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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 지문, 모기 피…동물과 과학수사
<KISTI의 과학향기> 제3275호 2018년 12월 31일어느 범죄 현장에서 법망에 등록되지 않은 지문이 발견됐다. 수사관은 지문 덕분에 금방 범인을 찾을 거라 의기양양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며 채취한 지문은 하나같이 다 불일치한다. 수사관은 결국 용의자도 찾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다. "도대체 이 지문을 가진 사람은 누구지?" 그럴 수밖에. 지문의 주인공은 바로 코알라이기 때문이다.
코알라 지문, 범죄 수사에 혼동을 줄 만큼 비슷해
지문은 인간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코알라 역시 인간과 아주 비슷한 모양의 지문을 갖고 있다. 인간과 침팬지는 계통적으로 가까운 친척이니까 이해가 간다. 한데 육아주머니를 가진 유대류로 진화의 나뭇가지에서 우리와 멀리 떨어진 코알라는 어떻게 지문을 갖게 됐을까? 계통 관계가 먼 두 종에서 독립적으로 지문이 발달했다는 사실은 지문이 생존과 번식에서 특별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학자들은 영장류 지문의 진화를 놓고 다양한 가설을 제시했다. 하나는 지문이 손과 물체 사이의 마찰력을 높여 물체를 단단히 잡게 돕는다는 것이다. 도구를 만들어 쓰는 우리 조상에게는 물건이 미끄러지지 않게 꽉 잡게 돕는 지문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또 다른 가설은 지문이 손의 촉각을 예민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지문에 있는 반복되는 골과 무늬는 감촉을 증폭해 사물의 질감을 잘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은 손으로 외부 세상의 사물을 만지며 그 특성을 파악했을 수 있다. 아기가 장난감을 이리저리 만지고 굴리고 던지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아기는 촉감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코알라가 가진 지문의 기능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된다. 지문의 발달이 촉각을 민감하게 해 유칼립투스 잎을 따먹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 코알라는 오로지 유칼립투스 나무만 먹는다. 그렇지만 식성이 까다로워 유칼립투스라도 아무 잎이나 먹지는 않는다. 독성이 적고 마음에 꼭 들게 익은 잎만을 골라 먹는다. 정교한 손끝 감각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듯 코알라의 지문이 인간과 모양도 기능도 비슷한 탓에 범죄 현장에서 혼선을 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지문을 다루는 범죄학 교과서에서는 인간과 코알라의 지문을 비교 분석하는 장이 있다. 또 호주,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코알라뿐만 아니라 침팬지, 원숭이의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해 혹시나 있을지 모를 실수를 예방하고자 한다.
범죄 수사에 도움을 주는 자연이라는 데이터베이스
동물이 범죄 수사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우리가 증오해 마지 않는 모기가 말이다. 흡혈을 마친 모기는 가까운 곳 어딘가에 붙어서 부른 배를 잠재우는 특성이 있다. 만약 범죄 현장에서 모기가 용의자의 피를 빨고 그 자리에 남아 있다면 이 모기를 채집해 용의자의 DNA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05년 이탈리아에서는 흡혈 모기가 목은 피의 DNA를 분석해 해안가에서 여성을 살해한 범인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현재 과학수사 연구자들은 모기 이외에도 벼룩, 이, 진드기 등 피를 빠는 동물을 통해 DNA를 채취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일상에 밀접한 작은 벌레들을 이용하면 현장에서 지문을 감식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다.
모기가 범인을 잡는 데 일조한다면, 시체에 출현하는 파리나 딱정벌레 등은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뿐만 아니다. 계절과 지대에 따라 달리 발견되는 식물의 종자나 꽃가루가 수사에 생각지 않은 힌트를 주는 경우도 있다. 해양사건의 경우 익사자의 몸에서 검출되는 플랑크톤이 사망 시점의 사건을 추정하는 열쇠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의 수사 활동에 관여하며 때로는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앞으로도 자연이라는 데이터베이스를 꾸준히 축적하면 과학 수사에 커다란 진보가 있지 않을까.
글: 정한시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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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는 인간과 지문이 거의 흡사하다는건 알고있었는데 코알라도 그렇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또 하난 얻어갑니다. 감사~~~~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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