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내 친구 홍철이의 침으로 본 과학

<KISTI의 과학향기> 제567호   2007년 02월 23일
간만에 여유로운 휴일을 맞아 피자와 비디오를 싸들고 친구 홍철이를 찾아갔다. 예쁜 여배우가 나오면 을 질질 흘리는 녀석은 정말 비호감이다. 영화를 보며 군침이 도는 맛있는 피자에 손을 뻗자 얄밉게 “야~ 이거 내가 이미 발라 놨다!”고 말하는 녀석. 웃는 낯에 을 뱉을 수도 없고. 게다가 모기 물린 자리를 긁적이며 “이런 건 바르면 돼”라고 을 튀기며 천연덕스럽게 말하면 정말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든다니까.

녀석이 말할 때 마다 엄청나게 튀어나오는 침은 어디서 생길까? 침을 만드는 큰 침샘은 귀 아래, 턱뼈 아래, 혀 앞쪽의 아래에 있다. 작은 침샘은 입술, 혀, 볼 안쪽, 입천장 등에 있다. 침은 분당 0.5mL씩 나와 하루에 무려 1~1.5L나 나온다. 하루에 1000mL 우유 한 통씩 침이 나오는 셈. 신 김치나 레몬 등의 자극이 생기면 분당 4mL까지 늘어난다. 이렇게 침이 계속 분비 되는 이유는 침이 하는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홍철이와 가장 먼 쪽의 피자 한 쪽을 떼어냈다. 오물오물 씹다보니 단맛이 느껴진다. 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화 작용이다. 침 속에는 알파-아밀라아제(α-amylase)라는 소화효소가 있어 녹말을 분해해 단맛이 나는 맥아당으로 만든다. 재미있는 건 침의 pH가 외부 자극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 평소 pH6.0 정도의 약산성이지만 음식이 들어오면 pH가 7.0~7.3까지 증가한다. 이 산도가 바로 소화를 돕는 아밀라아제가 가장 활발하게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다.

피자를 먹으면서도 홍철이는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먹을 것 다 먹으면서도 할 말 다하는 녀석의 스킬이 놀랍다. 이 역시 침의 윤활작용 때문이다. 침이 살짝 점성을 가지는 이유는 당과 단백질이 결합된 뮤신(mucin)이라는 물질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음식이 들어가 pH가 달라지면 침은 더욱 점성이 높아진다. 뮤신은 침 속의 수분과 함께 입안을 적셔 촉촉함을 유지시키고 음식물을 쉽게 삼키게 하면서 말을 하기 쉽게 도와준다.

모기 물린데 침을 바르며 긁적이는 홍철이를 보니 든 생각. 정말 가렵거나 아픈 곳에 침을 바르면 효과가 있을까? 침의 기능 중의 하나가 항균작용으로 침에는 라이소짐, 감마글로블린, 시안화황 등이 들어있다. 라이소짐은 세균을 녹여 파괴하는 단백질 분해효소이며 감마글로블린은 항체기능이 있어 몸속에 세균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준다. 침은 진통 작용도 한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연구팀은 모르핀보다 최대 6배까지 진통 효과가 있는 오피오르핀이라는 물질이 침 속에 들어있다고 밝혔다.

영화에 키스신이 나오자 녀석은 ‘꿀꺽’ 침을 삼킨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자율신경계통이 자극돼 침이 나온다. 침을 흘리는 걸 보니 바로 자율신경이 흥분했나 보다. 또 맛있는 음식을 보고 군침이 도는 이유는 부교감 신경이 자극돼 침 분비가 촉진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음식 없이 상상만으로도 침이 나온다는 사실. 이것은 과거의 기억이 뇌에 저장되어 반응하는 조건반사 때문이다. 아마도 녀석은 밥 먹을 때만 되면 자동으로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릴 것이 틀림없다.

“너 또 흥분했지”라고 추궁하자 홍철이가 당황하며 무슨 소리냐고 따진다. 긴장하면 교감신경이 활발해져 침의 분비가 줄어들며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뻑뻑해진다. 그래서 거짓말을 긴장하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하는 사람을 ‘입술에 침이나 바르지’라며 비꼬기도 한다.

