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인터넷과 디카, 노벨물리학상을 받다

<KISTI의 과학향기> 제1000호   2009년 10월 26일
해마다 10월이면 전 세계의 이목이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 집중된다.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경제학 이렇게 한 분야씩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세계는 들썩거린다. 그런데 여섯 분야 중 보통 사람들이 가장 멀게 느끼는 분야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물리학이라고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노벨물리학상의 수상업적은 범인(凡人)에게는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난해하고 복잡한 이론이거나 실험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 이론이나 실험이라는 게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몰라도 그만인 것이지 않는가. 그래서였을까. 올해 노벨상수상위원회는 노벨물리학상다운(?) 업적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너무나도 친근한 분야에 상을 수여했다.

인터넷 광통신과 디지털카메라(간단히 디카라고 하자). 두 가지가 없다고 상상하면 아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이 둘은 오늘날 정보기술(IT) 세상에서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바로 이 두 가지에 대한 핵심원천기술을 개발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그 주인공은 영국 스탠더드텔레콤의 찰스 가오 박사(76)와 미국 벨연구소의 윌러드 보일 박사(85), 조지 스미스 박사(79) 등 세 명이다. 가오 박사는 인터넷 광통신의 핵심기술인 광섬유를 개발한 업적으로, 보일 박사와 스미스 박사는 필름이 없어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카의 핵심기술인 ‘전하결합소자(CCD)’을 발명한 공로로 이번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올 노벨물리학상은 수상자들이 40여 년 전에 이룩한 업적이었다. 사진은 1960년대 젊은 과학
자였던 찰스 가오 박사가 광섬유에 대한 초기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Copyright ? 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광섬유의 원리는 전반사이고 CCD의 원리는 광전효과로, 이들은 이미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오는 원리이다. 그러니까 올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신의 영역이었던 ‘빛’을 인간의 이해 영역으로 끌어내린 ‘빛의 마스터’들이다. 그렇다면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언제 어떻게 업적을 세운 것일까. 그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 1월 중국계 영국인 가오 박사는 광섬유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것은 광섬유의 발명은 아니었다. 광섬유는 이미 1930년대부터 환자의 위나 치과치료 중에 치아를 들여다보는 용도로 의료분야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쓰인 광섬유는 짧고 단순했다.

광섬유는 이론적으로는 매우 간단하다. 굴절률이 높은 매질에서 굴절률이 낮은 매질로 빛을 비출 때 어느 각도 이상이 되면 더 이상 굴절을 하지 않고 모두 다 반사되는 전반사가 일어난다. 광섬유는 전반사의 원리를 통해 빛을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먼 곳까지 정보를 전달해준다.

초기에 광섬유는 이론처럼 성능이 좋지 않았다. 1960년대 가오 박사가 광섬유 연구를 시작했던 당시만 해도 광섬유를 통과한 빛은 20m만 가도 1%밖에 남지 않았다. 가오 박사는 1km를 지나갈 때 1%의 빛이 남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1966년에 광섬유에 쓰이는 유리의 투명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광섬유에 적합한 유리는 당시까지 만들어진 어느 유리보다 투명해야 했던 것이다.

가오 박사가 원하는 정도의 광섬유를 뽑을 수 있었던 건 1971년이 돼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리 제조사인 코닝사의 과학자들이 가오 박사의 제안에 따라 1km에 달하는 광섬유를 뽑아냈다.

오늘날의 광섬유는 1km를 가도 95%의 빛이 남을 정도로 가오 박사의 목표를 크게 추월했다. 이런 광섬유가 오늘날 지구를 무려 2만 5천 번이나 감을 수 있는 정도로 세계 곳곳에 깔려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세계 어디서나 빛의 속도로 정보를 접하고 산다. 참고로 가오 박사는 물리학이 아니라 전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카의 핵심기술인 CCD가 개발된 것도 1960년대였다. 1969년 9월 어느 날, 벨연구소의 물리학자 보일 박사와 스미스 박사는 보일 박사의 사무실에서 칠판에 CCD에 대한 기초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당시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건 디카의 이미지센서가 아니라 이전보다 나은 전자메모리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근무하는 벨연구소로부터 새로운 메모리 기술을 개발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보일 박사와 스미스 박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CCD의 용도를 이미징 기술에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냈다.

