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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내 안의 화를 날려 버릴 최고의 방법은?
<KISTI의 과학향기> 제3079호 2024년 07월 22일최근 가장 크게 화났을 때는 언제인가? 머리끝까지 열이 오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먹으로 가슴을 칠 만큼 화가 난 적 있는가? 우리는 화가 났을 때 고함을 치고 싶다거나 물건을 던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반면, 조용한 곳에서 심호흡이나 명상을 통해 흥분을 가라앉히는 사람도 있다.
화를 달래는 데에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까? 지난 4월, 미국 오하이오대주립대 연구진이 분노 조절에 관한 연구 150건 이상을 비교 분석한 결과가 국제학술지 ‘임상심리학 리뷰’에 실렸다. 연구진은 분노를 터뜨리면 후련함을 느낄 수는 있으나, 그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라고 전했다. ‘터뜨려서 해소한다’라는 ‘사이다’식 접근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적의 분노 해소법은 대체 어떤 것일까?
사진 1. 흔히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분노 해소에 도움 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shutterstock
분노는 어떻게 일어날까?
오하이오주립대 연구진은 감정에 관한 심리학 이론, ‘감정의 두 요인’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삭터-싱어 이론’이라고도 불리는 이 이론에 따르면, 감정에는 신체적 반응이 필수적이다. 신체적 반응이 일어난 후 우리의 뇌는 인지적 해석을 통해 감정을 구체화한다. 즉 얼굴에 열이 오르거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등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뇌가 수집한 여러 정보에 비춰 반응을 해석한다. 해석을 끝마친 후에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이 붙는다.
이 과정을 거쳐 ‘분노’를 인지한 후에는 신체 반응을 바꾸거나 인식을 바꿔 분노를 달래 볼 수 있다. 흔히 알려진 분노 해소법 역시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해소한다. 예시로 천천히 숫자 세기, 명상하기처럼 각성 수준을 낮추는 활동과 달리기처럼 각성 수준을 높이는 활동은 신체 반응에 변화를 이끌어 분노를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사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지적 왜곡을 줄이거나, 비이성적인 신념을 바꾸는 인지 행동 치료는 인식 전환 활동을 통한 분노 해소법으로 볼 수 있다.
화를 표출하기보다 잠재우자
여태 학자들은 ‘인식 전환’ 측면에 초점을 맞춰 분노를 분석해 왔다. 반면, 이번 연구에선 ‘신체 반응’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분노와 적대감, 공격성 척도를 비롯해 생리적 각성을 증가하거나 감소시키는 활동에 관한 연구 154건을 분석했다. 이후 각성을 증가시키는 활동과 감소시키는 활동으로 재분류했다. 각성을 증가시키는 활동으론 달리기, 샌드백 치기, 사이클링, 수영 등이 각성 상태를 잠재우는 활동으론 심호흡, 명상, 요가 등이 손꼽혔다.
분석 결과, 각성 상태를 잠재우는 활동이 분노를 비롯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낮추는 데 훨씬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참가자의 나이나 직업, 생활 배경 등에 구애받지 않고 같은 결과를 보였다. 그렇다면, 각성을 감소하는 여러 활동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신체 활동이 적은 명상이 가장 좋을까? 연구진은 요가를 비롯해 근육은 천천히 수축했다 이완하는 신체 활동은 명상에 비해 각성 수준이 높지만, 분노 해소 측면에서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2. 분노 해소에는 명상, 요가와 같이 신체 각성 상태를 잠재우는 활동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shutterstock
반면 각성을 증가시키는 활동은 분노를 낮추는 효과가 거의 없었다. 특히 샌드백 치기와 같은 공격적인 운동은 사이클링처럼 덜 공격적인 운동보다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다. 단순 동작을 반복하는 달리기와 계단 오르기 역시 분노를 키울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신체 활동 중에서도 학교 체육수업이나 구기 스포츠 경기는 각성을 줄여주는 효과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각성을 높이는 특정 신체 활동은 심장에는 좋을 수 있으나, 분노를 줄이는 최선의 방식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분노 표출과 지속적인 공격성을 연결한 연구팀의 이전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사진 3. 신체 각성을 증폭시키는 활동일수록 분노 해소 효과가 떨어졌다. ⓒshutterstock
연구팀은 이번 연구의 시작점은 분노 해소를 위해 유리 접시나 전자제품 등 물건을 부수길 장려하는 ‘분노방’ 유행이었다고 밝혔다. 연구원들은 아끼는 물건이나 죄 없는 물건을 내려치기보단, 무료 요가 앱과 유튜브에 가득한 명상용 영상을 활용해보길 권한다. 여러분도 오늘 일정을 망쳐 화가 났거나, 퇴근길 지옥철에 매일 분노가 쌓였다면 ‘파괴적 해소’를 하기보다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확보해 보자.
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그림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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