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미래에 변전소가 사라지는 이유

<KISTI의 과학향기> 제727호   2008년 03월 03일
올해 초 전봇대가 ‘불필요한 정부 규제’의 상징으로 떠오른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탁상행정의 예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 전봇대는 이틀 만에 뽑혔지만 주변 가로등은 그대로 둬 실제로 도움이 안 됐다는 웃지 못할 후문이 들려온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안전 위험도 있어서 도심에서는 전봇대 대신 지하에 전력케이블을 묻어 사용한다.

전봇대나 전력케이블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이송하기 위한 설비다. 발전소에서는 생산한 전기를 20만~80만V의 초고압으로 바꾼 뒤 초고압선을 통해 각 지역의 변전소로 보낸다. 변전소는 받은 전기의 전압을 대폭 낮춰 가정, 사무실, 공장 등에 보낸다. 가정 근처에 달린 변압기는 다시 전압을 220V로 낮춘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낼 때 초고압으로 바꾸는 이유는 전기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구리는 전기를 잘 통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전기저항을 갖고 있다. 전류가 많이 흐를수록 열이 발생하고, 그만큼 전기 에너지가 손실된다. 전기를 초고압으로 보내면 동일한 전력을 보낼 때 전류의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발전소에서 가정까지 오는 동안 전기의 약 4.3%가 열로 사라진다. 우리나라의 전기 생산 원가로 계산하면 연간 5000억원이나 된다.

이런 이유로 ‘초전도케이블’이 구리선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초전도케이블은 구리 대신 전기저항이 없는 초전도체를 사용한다. 초전도케이블을 쓰면 열로 손실되는 전기가 없어져 전기 생산 비용이 절감된다. 또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낼 때 굳이 초고압으로 바꿀 필요가 없어 변전소와 변압기를 세울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초전도케이블의 장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심의 전력 요구량에 맞춰 전력 케이블을 계속 추가하면서 도심의 지하 공간은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전력 요구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초전도케이블은 기존 구리케이블보다 굵기는 3분의 1에 불과하고, 송전 용량은 5배 이상 크다. 구리케이블이 있던 공간에 초전도케이블을 바꿔 넣는 것만으로 도심의 전력 공급 문제가 해결된다.

초전도케이블의 핵심은 전기를 전송하는 초전도체다. 초전도체는 1911년 네덜란드 레이던대 카멜린 온네스 교수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온네스 교수가 온도를 낮추면서 수은의 전기저항을 측정하자 놀랍게도 영하 267℃에서 수은의 전기저항이 없어졌다. 이렇게 저항이 없어지는 온도를 ‘임계온도’라고 한다. 순수 원소의 경우 납, 주석 등 25종의 원소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났다.

절대온도(영하 273℃)에 가까운 저온에서 초전도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BCS이론으로 설명한다. 도체에는 원자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맘대로 움직이는 ‘자유전자’가 있어 전기가 흐른다. 자유전자들은 움직이다가 서로 충돌하는데 이 때 전기저항이 생긴다. 하지만 절대온도 부근에서 모든 전자는 둘씩 쌍을 지어 움직이기 때문에 전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아 전기저항이 사라진다. BCS이론은 ‘원자들의 진동’이 전자끼리 쌍을 이루게 하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그 뒤로 과학자들은 임계온도가 높은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른 바 ‘고온초전도체’다. 전기저항이 없다는 점은 매력적이었지만 이를 구현하는 온도가 너무 낮아 실생활에 응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주로 금속합금에서 고온초전도체가 발견됐고, 그 뒤로 산화물과 유기물에서도 발견돼 현재 수천 종에 이른다. 이중 산화물 초전도체는 최고 영하 120℃의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현상을 보여 가장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값싼 냉매인 액체질소(영하 196도) 속에서도 초전도 효과를 보인다.

초전도케이블은 ‘매우 긴 진공보온병’처럼 생겼다. 구리심을 중심으로 초전도체가 몇 겹으로 둘러싼 것이 전선 역할을 한다. 이 전선 세 가닥을 다시 견고한 ‘진공보온병’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진공보온병에는 속에는 액체질소가 들어있다. 온도가 올라가면 초전도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에 ‘진공보온병’은 외부와 온도가 완전히 차단돼야 한다. 또 지진, 충격 등으로 파손돼 액체질소가 새 나오지 않도록 설계한다.

미국은 올해부터 뉴욕의 일부 구간에, 일본은 2010년 도쿄의 일부 구간에 초전도케이블을 설치해 시험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기연구원 초전도기기연구그룹이 LS전선(주)과 공동으로 초전도케이블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해 국제 공인 시험에 통과했고, 올해에는 송전망에 직접 투입해 성능을 시험할 예정이다. 미국과 일본보다 10년 늦게 초전도케이블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현재 거의 대등한 기술 수준에 와 있다고 한다.

꿈의 기술이었던 초전도기술이 우리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수년 내에 초전도케이블이 상용화되면 거추장스러웠던 전봇대를 비롯해 지금까지 사용하던 송전설비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고품질의 전기를 더욱 싸고 풍부하게 공급받을 수 있다. 초전도기술이 바꿀 미래를 기대해 보자.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평가하기
김용우
  • 평점   별 5점

무손실이...실용화만된다면 대박이네요, 과학 향기를 통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지식을 얻어가네요 고맙습니다~!^^

2009-04-09

답글 0

김사무
  • 평점   별 5점

가장 큰 온도변화의 요인인 공기를 뺀다고 써놨네요^^ 진공으로 하면 공기 중 열 전달도 안되겠죠:

2008-06-27

답글 0

이코프스키
  • 평점   별 5점

액체질소의 경우 밀폐된곳에 있으면 온도가 올라가지 않습니까?

