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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커피가 좋은 당신, 이 미생물 8배 많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131호 2025년 01월 27일“하루에 커피 몇 잔 드세요?” 여러분의 대답은 어떤가? 많은 직장인이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의례로 진한 커피를 내려 마신다. 커피는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도 빠지지 않는다. 카페인 영향을 크게 받아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사람,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줄이려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 음료 시장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위상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업 유로모니터가 작년(2024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에 달해 전 세계 평균치인 105잔의 3배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 몸속 환경을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커피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의 몸 안에 무언가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에 눈길에 간다면 이탈리아 북부 소재 트렌토대학교를 주축으로 구성된 국제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에 발표한 연구를 참고할 만하다. 이들 연구진은 커피를 하루 세 잔 이상 마시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특정 박테리아의 개체 수가 최대 8배 많았다고 발표했다. 커피 애호가에게 특히 많은 이 미생물의 특이점은 무엇일까? 커피가 미생물의 증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글로벌 기호 식품과 몸속 미생물 환경을 연결하다
연구진의 문제의식은 ‘커피’가 아닌 ‘특정 식품과 미생물 군집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했다. 식단이 인간 장내 미생물 환경에 결정 요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특정한 식품이 그 사람의 미생물 군집 구조에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금까지도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 이에 연구진은 전 세계인의 기호 식품인 ‘커피’를 변인으로 삼았다. 커피는 건강상의 효과가 잘 알려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음료이며,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을 잘 구분할 수 있을뿐더러 매일의 섭취량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또한 커피는 150개 이상의 식품과 음료 중 미생물 군집 구성 요소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식품이기도 했다.
연구진은 우선 미국인과 영국인 2만 2,867명의 상세 식단 정보를 사용해 집단에 따른 장내 미생물 차이를 분석했다. 이후 한국을 포함한 25개국에의 비서구 집단과 그리고 건강 상태와 라이프스타일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데이터(MBS-MLVS)와 통합했다. 그리고 연구팀은 각 집단을 커피 섭취량에 따라 다시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커피를 한 달에 3잔 미만 마시는 사람은 ‘거의 마시지 않음’, 하루 3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많이 마심’, 그사이에 속한 사람은 ‘보통으로 마심’으로 나뉘어, 각 집단의 대변에 포함된 장내 미생물 군집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 미생물의 개체 수가 ‘많이 마심’ 집단에서 두드러졌다. 커피 애호가의 장내 미생물 환경에는 로소니박터 아사카롤리티쿠스(Lawsonibacter asaccharolyticus)라는 박테리아의 수치가 ‘거의 마시지 않음’ 집단보다 4.5배에서 최대 8배 높았다. ‘보통으로 마심’ 집단과 비교해서도 3.4~6.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거의 마시지 않음’ 집단과 ‘보통으로 마심’ 집단 간 차이는 1.4배에 불과했다.
커피는 맞다, 하지만 카페인은 아닌
로소니박터 아사카롤리티쿠스 균주에 관해 알려진 지식은 많지 않다. 논문 교신저자인 트렌토대 메타 유전체학 연구소 니콜라 세가타 소장은 이 미생물이 발견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아(2018년 최초 분리) 아직 과학자들이 아는 것이 많지 않지 않으며, 건강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균주가 커피 속 성분을 대사하면서 심장이나 뇌, 기타 건강에 도움을 주는 커피의 잠재적 효능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특정 식품과 미생물 군집 간 관계를 규명하려 한 연구진의 다음 과제는 자연히 ‘커피가 로소니박터 아사카롤리티쿠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향했다. 이들은 시험관 배양으로 커피가 시험관 속 해당 미생물의 성장을 촉진한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곧잘 커피와 동일시되는 카페인은 이 과정에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디카페인 커피를 통한 실험에서도 미생물의 성장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카페인 대신 커피의 또 다른 성분인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에 주목했다. 식물에서 발견되는 폴리페놀 중 하나인 클로로겐산은 장내 미생물에 의해 카페산과 퀴닌산 등으로 광범위하게 대사된다. 이 중 퀴닌산의 대사 산물이 로소니박터 아사카롤리티쿠스 외에 비피도박테리움 아니말리스 등 다른 미생물의 증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 확인되었다.
커피 애호가에게 우리가 잘 모르는 미생물이 8배나 더 있다. 이 문장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연구진은 특정 식품이 장내 미생물의 성장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준 사실을 확인한 데에서 연구의 의의를 찾았다. 오만 ‘바른 먹거리’로 몸속 유익균을 늘리려는 현대인에게 이번 연구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커피조차 장내 미생물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걸음마 단계에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매일 커피 세 잔을 마시며 카페인 중독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다면, 까다로운 이름의 박테리아가 부산히 움직이며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추고 있다고 맘을 달래보면 어떨까.
박테리아 8배! / 커피 맛 좋다!
KISTI의 과학향기
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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