CCD는 우표만한 크기의 네모 판으로 그 위에는 수많은 광센서들이 들어있다. 디카에서 몇백만 화소라는 말을 하는데 화소 수가 많을수록 사진의 화질이 좋다. 화소 수는 바로 광센서인데, 예를 들어 400만 화소라면 400만 개의 광센서가 CCD에 붙어 있는 것이다.

<왼쪽 사진에서는 벨연구소의 물리학자 윌러드 보일 박사(왼쪽)와 조지 스미스 박사(오른쪽)
가 CCD를 장착한 비디오카메라의 성능을 확인하고 있다. 1974년에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보일 박사와 스미스 박사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초창기 CCD 이미지 센서. 오늘날
디카는 물론 비디오카메라에 핵심적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제공. 박미용.>

CCD의 원리는 1921년 아인슈타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겨준 광전효과다. 광전효과는 금속이나 반도체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CCD는 광전효과를 이용해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어준다. CCD가 빛 알갱이를 전자로, 즉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것이다. 이 전자에 대한 정보를 메모리 반도체에 기록하면 사진 파일이 된다.

보일 박사와 스미스 박사가 개발한 CCD는 금세 이미지센서로서 장점이 드러났다. 그래서 발명 1년 후, 그들은 자신의 비디오카메라에 최초로 CCD를 장착했다. 1981년에는 CCD가 들어간 디지털카메라가 최초로 시장에 나왔다. 이후 해상도가 높아지고 소형화되면서 오늘날에는 필름카메라를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게 하고 있다.

CCD는 오늘날 천문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예가 바로 미 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이다. 1980년대 개발된 허블우주망원경은 CCD를 이용한 덕분에 1990년 발사 이후 우리에게 지상에서 얻을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을 보여줬다. 올 3월 태양계 바깥 지구형 행성을 탐색할 목적으로 발사된 NASA의 케플러우주망원경에도 디지털이미지 기술이 적극 활용됐다. CCD는 우주뿐 아니라 심해 바닥에서도 관측기구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의 마지막 조건은 과학기술의 ‘상용화’ 라고 한다. 기초과학의 혁신이 낳은 기술이 상용화 되고, 그런 기술이 또다시 과학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한 과학과 기술은 서로 맞물려 끝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것은 아닐까?

글 : 박미용 과학칼럼니스트


KISTI NDSL(과학기술정보통합서비스) 지식링크


○관련 논문 정보
광자결정 광섬유와 단일모드 광섬유 저손실 융착접속[바로가기]
Digital Image Processing of CCD Measuring Temperature Field in Coaxial Powder Stream of Laser Cladding[바로가기]
투명 에폭시와 광섬유를 이용한 방사선량 측정용 유기섬광체 센서 개발[바로가기]

○관련 특허 정보
광케이블(한국공개특허)[바로가기]
이미지 센서(한국공개특허)[바로가기]
CCD형이미지센서(한국등록특허)[바로가기]

○해외 동향분석 자료
디지털 카메라의 기능과 신호처리 - 2007년 [바로가기]
광자결정 광섬유의 저손실화 기술 동향 - 2006년 [바로가기]
CCD와 CMOS 이미지센서의 장점을 겸비한 MOS 이미지센서 - 2008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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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보리
  • 평점   별 5점

<기초 중요, 응용 귀중> <기초 수고로움, 응용 즐거움> <기초 돈내고, 응용 돈되고>
이제 좀 눈이 띄는갑다. 과학의 발명은 대개 젊은 머리에서 나오는데 왜 수상자들은
실버 머리들인가 하였거든요. 실제 증명되고 일상화되고 상용화의 결과가 확실할 때
상이란 게 주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노벨평화상을 현직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건 당장 폐지해야 하지 않겠나?

2009-11-13

답글 0

이타미
  • 평점   별 5점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래도 과학은 동시대에 한사람이 인생을 사는동안은 보상받을수 있는 학문인거 같다.

2009-10-28

답글 0

이태욱
  • 평점   별 5점

인터넷과 디카...노벨물리학상을 받을만 하지요...!

2009-10-27

답글 0

서미애
  • 평점   별 5점

참으로 과학의 힘이란....정말...대단...그리고...

2009-10-27

답글 0

김유상
  • 평점   별 5점

과학을 과학으로 풀어내지않고 이론을 이론에서 멈추지않게 함으로써 생활속에서 물리학을 접할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학문.. 파괴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시금 날아오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9-10-26

답글 0

dmg02108
  • 평점   별 5점

인터넷과 디카의 창시자(?)를 알게되는 계기가 된것 같습니다..^-^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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