2008-04-22

답글 0

gkstoa
  • 평점   별 5점

앞으로는 연료전지가 대세여 일본에서는 가정에서도 실용화 단계랍니다

2008-03-09

답글 0

조전욱
  • 평점   별 5점

안녕하십니까? 본 초전도케이블 개발 총괄 책임자입니다. 물론 현재 초전도케이블 자체만의 가격은 현재 사용중인 구리케이블보다 비쌉니다. 그러나 초전도케이블은 크기가 같은 용량기준으로 비교하면 기존케이블의 1/5 이하 수준으로 이미 설치 된 기존의 관로(케이블 설치용 구조물)나 전력구(지하턴널)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시설비가 획기적으로 절감됩니다. 따라서 그 경제적인 효과는 엄청납니다.
지금은 초전도케이블은 연구단계에서 실용화 직전까지 다가와있읍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기술수준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3-06

답글 0

주남식
  • 평점   별 5점

미래에는 변전소 뿐만 아니라 발전소도 사라집니다.
공기발전기가 필요한 곳에서 싼 값으로 직접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http://home.freechal.com/airengine/03/1/30473431
공기엔진발전시의 부산물인 액체질소를 이용하면 발전기자체도 초전도코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http://home.freechal.com/airengine/03/1/29648543

2008-03-04

답글 0

흐음
  • 평점   별 5점

구리선을 쓰는 이유. -_-;; 다른무엇보다도 경제적인측면을 고려해서 인데. 힘들어보입니다. 한두구간이야 실험적 시범케이스로 가능하다고해도. 더군다나 지중식이라면 매설비까지. 공학이라는건 어디까지나 경제적인부분까지의 포함입니다. 바짝 다가온것과 현실로 적용되어 바뀌는 차이는 명백할것입니다.

2008-03-04

답글 0

세죠위그이
  • 평점   별 4점

글쎄요. 님// 본문을 읽어보니, 설계 특성상 일반 전선처럼 공중부양을 힘들것 같네요. ^^; 아마 지중화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사 잘 봤습니다. :)

2008-03-04

답글 0

차순천
  • 평점   별 5점

좋은정보입니다.

2008-03-04

답글 0

과학싫어
  • 평점   별 3점

설비비가 엄청나게 들어도 꼭 필요한 거 같아요. 하숙가 같은데 보면 꼬인 전선들이 너무 보기 싫습니다. 초전도케이블 설치되면 보기에도 깔끔하고 전력 집중도 피할 수 있을 것 같고 좋겠네요. 전력이 공유가 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2008-03-04

답글 0

제천이
  • 평점   별 5점

와우-멋집니다. 초전도기술로 구리선을 초전도케이블로 바꾸게 된다면 2층버스도 다닐수 있을테고, 돈도 아낄수있을테고,,물리시간에 변전소에대해 배우지 않아도 되겠군요!!와우!!

2008-03-03

답글 0

초전도체
  • 평점   별 5점

규담님 ^-^; 상업적으로 접근하시려면 여기서 물어보셔야 소용이 없지요;;
변전소는 없어지진 않겠지만,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겠지요..
멀리보내기위해서 고압으로 전송하던걸 이젠 훨씬 낮춰서 사용할수 있으니
많이 장비나 설비가 줄어들고 효율적으로 바뀔겁니다.
기존 고압을 다루는것보다는 훨씬 편해질테니까요.
시대가 점점 진보하네요 ^_^

2008-03-03

답글 0

스코필두
  • 평점   별 5점

변전소는 배전도 같이 겸하고 있기 때문에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케이블을 교체한다면 전류는 더 많이 흘릴 수 있겠지만 그것들을 중앙 전력구에서 모두 제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변전소는 기능이 줄어들 뿐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2008-03-03

답글 0

글쎄요.
  • 평점   별 1점

전봇대는 배전설비고 초전도케이블은 송전설비로 사용되어질텐데..
변전소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해가 되도..전봇대는..

2008-03-03

답글 0

parkyc70
  • 평점   별 5점

전기저항이 없는 초전도케이블을 사용한다면 굳이 지금처럼 220V의 높은 전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과거에는 100V 전압의 전기를 사용했는데, 이 비용 아끼겠다고 사람이야 위험하건 말건 220V로 승압했잖아요. 그럼 미래에는 일반 가정의 전기 전압이 10V 안팎의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낮아도 기존 전자제품을 다 못쓰게 되는 일이 생기겠네.

2008-03-03

답글 0

이규담
  • 평점   별 3점

초전도체 Cable 은 그 값과 수명이 사업성 검토의 주요항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관련한 필자의 좀 더 현실적 Data 를 얻고 싶습니다. 또, 기술적으로 발전소의 전압과 그 변동성이 가전기기에서 허용될 수 있는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2008-03-03

답글 0

ㅋㅋㅋ
  • 평점   별 5점

초전도케이블 전선 뜯어가는 순간 얼어죽는 거다~~~
전선을 안전하게 뜯어갔다해도 구리선밖에 더 쓰겠어~ 질소갔다가 모하게...ㅋㅋ

2008-03-03

답글 0

홍길동
  • 평점   별 5점

문제는 돈이 된다면 전선도 뜯어가는 몰지각한 사람들이죠. 분명 m당 단가가 매우 클텐데, 좀도둑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죠. 구더기 무서워서 장못담근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구더기 때문에 수십만명이 전력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간과 못하지요.

2008-03-03

답글 0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쿠키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이거나 브라우저 설정에서 쿠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 사이트의 일부 기능(로그인 등)을 이용할 수 없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일링 구독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