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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로봇의 진화
<KISTI의 과학향기> 제3227호 2018년 10월 08일동‧서양을 대표하는 의학자인 ‘허준’과 ‘다빈치’가 병원 수술실에서 함께 수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물론 실제 인물들이 수술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허준과 다빈치의 이름을 딴 수술 로봇들이다.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수술 분야에도 어느덧 로봇이 참여하는 시대가 열렸다. 디지털 기술과 첨단 메카닉스(mechanics)의 융합으로 로봇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제 의료 분야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수술 로봇의 대중화를 연 다빈치
수술 로봇이 탄생한 시기는 1990년대이지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수술용 로봇인 ‘다빈치(Da Vinci)’를 미국의 인튜이티브서지컬(Intuitive Surgical)社가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
다빈치 로봇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개복 수술처럼 몸에 커다란 상처를 내지 않고도 정확하게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몸에 서너 개의 구멍을 뚫은 다음, 각종 수술 도구를 집어넣어 환부를 치료하므로 회복도 기존 수술보다 훨씬 빨랐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다빈치 로봇을 이용하면 수술 부위를 최대 15배나 크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의 정교함도 5배 이상 높아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이 손으로 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수술도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후 다빈치는 수술 로봇의 대명사처럼 통하기 시작하며, 세계 수술로봇 시장의 80%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심장 판막과 같은 난이도가 높은 수술의 경우 다빈치 로봇을 투입하는 것이 보편적 상황이 됐다.
사진 1. 수술로봇 다빈치의 수술 시연 모습. (출처: wikipedia)
이처럼 다빈치 로봇을 이용한 수술이 날로 확대되고 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복부를 절개하는 것이 아니라 구멍을 뚫어 수술을 하는 방법이지만, 이마저도 거부감을 갖고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들어서는 수술 자국을 완전히 남기지 않는 방법인 ‘무흉터 내시경 수술(Natural Orifice Transluminal Endoscopic Surgery)’이 주목 받고 있다. 앞 철자를 따서 일명 ‘노트(NOTES)’로도 불리는 이 수술 방법은 신체 표면에 어떤 수술 자국도 만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수술 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복부를 절개하거나 천공을 하는 대신에 식도나 대장으로 수술 기능을 갖춘 내시경 장비를 넣기 때문이다. 식도나 대장으로 들어간 장비는 위벽이나 대장 벽에 구멍을 뚫고 췌장이나 간 등을 수술한다. 때로는 기관지나 식도를 뚫은 채 폐나 심장을 수술할 때도 있다.
따라서 노트 수술은 신체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상처를 내서 수술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신체 내의 장기에 상처를 만드는 것인 만큼 수술 전에 충분히 후유증을 고려해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진 2. 노트 수술의 개념도. (출처: imperiul.ac.uk)
닥터 허준은 국내 기술로 만든 비수술 로봇
노트 수술은 장기에 상처를 내는 방법이라서 수술이 어렵고 성공률도 낮다. 따라서 현재는 일부 국가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찬․반 논쟁도 팽팽한 편이다.
노트 수술을 반대하는 의사들은 “췌장을 치료하기 위해 위벽에 상처를 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찬성하는 일부 의료진들은 “신체 내에 상처를 내는 것이라서 감염 위험이 적고, 회복도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트 수술의 성공률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수술용 로봇을 국내 연구진이 최근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KAIST 미래의료로봇연구단이 개발한 내시경 수술로봇인 케이-플렉스(K-Flex)가 바로 그것.
K-Flex는 기존 수술로봇과는 달리 신체 내 장기 사이를 피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장기에 상처를 낼 필요가 없다. 연구진은 이 로봇으로 살아있는 돼지의 담낭을 절제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래의료로봇연구단의 한 관계자는 “현재 세계적 연구기관들이 유연하게 움직이는 수술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지만 K-Flex는 내시경 굵기가 더 얇으면서도 힘은 2배나 강해서 실용화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히며 “노트 수술에 적용할 수 있는 차세대 로봇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의료로봇연구단에서도 K-Flex처럼 자국을 남기지 않고 수술을 할 수 있는 로봇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시대의 명의(名醫)였던 허준의 이름을 딴 ‘닥터 허준’으로서, 이 수술 로봇은 주로 비수술 척추 치료나 뇌하수체 종양 제거 등에 활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사진 3. 수술로봇 닥터 허준의 시연 모습. (출처: KIST)
닥터 허준을 사용하면 비수술 척추 치료 수술의 경우 허리뼈에 직접 칼을 대지 않고 가는 관을 엉덩이 부위에서 척추 사이에 밀어 넣어 치료할 수 있다. 또한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의 경우는 코 안으로 관을 들여보내 두개골에 위치한 종양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때문에 별도의 수술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이상과 같이 수술 로봇들에 대해 조사하다보니 멀지 않은 미래의 수술실에는 사람이 아닌 로봇만이 수술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조만간 닥칠 병원의 미래상인 점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미래상에 긴장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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