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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백해무익? 게임으로 과학에 기여하다!
<KISTI의 과학향기> 제1589호 2012년 04월 23일
게임은 언제나 사회적 논란거리다. 여성가족부는 2011년 5월부터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도입해 게임 시간을 규제하려 하고 있고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학교 폭력 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은 게임의 유해함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기사를 줄줄이 낸다. 게임이 학생들의 정서와 지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가급적 멀리 하라는 충고도 종종 보인다.
이러한 관점들의 근거는 게임의 폭력성이다. 일군의 과학자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기 위해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한다. 이런 견해들을 차치하고라도 게임은 ‘경쟁’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투쟁심과 공격성이라는 원초적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의 유해함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최근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폭력을 다룬 게임이 유발하는 공격성은 게임을 마친 뒤 4분 이내에 사라지는 초단기적인 효과라고 한다. 게임으로 유발된 신체적 흥분 상태조차도 9분이면 사라져 버릴 정도다. 무엇보다 공격성을 유발하는 것이 게임 자체인지, 아니면 게임에 담긴 경쟁의 원리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모니터 속의 누군지도 모를 상대방에게 총질을 하며 흥분하는 섬뜩한 장면은 어쩌면 ‘더비’가 벌어질 때마다 상대팀에게 적의와 경쟁심을 불태우는 축구선수의 심리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적절히 활용하기만 하면 게임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황당한 상상을 해보자. 당장 우리 동네에 막강한 외계인이 쳐들어와서 이웃들을 마구 죽이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외계인까지 갈 것도 없이 어두운 골목을 걷는 동안 뒤에서 무시무시한 덩치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지갑을 노리고 쫓아온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제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 모르고 얼어붙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은하계가 파괴되는 우주적 스케일의 사건이 벌어져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끈질기게 해결책을 찾아낸다. 상황이 나쁠수록 더 좋다. 적절히 높은 난이도는 게임에 재미를 더하니까.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 보이는 불굴의 투지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내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다. 컴퓨터 게임의 역사가 제법 긴 미국과 유럽은 이미 게임을 이용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기능성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기능성 게임은 과학계에서도 톡톡히 제 몫을 해내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개발한 웹 게임, ‘폴드잇(Foldit)’은 3차원 퍼즐 게임이다. 제목 그대로 화면에 나타난 것을 이리저리 접어서 입체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목적으로, 간단한 몇 가지 원칙만 배우면 쉽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조물이 보통 구조물이 아니라 바로 아미노산 사슬,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20가지 아미노산이 일렬로 연결된 아미노산 사슬을 기본 단위로 구성된다. 사슬 내에서 아미노산의 배열에 따라 여러 부분이 접히고 결합하면서 복잡한 3차원 구조를 만들어낸다. 3차원 구조는 단백질의 성질과 기능을 결정하기 때문에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 분석은 생물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단백질을 이루는 원자가 워낙 많아 아미노산 사슬 구조 분석이 어렵다는 것이다.
폴드잇을 개발한 연구진은 직관이 필요한 3차원 퍼즐에는 컴퓨터보다 인간이 훨씬 유능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3차원 모양으로부터 아미노산 배열 순서를 찾아내는 과정은 퍼즐과 동일하다. 생물학 지식이 없어도 각각의 아미노산 분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규칙만 파악하면 20개의 블록을 조합하여 복잡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해낼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9월에는 세포 내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데 필수인 단백질의 구조를 폴드잇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10년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분석을 시도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전 세계의 게이머 6만 여명이 10일 만에 해결해 버린 것이다.
카네기멜론대와 스탠포드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EteRNA’도 유사한 게임이다. RNA는 유전자 발현과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게이머는 간단한 규칙에 따라 RNA 분자를 만들어내고 분자 구조에 따라 점수를 얻는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매주 게임에서 최고점수를 얻은 RNA 구조를 실험실에서 합성해 실제로 기능을 하는지 확인한다. 게임에서 최고점을 얻었을지라도 실제 합성하면 제대로 구조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게임의 모토처럼 ‘게임은 사람이 하고, 점수는 자연이 매긴다(Played by Humans, scored by Nature)’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간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학 연구 게임도 있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진이 개발한 ‘파일로(Phylo)’는 질병 유전자 해독 게임이다. 기본 DNA 해독은 컴퓨터가 담당하고 게이머들은 블록 형태로 제시되는 유전자 서열에서 위치가 잘못된 것을 찾는다. 복잡한 계산은 컴퓨터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시각 정보의 패턴을 인식하는 데는 인간이 더 낫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지난 2년간 2만 명이 참가해 35만 건의 DNA 해독 오류를 찾아냈다고 연구진은 언급했다.
