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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맞춤형 인간, X맨이 될까 키메라가 될까
<KISTI의 과학향기> 제2495호 2015년 10월 12일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코린토스 땅에 벨레로폰이라는 영웅이 살았다고 소개한다. 벨레로폰이 옆 나라에 피신해 있던 시절에 왕비가 던져온 추파를 거절했다가 미움을 사는 바람에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게 됐다.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을 닮은 괴물, 키마이라를 처치하라는 명령이었다. 불을 뿜고 다니는 바람에 사람과 곡식에 큰 피해를 주던 존재였다. 벨레로폰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말인 페가수스를 황금고삐로 잡아 길들인 덕분에 키마이라를 처치하고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불을 뿜는 화산을 빗대어 만들어진 괴물인 키마이라는 서로 다른 생물의 특징이 하나의 몸으로 합쳐진 결과물이며, 영어로는 키메라(Chimera)라고 한다. 사람의 상체와 말의 하체가 합쳐진 켄타우로스, 황소의 머리가 사람 몸에 붙은 미노타우로스, 독수리의 상체에 사자의 하체가 붙은 그리피오스도 키메라의 일종이다.

생물학에서 유전자를 조합해 새로운 세포나 동물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키메라로 부른다. 키메라는 생물이 탄생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살필 때 수정란의 일부를 잘라내고 다른 세포를 집어넣어 새로 만들어낸 배아를 가리킨다. 흰쥐의 수정란과 회색쥐의 수정란을 결합하면 얼룩덜룩한 모습의 키메라 마우스가 탄생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키메라는 각 생물의 장점만을 하나로 모은 모습이다. 켄타우로스는 사람처럼 영리하면서 말처럼 빨리 달리고, 미노타우로스는 사람의 팔다리를 가진 동시에 황소처럼 힘이 세다. 그리피오스는 독수리의 날개와 발톱을 가졌으며, 사자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좋은 것만 모아서 약점을 보완하려는 인간의 욕심과 소망이 만들어낸 존재다.
키메라의 전설은 현대에도 멈추지 않는다. 19세기의 소설가 메리 셸리가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대표적이다.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죽은 자의 뼈와 살을 이어 붙여 키 2.4m가 넘는 괴물 인간을 만들어낸다. 혼자 지내던 괴물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여자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박사의 부인을 죽이고 결국 박사와 자신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야기다.
이익이 되는 것만 손에 넣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상형을 말할 때, 탤런트처럼 잘생기고 아버지처럼 자상하고 기업가처럼 돈이 많은 사람을 꿈꾼다. 또한 모델처럼 예쁘고 토끼처럼 착하며 강아지처럼 애교가 많은 상대가 나타나길 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또는 키메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그 끝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전설과 문학 속에서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은 예외 없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내는 연구도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유전자재조합식품(GMO)이 화살을 맞고 있다. 병충해를 이겨내고 생산량을 늘린다는 좋은 뜻으로 만들었지만, 특정 유전자를 조작한 곡물과 생물을 섭취했을 때 장차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한 번 변형이 되면 그 상태로 대대손손 전해지기 때문에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광우병이나 방사능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숫자는 일반 질병에 비해 지극히 적은데도 끊임없이 지적을 받고 경계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키메라 기술은 점점 발전해 이제는 사람의 유전자를 건드리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유전자와 염색체를 아울러 가리키는 게놈(genome)은 특정 생물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지칭해왔지만, 이제는 게놈 수정과 합성 기술이 발달해 마음대로 바꾸고 잘라 붙이는 시대가 됐다. 사람의 일이니만큼 커다란 논쟁과 다툼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의료기술의 발달을 위해 인간의 배아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행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인간 유전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8월 영국은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2017년까지 10만 명의 게놈 지도를 그리는 데 5천억 원의 정부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에는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가 “질병 치료를 위한 게놈 수정 기술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이어 의료자선단체 웰컴 트러스트(Welcome Trust), 의료과학원(AMS), 생명공학연구위원회(BBSRC) 등 영국 내 기관들과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의료계에서는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다. 각국 과학윤리 전문가로 이루어진 힝스턴 그룹(Hinxton Group)은 “인간 배아의 게놈을 조작하는 기술은 생물학과 의학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며 향후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몇몇의 우려 때문에 기술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장기적인 손해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불치병과 난치병으로 인해 인류가 겪는 손해를 계산하면 오히려 게놈 수정 기술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별 유전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면 결국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장차 태어날 아이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도 없이 특정 인생을 강요당해야 하는 일종의 폭력행위와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잇따른다. 원하는 인간을 맞춤형으로 생산해서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SF영화 속 상황이 실제 현실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을 조합해 맞춤형 인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 초능력을 갖춘 영화 엑스맨을 탄생시킬까 아니면, 미움과 박해 끝에 고통으로 사라진 신화 속 키메라를 되살려낼까.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불을 뿜는 화산을 빗대어 만들어진 괴물인 키마이라는 서로 다른 생물의 특징이 하나의 몸으로 합쳐진 결과물이며, 영어로는 키메라(Chimera)라고 한다. 사람의 상체와 말의 하체가 합쳐진 켄타우로스, 황소의 머리가 사람 몸에 붙은 미노타우로스, 독수리의 상체에 사자의 하체가 붙은 그리피오스도 키메라의 일종이다.