녀석은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퉷!’ 하고 침을 뱉기도 한다. 침을 뱉으면 입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세균이 함께 섞여 나간다. 심지어 납, 아연, 수은 등 중금속도 침에 섞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감기에 걸린 사람이 기침을 하면 병원균이 섞인 작은 침방울이 튀어 감기에 옮을 수 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차마 세균이 섞인 침을 뱉기 힘들 것 같다. 하물며 ‘제 얼굴에 침 뱉기’는 정말 안 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침은 우리 몸 상태를 알려주는 블랙박스와 같다. AIDS에 감염되면 항체가 침으로 분비돼 이 항체로 간편하게 AIDS를 검사할 수 있다. 침으로 혈액형 검사도 가능하다. 범인이 버리고 간 담배꽁초에 묻은 침에서 DNA를 검사해 범인을 식별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대 종합암센터에서는 구강암, 설암, 후두암 등 두경부암 같은 암을 진단하는데 91%의 정확도를 가진 효과적인 침 검사법도 개발했다. 지난해 12월 워싱턴 의대의 폴 쇼 교수는 “잠이 부족할수록 침 속에 아밀라아제라는 소화효소가 증가한다”고 미국국립과학회보(PNAS)에 발표했다. 앞으로는 음주측정기처럼 침으로 졸음측정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개가 오줌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듯 ‘침 발라’ 놓으면 자신의 생물학적 특징과 몸 상태에 대한 정보를 고스란히 남겨놓는 셈이다.

홍철이와 함께 영화를 다 본 지금도 입 속에는 침이 분비되고 있다. 말 할 때, 밥 먹을 때, 사랑하는 연인과 키스할 때도 침은 분비된다. 하는 일도 많고 담고 있는 정보도 많은 침. 친구로서 조언하건데 녀석이 여자친구를 만날 땐 ‘침 관리’ 좀 하는 센스를 발휘하길 바란다. (글 : 남연정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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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침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갑니다. ^^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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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직
  • 평점   별 5점

침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네요. 음식분해, 입안을 촉촉하게 해주는 것, 침의 항균작용까지 ...침을 뱉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아주 안좋은 거네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군요.

200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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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 평점   별 5점

이메일에도 이 내용을 전부 다 써 주셨으면은 좋겠네요.
저희 컴퓨터가 느린 편인데 이 사이트에 들어올려니 렉이 많이 걸리네요^^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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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이면
  • 평점   별 5점

옛말 틀린거 하나없다...게다가 열 과학적이다...ㅎㅎ
그리고
역시 모기 물린데는 침이 최고야...
십자 손톱 누르기와 참...ㅋㅋ

200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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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진
  • 평점   별 5점

과학향기는 읽을때마다 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게 합니다. 아마 주변에서 권유도 많으시죠?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모두에게 유익할듯한데 진지하게 출판생각도 해보셨으면 좋겠네요^^

200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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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 평점   별 4점

참으로 유익한 정보를 보게 됨에 항상 감사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유일하게 보관하는 이메일이랍니다.

200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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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
  • 평점   별 5점

ㄳ합니다. 예전에 어떤분이 과학구술면접에 도움되는게 많다고 해서 메일 받기 시작했는데 요새는 습관이 되서 메일 올때마다 꼭 읽어보네요.

200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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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진
  • 평점   별 5점

언제나 유익하고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200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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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 평점   별 5점

입력 도중 오타가 났네요.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과학의 숲을 보는 즐거움
KISTI 과학향기

20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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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재
  • 평점   별 5점

GOOD

20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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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이
  • 평점   별 5점

침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은 왜 코를 흘리지 않는지요? 우리 어릴 때는 너도나도 코를 많이 흘리며 자랐는데... 점심먹고 차를 마시다가 직장 동료들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고 복지부, 병원 등에 전화를 했지만 알 수가 없어서....

20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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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수
  • 평점   별 5점

올해 들어서 KISTI 과학향기가 정말 대중에 다가가는 느낌이 듭니다.
재미있게 즐 풀어주셨네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

20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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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인
  • 평점   별 5점

시안화항이 아니라 시안화황 아닌가요??

20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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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스
  • 평점   별 5점

그럼 이거 쓰신분은 하하...?

20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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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 평점   별 5점

침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군요. 어느 문구에서 읽었는데, 군사들의 갈증을 해결하고자 한 장군이 기발한 생각을 했다는군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매실의 시큼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하여 침샘에서 침이 분비되어 갈증을 해결할 수 있어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는 얘기가 있더라구요.

20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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