 저항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달리는 현장에서는 바람이 멈춰 있고 사람이 달린다.
그런 상황에서 앞에 선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풍동실험과 실제 현장을 비교하면 바람과 물체의 상대속도라는 면에서는 일치하지만
실제 물체가 받는 영향에서도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또 다른 경우가 비행기 날개의 양력실험이다.
풍동에서는 공기가 밀폐유로에서 유동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개방유로에서 날개가 운동한다.
공기가 멈춰있고 날개가 운동하는 상황에서도 베르누이 정리가 유용할까?
그 차이를 규명하는 설명은 아직 본 적이 없다.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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