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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가야금 선율 속에 녹아있는 과학의 소리
<KISTI의 과학향기> 제521호 2006년 11월 08일
“와~ 이게 광고 맞아?”
깔끔하게 빗어올린 앞머리, 검정색 정장 차림의 단아한 용모. 흐릿한 조명 밑 그녀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단박에 스크린에 묶어 놓는다. 곧이어 울려 펴지는 청아한 가야금 소리. 그녀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가야금 선율은 감각적 영상과 어울려 ‘작품’이 된다.
지난 9월께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모 아파트 극장용 광고의 한 장면이다. 각 포털 사이트엔 이 광고 동영상을 구한다는 네티즌들의 요청이 지금도 쇄도하고 있다. 감각적 영상도 눈에 띄지만 가야금 소리가 좋다는 게 이유다. 이 광고의 또 다른 볼거리인 비보이들의 현란한 춤사위도 가야금 소리를 배경으로 한다. ‘가야금 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을 수 있구나’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이 광고를 보면 절로 든다.
가야금이 이처럼 ‘인기 스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현을 떠난 파동이 악기 내부에서 적절히 소멸, 전달, 방출되면서 제대로 된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특성은 가야금뿐만 아니라 거문고 등 다른 국악기에서도 관찰된다. 좋은 현악기라면 갖춰야 할 특성이 국악기에 담겨 있다는 얘기다. 자, 이제부터 국악기의 비밀을 찬찬히 살펴보자.
가야금과 거문고 소리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현과 악기의 몸체에 해당하는 울림통이 똑같은 주파수 대역에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현악기가 사람이 듣기 좋은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선 현과 울림통이 같은 주파수에서 떨려야 하는데, 가야금과 거문고는 이 같은 특성을 정확히 갖추고 있다.
서울대 뉴미디어 통신공동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가야금에 대한 실험은 이 같은 ‘아름다운’ 음색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울림통 위에 분말을 뿌린 후 주파수를 달리해 진동을 가하는 ‘클라드니 도형’ 실험을 한 것이다. 실험 결과, 현에서 생기는 주파수인 10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떨렸지만 현이 만들지 않는 주파수인 8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현이 떨릴 때 울림통도 같이 떨려야 한다는 ‘고운 소리의 비결’이 눈으로 입증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울림통 재료로 쓰는 나무의 세포 구조가 독특하다. 서양악기들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재료가 되는 오동나무의 세포 구조는 매우 성글다. 오동나무의 상피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의 벽이 얇고 유연한 것을 알 수 있다. 비중도 0.35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바이올린의 재료인 가문비나무는 규칙적이며 촘촘한 세포 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현악기에 비해 음색이 날카롭다. 완전히 상이한 성질의 밭에서 자라는 작물의 성질이 다르듯 전통 현악기와 외국 현악기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또 울림통 재료가 되는 나무 무늬의 형태도 소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좋은 가야금과 거문고는 일반적으로 국수무늬(일자무늬) 목재를 사용한 울림통을 갖고 있다. 국수무늬는 늙은 나무의 중심부를 긁어낸 목재가 아래로 쭉쭉 뻗은 무늬를 갖고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중심부의 늙은 나무 층을 제거하면 연주된 음이 소멸되지 않고 대부분 반사되기 때문에 공명 현상이 극대화된다. 소리가 증폭되면서 듣기 좋고 풍부한 연주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울림통 외부에 페인트처럼 옻칠을 하는 것도 좋은 소리의 비결이다. 학계에서는 옻칠의 방법에 대한 논문이 나올 정도다. 옻칠이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방증이다. 서양 악기에서 쓰이는 니스칠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옻칠은 전통 현악기를 공기와 습기에서 보호한다. 처음과 같은 수준의 나무 품질이 유지되기 때문에 소리도 좋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 현악기들은 정밀한 과학적 원리에 근거해 제작됐다. 울림통 구조, 재료가 되는 나무의 세포 형태, 국수무늬, 옻칠 등이 어울려 ‘명금’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 같은 전통 현악기들은 대개 1500년 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주파수를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전통 악기는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 지식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대목이다.
팁 하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극장용 광고에 등장한 가야금은 25현이다. 12현인 전통 가야금을 개량한 것. 저음역과 고음역을 풍부하게 낼 수 있기 때문에 팝송이나 뉴에이지 음악도 어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다. 전통 악기가 재해석하는 현대의 소리에 경외감을 느낀다. (글 : 이정호 과학전문 기자)
깔끔하게 빗어올린 앞머리, 검정색 정장 차림의 단아한 용모. 흐릿한 조명 밑 그녀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단박에 스크린에 묶어 놓는다. 곧이어 울려 펴지는 청아한 가야금 소리. 그녀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가야금 선율은 감각적 영상과 어울려 ‘작품’이 된다.
