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소방관, 방화복 대신 웨어러블 로봇 입는다

<KISTI의 과학향기> 제2953호   2017년 06월 12일
서울의 한 고층 빌딩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35층에 미처 탈출하지 못한 사람이 남아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고층 사다리도 닿지 않는 높이. 전력이 끊어져 엘리베이터마저 정지됐다. 소방관이 화염과 연기를 뚫고 두 발로 걸어 올라가는 것이 유일한 구조 방법이다.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세트, 도끼 등의 각종 소방장비를 30kg가량 짊어지고 45분(공기호흡기 한계시간) 안에 수십 층 높이를 왕복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지만, 1년 후면 이 상황에서도 인명 구조가 가능할 수 있다. 국내 연구진이 소방관들의 구조활동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로봇 특수 소방복’ 개발에 실제로 착수했다. 착용형 로봇(웨어러블 로봇) 상용화에 나서고 있는 국내 기업 FRT는 미래 소방관에게 필요한 로봇 ‘파이언맨’ 개발을 시작했다. 올해 말까지 시제품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파이언맨을 입으면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 수십 층 고층빌딩을 척척 걸어 올라가고, 무거운 구조요청자도 거뜬히 안아 올릴 수 있다. 시각 보조장치가 달려 있어 짙은 어둠이나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 국내 소방관들의 안전은 물론 구조 성공률을 높이는 데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FRT는 국내 방위산업체 ‘LIG넥스원’, 정보기술(IT) 전문기업 ‘아이디스’와 함께 3사 공동으로 파이언맨 개발에 나섰다. FRT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기업임을 감안하면 국내 국책연구기관과 군사기술, 첨단 정보기술을 총동원해 개발 중인 셈이다.
 
파이언맨은 고층빌딩 화재는 물론이고 다양한 구조현장에서 다목적으로 쓸 수 있다. 최대 시속 8km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으며 최대 동작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다. 강한 탄소 및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고 방화복과 충격흡수 소재를 덧입혀 소방관을 보호한다.
 
FRT는 2016년 실용화 가능한 수준의 소방관용 웨어러블 로봇 ‘하이퍼 R1’을 개발해 현재 각급 소방서 보급을 추진 중이다. FRT는 파이언맨 개발에 하이퍼 R1의 성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무게를 더 줄인 ‘하이퍼 M1’을 이용할 계획이다. 하반신 로봇으로 입으면 다리 근육을 보조해 무거운 짐을 지고도 피로감 없이 걸을 수 있다.
 
여기에 LIG넥스원이 자체 개발하고 있는 상반신 보조 로봇을 하나로 합쳐 온몸의 힘을 한층 더 키울 수 있는 전신보조형 웨어러블 로봇으로 가다듬을 계획이다. 계단 오르기, 장애물 제거 등 소방관에게 필요한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 부상을 입은 구조요청자를 안아 올릴 수 있도록 두 팔의 힘을 크게 키운다. 원래 힘보다 최대 50kg의 짐을 더 들어 올릴 수 있다.
 
아이디스는 첨단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파이언맨에 부착할 스마트 헬멧을 개발할 계획이다. 소방관끼리 통신은 물론 ‘라이다’(레이저 거리측정장치)를 이용해 짙은 연기 속에서도 주변 장애물을 찾아내고 소방관이 쓰고 있는 헬멧 속에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표시해준다. 높은 온도와 강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방호장비 역시 부착해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개발할 계획이다.
 
연구비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로부터 총 10억 원을 지원받는다. FRT 장재호 대표(생기원 수석연구원)는 “우수 연구팀을 선발해 미래 연구과제를 지원하는 ‘미래성장동력 챌린지데모데이’ 2회 행사에서 최우수 팀으로 뽑혀 지원받게 됐다”며 “3사의 기술력을 하나로 합쳐 올해 안에 시제품 개발을 끝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화 ‘아이언맨’은 주인공이 온몸에 로봇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강한 힘을 얻어 악과 싸운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초인(超人)’이 될 수 있는 길을 기계 보조장치를 이용해 찾은 셈이다. 이렇게 영화나 만화 속에서만 존재해 왔던 웨어러블 로봇이 현실화됐다. 
 
연구진은 수년 내에 소방관 등 구조요원들에게 파이언맨과 같은 웨어러블 로봇이 필수장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소방관이나 구조대원들에게 최적의 장비이기 때문이다.
 
장재호 대표는 “하이퍼 M1을 입으면 당장은 조금 더 불편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짐을 짊어지면 사정이 달라진다”며 “30kg 상당의 짐을 짊어지고 두 시간 반 이상을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소방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파이언맨이 완성되면 구조대원이 활용할 수 있는 최초의 전천후 웨어러블 로봇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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