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죽인 후 살리는 수술법, 성공하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499호   2020년 01월 27일
‘가사(假死)’.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가사는 ‘생리적 기능이 약화되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상태. 정신을 잃고 호흡과 맥박이 거의 멎은 상태이나, 동공 반사만은 유지되므로 죽은 것이 아니며 인공호흡으로 살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적합한 처치가 있다면 살려낼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의료계에서는 SF에 나오는 것처럼 환자를 인공 동면 상태, 즉 가사상태로 만들어 수술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가사상태 수술법은 아주 깊은 외상을 입은 환자에게 효과적이다. 수술 중에서 계속되는 환자의 신진대사를 잠깐 멈추고 재빨리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면 살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가사상태 수술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리다
 
2002년에 미국 미시건주립대학교 연구팀은 돼지를 이용해 가사상태 수술을 시험했다. 연구팀은 심장에 상처를 입은 돼지의 혈액을 빼낸 뒤 생리식염수를 주입해 체온을 10℃로 내외로 유지하도록 했다. 그 후 수술을 진행한 뒤 생리식염수를 다시 빼내고 원래의 혈액을 주입했다. 그러자 돼지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혈액을 빼고 생리식염수를 채우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산소를 필요로 하는 혈액세포의 활동을 멈추게 해 신진대사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과연 이런 방법이 인간에게도 통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지난 2019년 11월 역시 미국 메릴랜드대학 의료진이 처음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를 가사상태로 만들어 수술한 다음, 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중상을 입고 심장이 정지된 환자의 대동맥에 냉각된 생리식염수를 주입했다. 냉각된 생리식염수를 넣으면 환자의 체온은 섭씨 37℃에서 10~15℃로 떨어진다.
 
이런 방법은 과거에 시행했던 동물대상실험과 똑같은 이유에서 시행됐다. 혈액은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데, 총이나 칼에 의해 중상을 입은 환자는 심한 출혈이나 심정지로 몸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는다. 5분 이상 산소 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환자는 결국 사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려 세포의 활동을 늦추거나 멈추면 산소를 소비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뇌에 일어나는 손상을 막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환자를 가사상태로 만들어 놓고 2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마치고 다시 혈액을 주입해 환자를 살리는 쾌거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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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F에 나오는 것처럼 환자를 저온의 가사상태로 만든 뒤 수술해 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출처: shutterstock)
 
더 많은 연구로 생명을 살릴 것
 
현재 이렇게 냉각 생리식염수를 주입해 인위적으로 저체온을 만드는 수술법을 ‘응급 보전 및 소생(Emergency Preservation and Resuscitation, EPR)이라고 한다. 메릴랜드 연구팀은 이번 수술 성공에 힙입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하에 연구팀은 EPR을 받는 10명과 EPR을 받을 수 있지만 받지 않은 10명과 비교하는 임상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EPR이 보편화된다면 심장마비, 깊은 총상을 입은 부상자, 교통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 등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들에게 뇌 손상 없이 치료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일단 사람의 체온을 급격히 낮추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게다가 다시 혈액을 주입해 체온이 올라가면서 우리가 모르는 손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투쟁하는 과학자들은 결국에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글: 이병호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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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환
  • 평점   별 5점

잘 읽어 보았고 의학의 쾌거라고 불릴 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와 생각은 다르지만 좋은 결과가 앞으로 더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평화를 빕니다. 아멘.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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