사진 1. 에로스를 등에 태운 켄타우로스 (출처: wikipedia)
생물학에서 유전자를 조합해 새로운 세포나 동물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키메라로 부른다. 키메라는 생물이 탄생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살필 때 수정란의 일부를 잘라내고 다른 세포를 집어넣어 새로 만들어낸 배아를 가리킨다. 흰쥐의 수정란과 회색쥐의 수정란을 결합하면 얼룩덜룩한 모습의 키메라 마우스가 탄생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키메라는 각 생물의 장점만을 하나로 모은 모습이다. 켄타우로스는 사람처럼 영리하면서 말처럼 빨리 달리고, 미노타우로스는 사람의 팔다리를 가진 동시에 황소처럼 힘이 세다. 그리피오스는 독수리의 날개와 발톱을 가졌으며, 사자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좋은 것만 모아서 약점을 보완하려는 인간의 욕심과 소망이 만들어낸 존재다.
키메라의 전설은 현대에도 멈추지 않는다. 19세기의 소설가 메리 셸리가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대표적이다.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죽은 자의 뼈와 살을 이어 붙여 키 2.4m가 넘는 괴물 인간을 만들어낸다. 혼자 지내던 괴물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여자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박사의 부인을 죽이고 결국 박사와 자신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야기다.
이익이 되는 것만 손에 넣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상형을 말할 때, 탤런트처럼 잘생기고 아버지처럼 자상하고 기업가처럼 돈이 많은 사람을 꿈꾼다. 또한 모델처럼 예쁘고 토끼처럼 착하며 강아지처럼 애교가 많은 상대가 나타나길 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또는 키메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그 끝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전설과 문학 속에서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은 예외 없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내는 연구도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유전자재조합식품(GMO)이 화살을 맞고 있다. 병충해를 이겨내고 생산량을 늘린다는 좋은 뜻으로 만들었지만, 특정 유전자를 조작한 곡물과 생물을 섭취했을 때 장차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한 번 변형이 되면 그 상태로 대대손손 전해지기 때문에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광우병이나 방사능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숫자는 일반 질병에 비해 지극히 적은데도 끊임없이 지적을 받고 경계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키메라 기술은 점점 발전해 이제는 사람의 유전자를 건드리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유전자와 염색체를 아울러 가리키는 게놈(genome)은 특정 생물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지칭해왔지만, 이제는 게놈 수정과 합성 기술이 발달해 마음대로 바꾸고 잘라 붙이는 시대가 됐다. 사람의 일이니만큼 커다란 논쟁과 다툼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의료기술의 발달을 위해 인간의 배아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행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인간 유전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8월 영국은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2017년까지 10만 명의 게놈 지도를 그리는 데 5천억 원의 정부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에는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가 “질병 치료를 위한 게놈 수정 기술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이어 의료자선단체 웰컴 트러스트(Welcome Trust), 의료과학원(AMS), 생명공학연구위원회(BBSRC) 등 영국 내 기관들과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의료계에서는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다. 각국 과학윤리 전문가로 이루어진 힝스턴 그룹(Hinxton Group)은 “인간 배아의 게놈을 조작하는 기술은 생물학과 의학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며 향후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몇몇의 우려 때문에 기술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장기적인 손해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불치병과 난치병으로 인해 인류가 겪는 손해를 계산하면 오히려 게놈 수정 기술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별 유전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면 결국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장차 태어날 아이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도 없이 특정 인생을 강요당해야 하는 일종의 폭력행위와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잇따른다. 원하는 인간을 맞춤형으로 생산해서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SF영화 속 상황이 실제 현실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을 조합해 맞춤형 인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 초능력을 갖춘 영화 엑스맨을 탄생시킬까 아니면, 미움과 박해 끝에 고통으로 사라진 신화 속 키메라를 되살려낼까.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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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2015-10-17
답글 0
익명이라고 비뚤어진 시각에서 나오는 말 막 뱉어내는 분들 참 많아요 ...
좋은 내용 잘봤습니다 !!
2015-10-15
답글 0
조금은 생소하게 드릴 지도 있지만 인간의 유전자를 합성하여 새로운 형태의 존재를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깊이 경계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생가이 듭니다. 그리고 전설 속의 괴물과 X맨을 그 예로 든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시도를 하는데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잘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10-12
답글 0
엑스맨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는데 제목에 실은 이유는?
저급 기자들처럼 제목으로 낚으려 합니까?
2015-10-12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