국내에도 이러한 게임들이 있다. NHN한게임이 서비스 중인 ‘에코프렌즈’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친환경 게임’ 인증을 받았다. 게임에서 나무를 심어 온실가스를 줄이고 친환경 건물을 짓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환경문제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게임의 본질은 경쟁을 통한 문제 해결이다. 주어진 규칙에 따라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난관을 헤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의 구조는 과학 연구의 모습과 꼭 닮았다. 어쩌면 그래서 과학도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게임을 더 즐기는 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게임은, 창조적 활동인 것이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이러한 관점들의 근거는 게임의 폭력성이다. 일군의 과학자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기 위해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한다. 이런 견해들을 차치하고라도 게임은 ‘경쟁’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투쟁심과 공격성이라는 원초적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의 유해함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최근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폭력을 다룬 게임이 유발하는 공격성은 게임을 마친 뒤 4분 이내에 사라지는 초단기적인 효과라고 한다. 게임으로 유발된 신체적 흥분 상태조차도 9분이면 사라져 버릴 정도다. 무엇보다 공격성을 유발하는 것이 게임 자체인지, 아니면 게임에 담긴 경쟁의 원리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모니터 속의 누군지도 모를 상대방에게 총질을 하며 흥분하는 섬뜩한 장면은 어쩌면 ‘더비’가 벌어질 때마다 상대팀에게 적의와 경쟁심을 불태우는 축구선수의 심리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적절히 활용하기만 하면 게임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황당한 상상을 해보자. 당장 우리 동네에 막강한 외계인이 쳐들어와서 이웃들을 마구 죽이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외계인까지 갈 것도 없이 어두운 골목을 걷는 동안 뒤에서 무시무시한 덩치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지갑을 노리고 쫓아온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제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 모르고 얼어붙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은하계가 파괴되는 우주적 스케일의 사건이 벌어져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끈질기게 해결책을 찾아낸다. 상황이 나쁠수록 더 좋다. 적절히 높은 난이도는 게임에 재미를 더하니까.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 보이는 불굴의 투지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내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다. 컴퓨터 게임의 역사가 제법 긴 미국과 유럽은 이미 게임을 이용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기능성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기능성 게임은 과학계에서도 톡톡히 제 몫을 해내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개발한 웹 게임, ‘폴드잇(Foldit)’은 3차원 퍼즐 게임이다. 제목 그대로 화면에 나타난 것을 이리저리 접어서 입체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목적으로, 간단한 몇 가지 원칙만 배우면 쉽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조물이 보통 구조물이 아니라 바로 아미노산 사슬,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20가지 아미노산이 일렬로 연결된 아미노산 사슬을 기본 단위로 구성된다. 사슬 내에서 아미노산의 배열에 따라 여러 부분이 접히고 결합하면서 복잡한 3차원 구조를 만들어낸다. 3차원 구조는 단백질의 성질과 기능을 결정하기 때문에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 분석은 생물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단백질을 이루는 원자가 워낙 많아 아미노산 사슬 구조 분석이 어렵다는 것이다.
폴드잇을 개발한 연구진은 직관이 필요한 3차원 퍼즐에는 컴퓨터보다 인간이 훨씬 유능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3차원 모양으로부터 아미노산 배열 순서를 찾아내는 과정은 퍼즐과 동일하다. 생물학 지식이 없어도 각각의 아미노산 분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규칙만 파악하면 20개의 블록을 조합하여 복잡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해낼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9월에는 세포 내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데 필수인 단백질의 구조를 폴드잇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10년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분석을 시도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전 세계의 게이머 6만 여명이 10일 만에 해결해 버린 것이다.
카네기멜론대와 스탠포드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EteRNA’도 유사한 게임이다. RNA는 유전자 발현과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게이머는 간단한 규칙에 따라 RNA 분자를 만들어내고 분자 구조에 따라 점수를 얻는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매주 게임에서 최고점수를 얻은 RNA 구조를 실험실에서 합성해 실제로 기능을 하는지 확인한다. 게임에서 최고점을 얻었을지라도 실제 합성하면 제대로 구조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게임의 모토처럼 ‘게임은 사람이 하고, 점수는 자연이 매긴다(Played by Humans, scored by Nature)’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간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학 연구 게임도 있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진이 개발한 ‘파일로(Phylo)’는 질병 유전자 해독 게임이다. 기본 DNA 해독은 컴퓨터가 담당하고 게이머들은 블록 형태로 제시되는 유전자 서열에서 위치가 잘못된 것을 찾는다. 복잡한 계산은 컴퓨터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시각 정보의 패턴을 인식하는 데는 인간이 더 낫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지난 2년간 2만 명이 참가해 35만 건의 DNA 해독 오류를 찾아냈다고 연구진은 언급했다.
국내에도 이러한 게임들이 있다. NHN한게임이 서비스 중인 ‘에코프렌즈’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친환경 게임’ 인증을 받았다. 게임에서 나무를 심어 온실가스를 줄이고 친환경 건물을 짓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환경문제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게임의 본질은 경쟁을 통한 문제 해결이다. 주어진 규칙에 따라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난관을 헤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의 구조는 과학 연구의 모습과 꼭 닮았다. 어쩌면 그래서 과학도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게임을 더 즐기는 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게임은, 창조적 활동인 것이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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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내용과 신선한 내용이네요 .
게임의 폭력성과 게임을 하면서 언어가 저속해지는것만 어떻게하면 좋을텐데말이죠..
2012-04-29
답글 0
게임이 이렇게 유익한 곳에 쓰이고 있기도 하네요. 이런 좋은 게임들이 좀 더 보편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2-04-26
답글 0
....게임은 창조적 활동이다....?/!
2012-04-26
답글 0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
2012-04-23
답글 0
게임도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2012-04-23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