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살균 바이러스 ‘파지’ 비밀 밝혀

<KISTI의 과학향기> 제3048호   2017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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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저작권은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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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유럽에서는 ‘스페인 독감’이라는 무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행했다. 이 독감으로 인해 약 25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쟁에서 사망한 전사자가 85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를 넘는 수치다.

이후 99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무자비하게 인명을 살상하던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 몸 안에 있는 세균을 죽이는 살균바이러스, 즉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s)’로서다.

세균의 균체를 녹여 증식하면서 세균을 먹고 있다는 뜻에서 ‘박테리오파지’란 이름이 붙었다.  짧게 줄여서 ‘파지(phages)’라고 하는데 이 바이러스는 강과 바다는 물론 산과 들, 숲과 같은 토양 속에서도 채취가 가능하다.

살균 바이러스가 소화기관 등 보호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매일 소장(小腸) 및 대장(大腸)을 통해 매일 약 300억 마리의 이 살균 바이러스를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살균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서 활동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300억 마리의 ‘바이러스의 바다(a sea of viruses)’  ‘파지옴(phageome)’이 인간 생리작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고 있다. 특히 사람의 면역시스템을 조절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있는 사람은 호주 멜버른에 있는 모내시 대학의 파지 전문가인 제레미 바(Jeremy Barr) 교수다. 그는 이 살균 바이러스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병원균의 활동을 억제하는지 그 과정을 밝혀내고 있다.

그는 초기 연구에서 이 살균 바이러스가 특정 병원균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산호서부터 사람까지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그는 세포로부터 분비되는 점액 속에 엄청난 수의 파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이들이 장 등의 소화기관 등을 뒤덮고 있으면서 연약한 부위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계속된 연구에서 바 교수는 이 살균 바이러스가 박테리아 등 병원균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면서 면역성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이들 살균 바이러스를 실험관을 통해 배양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소화기관과 허파, 뇌를 둘러싸고 있는 모세혈관을 덮고 있는 상피세포들이 파지들을 취해 그 기관 내부로 전송하고 있다는 것.

어떤 경로를 통해 이들 살균 바이러스가 내부로 이동되는지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바이러스가 안으로 이동해 세포 안에 있는 소낭(물집) 안에 에워싸여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병원균의 세포막 공격 외부에서 막아줘     

바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우리 몸에 있는 세포들이 끊임없이 파지를 취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살균 바이러스들이 소화기관에서 분비되는 점액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면서 동물 인체 전반에 걸쳐 면역성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세포들이 매일 흡수하는 파지의 수는 엄청나다. 연구팀은 한 사람 당 약 300억 마리의 파지가 흡수되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이번 주 ‘mBio’ 지에 게재됐다. 바 교수는 “파지가 세균과 같은 진핵생물과 결코 소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폴란드 과학아카데미의 생물학자 크리스티나 다브로스카(Krystyna Da˛browska)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와 관련, “살균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어떻게 흡수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그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다브로스카 박사는 그러나 이번 실험이 실험관 접시 위에서 행해진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험 시설과 실제 사람 인체 내 상황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것. “바 교수는 이번 실험에서 암 세포를 활용했는데 실제 세포 상황과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4년 다브로스카 박사 연구팀은 쥐 실험을 통해 특정한 유형의 파지들인 암세포 막을 막아 이들 세포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후 다브로스카 박사 지도교수였던 안제이 골스키(Andrzej Gorski) 박사도 더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았다.

쥐에게 파지를 주입한 결과 T세포 분열반응과 항체 생산이 줄어들었지만 면역력은 더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다. 이는 주입된 파지가 병원균의 세포막에 대한 공격을 막아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살균 바이러스 파지가 세포조직 안에 들어왔을 때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바 교수팀의 연구 결과로 그동안의 궁금증이 일부 밝혀지게 됐다.

유입된 살균 바이러스들이 인체 내에서 바이러스의 바다 ‘체내 파지옴(intrabody phageome)’을 형성하고, 인체 내 면역반응을 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박테리오파지가 처음 발견된 것은 20세기 초다.

프레데릭 W. 트워트가 1915년에 프랑스의 펠릭스 데렐이 1917년에 각각 독립적으로 이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했다. 박테리오파지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데렐이다. ‘세균을 잡아먹는 것’이라는 뜻이다.

세균을 죽이는 성질이 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100년이 다 되도록 파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세균을 죽이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수수께끼를 바 교수 등 과학자들이 하나둘 밝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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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타임즈 이강봉 객원기자
저작권자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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