지난 9월께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모 아파트 극장용 광고의 한 장면이다. 각 포털 사이트엔 이 광고 동영상을 구한다는 네티즌들의 요청이 지금도 쇄도하고 있다. 감각적 영상도 눈에 띄지만 가야금 소리가 좋다는 게 이유다. 이 광고의 또 다른 볼거리인 비보이들의 현란한 춤사위도 가야금 소리를 배경으로 한다. ‘가야금 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을 수 있구나’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이 광고를 보면 절로 든다.
가야금이 이처럼 ‘인기 스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현을 떠난 파동이 악기 내부에서 적절히 소멸, 전달, 방출되면서 제대로 된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특성은 가야금뿐만 아니라 거문고 등 다른 국악기에서도 관찰된다. 좋은 현악기라면 갖춰야 할 특성이 국악기에 담겨 있다는 얘기다. 자, 이제부터 국악기의 비밀을 찬찬히 살펴보자.
가야금과 거문고 소리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현과 악기의 몸체에 해당하는 울림통이 똑같은 주파수 대역에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현악기가 사람이 듣기 좋은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선 현과 울림통이 같은 주파수에서 떨려야 하는데, 가야금과 거문고는 이 같은 특성을 정확히 갖추고 있다.
서울대 뉴미디어 통신공동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가야금에 대한 실험은 이 같은 ‘아름다운’ 음색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울림통 위에 분말을 뿌린 후 주파수를 달리해 진동을 가하는 ‘클라드니 도형’ 실험을 한 것이다. 실험 결과, 현에서 생기는 주파수인 10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떨렸지만 현이 만들지 않는 주파수인 8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현이 떨릴 때 울림통도 같이 떨려야 한다는 ‘고운 소리의 비결’이 눈으로 입증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울림통 재료로 쓰는 나무의 세포 구조가 독특하다. 서양악기들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재료가 되는 오동나무의 세포 구조는 매우 성글다. 오동나무의 상피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의 벽이 얇고 유연한 것을 알 수 있다. 비중도 0.35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바이올린의 재료인 가문비나무는 규칙적이며 촘촘한 세포 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현악기에 비해 음색이 날카롭다. 완전히 상이한 성질의 밭에서 자라는 작물의 성질이 다르듯 전통 현악기와 외국 현악기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또 울림통 재료가 되는 나무 무늬의 형태도 소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좋은 가야금과 거문고는 일반적으로 국수무늬(일자무늬) 목재를 사용한 울림통을 갖고 있다. 국수무늬는 늙은 나무의 중심부를 긁어낸 목재가 아래로 쭉쭉 뻗은 무늬를 갖고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중심부의 늙은 나무 층을 제거하면 연주된 음이 소멸되지 않고 대부분 반사되기 때문에 공명 현상이 극대화된다. 소리가 증폭되면서 듣기 좋고 풍부한 연주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울림통 외부에 페인트처럼 옻칠을 하는 것도 좋은 소리의 비결이다. 학계에서는 옻칠의 방법에 대한 논문이 나올 정도다. 옻칠이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방증이다. 서양 악기에서 쓰이는 니스칠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옻칠은 전통 현악기를 공기와 습기에서 보호한다. 처음과 같은 수준의 나무 품질이 유지되기 때문에 소리도 좋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 현악기들은 정밀한 과학적 원리에 근거해 제작됐다. 울림통 구조, 재료가 되는 나무의 세포 형태, 국수무늬, 옻칠 등이 어울려 ‘명금’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 같은 전통 현악기들은 대개 1500년 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주파수를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전통 악기는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 지식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대목이다.
팁 하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극장용 광고에 등장한 가야금은 25현이다. 12현인 전통 가야금을 개량한 것. 저음역과 고음역을 풍부하게 낼 수 있기 때문에 팝송이나 뉴에이지 음악도 어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다. 전통 악기가 재해석하는 현대의 소리에 경외감을 느낀다. (글 : 이정호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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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aelim-apt.co.kr/b_info/publicity_ad.jsp#
2006-12-10
답글 0
다연히 옛 선조들이 그걸 알고 만드셨을 리는 없고, 지금 우리가 분석해 보니 '과학적이더라~'는 거겠죠.
2006-11-09
답글 0
그 광고가 이것이었죠?
비보이 Last for one / 가야금 숙명여대가야금연주단
http://daelim-apt.co.kr/dsa/ecinema/microbboy
2006-11-09
답글 0
글쎄요...옛 선조들이 거문고, 가야금 만들실때...저런 과학적 원리들 알고 만드셨을지...??/
2006-11-09
답글 0
저도 옻나무의 비밀에 관해 궁금한점이 무척 많네요.
2006-11-08
답글 0
갑자기 옻칠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데...
기회가 된다면 옻칠의 과학에 대해서도 한 번 다뤄주셨으면...
2006-11-08
답글 0
"주파수를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전통 악기는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
주파수를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귀로 듣고 판별해 내는 것입니다. 과학수준이 높은 게 아니라 음악 수준이 높았던 것이지요.
2006-11-08
답글 0
좋은 정보네요. 가야금 소리가 좋은 이유가 이렇게나 많다니 ^^
2006-11-08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