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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공전주기 동기화된 ‘완벽한 태양계’ 발견
<KISTI의 과학향기> 제3031호 2024년 02월 05일과학의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여전히 신에 매혹되는 것은 자연의 운동이 놀랍도록 규칙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게도 행성 운동의 법칙을 설명한 요하네스 케플러 같은 학자 역시 우주의 구조나 행성 간 거리와 운동이 신의 기하학적인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천체물리학계는 마치 신의 계획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행성계를 발견했다. 그 주인공은 우리에게서 100광년(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 거리에 있는 별 ‘HD110067’과 이 별의 주위를 돌고 있는 6개의 행성이다.
그림 1. 별 ‘HD110067’ 중심으로 6개의 행성이 궤도 공명 현상을 보이는 행성계가 발견됐다. ⓒThibaut Roger/NCCR PlanetS
궤도 공명, 절묘한 주기적 공전 현상
발견자인 라파엘 루케 미국 시카고대학교 천체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은 이 행성계를 ‘완벽한 태양계’라고 불렀다. 이 6개의 행성이 별 ‘HD110067’ 중심으로 서로 일정한 공전주기 비율로 궤도를 돌고 있는 ‘궤도 공명’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궤도 공명이란 두 개의 천체가 항상 일정한 정수비로 공전하며, 서로에게 가하는 중력의 영향 역시 일정한 현상을 말한다.
연구팀은 2020년 테스(TESS) 외계행성 탐사 위성을 통해 HD110067의 밝기가 여러 차례 감소하는 것을 관찰하여 외계행성이 여러 개 있음을 추측했다. 그 후 12개의 천체망원경 관측 데이터와 2019년에 발사된 유럽우주국 케옵스 우주망원경(CHEOPS)의 후속 관측 데이터, 2022년 테스 외계행성 탐사위성 관측을 종합해 행성이 모두 6개이며, 이들 행성이 모두 궤도 공명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절묘하게도 6개 행성의 궤도 공명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가장 안쪽, 즉 첫 번째 행성(b)이 중심별을 3번 공전할 때 두 번째 행성(c)은 2번 공전한다. 두 번째(c)와 세 번째 행성(d), 세 번째(d)와 네 번째 행성(e) 사이도 같은 비율로 공전한다.
가장 바깥쪽 2개의 행성은 공전주기 비율이 다르다. 네 번째 행성(e)이 4번 공전할 때 다섯 번째 행성(f)은 3번 공전하며 다섯 번째 행성(f)과 여섯 번째 행성(g) 사이도 그와 같다. 다시 말해 안쪽부터 순서대로 3:2, 3:2, 3:2, 4:3, 4:3의 비율로 공전한다. 또한 가장 바깥쪽 행성(g)이 한 번 공전하는 동안 맨 안쪽 행성(b)은 6번 공전한다. 연구팀이 계산한 6개 행성의 공전주기는 안쪽부터 9.1일, 13.7일, 20.5일, 30.8일, 41.1일, 54.7일이다.
그림 2. 유럽우주국(ESA)의 케옵스 우주망원경과 궤도 공명하는 행성계. 6개의 외계행성은 모두 정수 비율로 공전 궤도를 돌고 있으며, 가장 바깥쪽의 행성(g)이 한번 공전할 때 가장 안쪽의 행성(b)은 6번 공전한다. ⓒESA
자연의 규칙성에 관한 근본적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6개 행성의 궤도 공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궤도 공명은 행성계가 형성된 초기에만 유지되고 수십억 년이 지나면 불안정성과 행성 간 충돌 등의 이유로 점차 안정성이 깨지므로,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태양계도 초기에는 몇몇 행성들이 태양과 궤도 공명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위성이긴 하지만 태양계 내에서도 궤도 공명의 사례가 있긴 하다. 바로 목성의 위성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다. 이 세 위성은 4:2:1의 비율로 궤도 공명을 한다. 가장 안쪽의 이오가 4번 공전할 때 유로파는 2번 공전하고 가니메데는 1번 공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위성의 사례로, 행성은 가까운 위치에 여럿이 모여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찰하기 어렵다. 따라서 6개 이상의 행성이 안정적인 궤도 공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사례인 것이다.
그림 3. 목성의 위성들은 태양계에서 궤도 공명을 보여주는 사례다. 위쪽부터 차례로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이며, 이들은 4:2:1의 비율로 궤도 공명을 한다(맨 아래쪽의 칼리스토는 궤도 공명을 보이지 않는다). ⓒNASA
HD110067의 6개의 행성은 모두 일정한 공전 궤도를 돌면서 서로 규칙적인 힘을 가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이 행성계가 적어도 40억 년 전 탄생한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이 행성계를 통해 행성계가 처음 형성됐을 시기의 상황을 추론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6개 행성은 크기도 비슷하다. 지름이 지구보다는 크고 해왕성(지구 지름의 4배)보다는 작다. 일종의 미니 해왕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연구팀은 다른 미니 해왕성의 사례처럼 이 행성들에 암석, 얼음, 금속으로 이루어진 작은 핵과 밀도 높은 대기층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며 그 아래 어딘가에 액체가 있을 수 있다는 예측을 조심스레 내놓았다.
어쩌면 이 발견은 행성계의 ‘화석’일지도 모른다. 행성계 형성의 초기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신기한, 원시적 사례를 통해 우리는 자연의 규칙성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권오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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